편집국장 공인배

대학은 오래전 부터 혁신의 당위에 직면했었다. 변하지 않으면 '도태'를 피할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촌음간에 새 페이지를 펼치는데, 혁신을 가르치는 대학은 정작 너무 굼떴다. 혁신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되 태도는 미온적이었다.

그래도 망한 대학은 별반 눈에 띄지 않았고, 새로운 대학이 자꾸만 생겨났다. 정부의 '교육온실주의'와 고단위 복합영양제가 화학적으로 처리된 '교육선진화' 지원 덕이었다. 준비된 대학은 뿌리를 깊이 내렸지만 상당수는 웃자랐다. 정부의 묵인과 방조가 대학을 크게 이완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제 대학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창출해내는 것으로 더이상 안주 할 수 없는 냉혹한 환경에 부닥쳤다. 정부가 경쟁력 없는 대학에 재정지원을 제한하는 날선 행동에 들어간 것이다. 소비자들의 선택적 지표였던, 취업율이나 재학생 충원율, 전임교원 확보율, 등록금 수입 중 교육비 환원율 등이 공공 지표로 이동했다.

교과부는 지난 5일 이같은 절대지표를 포함한 8개 또는 9개 평가기준에 미달하는 대학들을 발표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통찰력을 빌어, 교육이 '21세기의 지식혁명 경제에서 부(富)를 창조할 원동력'이라는 측면과, '교육혁명 없이는 결코 선진 강국을 기대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정부의 방향성은 적절하게 비쳐진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지역의 원광대학교도 정부재정지원과 학자금대출 제한 대상에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대학 쪽은 몇가지 평가지표의 흠결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면서도, 자기성찰과 검증이 부족했던 탓으로 돌리며 겸허한 태도를 보였다.

이제 대학은 교육의 틀을 완전히 바꿀 것을 요구받고 있다. 졸업생들의 취업율을 높이기 위해 기업에 입사한 후 바로 현업에 들어가 일할 수 있는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모든 학부에서 상시 운영해야 한다. 또 연구능력이 뛰어나고 전공지식 관련해 현장에 밝은 전임교원들을 전폭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교수들의 강의에 대한 다각적인 평가와 그 결과를 공개하는 것은 더 미룰 수 없게 되었다. 그걸 버티다가 시대의 요구에 밀려 낭떠러지까지 몰린 지형이다. 대학의 연구기관 확충에도 재원을 집중해 필요충분조건을 갖춰야 한다. 흉내만 내는 정도로는 학적을 옮기는 학생들을 잡을 방도가 없고, 우수한 신입생들을 유인 할 수도 없다.    

사실 이런 경쟁력 구축은 교과부의 개혁드라이브 이전에 선행되었어야 할 과제였다. 이미 교육시장은 개방됐다. 지난해 송도국제도시에 새로 개교한 인천대는 우리 교육시장이 어떻게 변모할 것인지를 단적으로 시사한다.

인천대는 화학분야에 정통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과 생명과학의 선두주자인 벨기에 겐트 대학, 해양분야에서 저명한 영국 플리머스 대학 등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들 해외대학들은 이르면 2년 뒤 부터 각각 200명씩 총 600명의 신입생을 뽑는다.

인천대의 구상은 글로벌 소프트웨어와 첨단 지식 인프라를 갖춰 향후 8년 뒤에는 세계 100위권 대학에 진입한다는 것이다. 국내 상당수 대학들이 이런 거스를 수 없는 대세, 교육시장 개방에 대비한지 오래다.    

하지만 대학의 '연구'지상주의는 '교육' 부문의 소외를 초래하기도 한다. 대학의 차별적인 비전이나 목표는 무시되고 획일적인 기준 평가가 강조된 나머지 다양한 인재양성 시스템이 퇴화되고 있다. 특히 사립대학이 설립목적을 상실한 채 무한경쟁에 뛰어들 경우 '사설학원' 이상도 이하도 아닌 형국에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대학은 생존을 위해 수요자와 시장에 따라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정부는 이를 보장하기 위해 대학평가기준을 전략유형별로 차등 적용해야 한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우리 교육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오랫동안 우리 교육을 진단한 끝에 경쟁력있는 대학의 7가지 전략유형 모델을 추출했다.

세계수준의 연구수행과 차세대 지도자를 양성하는 대학, 공학 등의 집중화된 영역에서 세계적인 연구수행과 최고의 전문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 지역에 비전을 제공하는 대학, 사회 각 분야의 리더 및 전문가를 양성하는 대학, 소수정예의 리더와 전문가를 양성하는 대학, 실용인재를 양성하고 특성화된 학문분야에 주력하는 대학, 지역산업 클러스터에 기술과 인력을 공급하는 대학 등이 그것이다.

건강한 대학 말살하는 단면 데이터평가

이들 유형은 지역단위에서 훨씬 더 유효한 국가경쟁력의 초석이다. 교과부의 대학 평가지표가 보다 밀도 높게 마련돼야 할 이유다. 단면 데이터에 의존한 채 고민한 흔적도 없는데다, 획일적 지표아래 뭉뚱그려 칼질한 결과에 어떤 대학이 승복하겠는가. 그것은 공정성의 포장재가 될 수는 있지만, 내용의 질량은 전혀 측정하지 못한다.

교과부의 강경일변도는 대학과 그 대학이 속한 지역의 암초다. 당장 평가를 철회하고 연구와 교육을 균등하게 측정할 평가지표가 마련될때까지 평가나 지원제한 조처를 유보해야 한다. 대학의 특성화는 생존의 조건이다. 굳이 타율이 아니어도 대학은 이미 무한경쟁에 떨어졌다. 스스로 독보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좌표를 수정할 수 밖에 없다.

어디에서든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협력으로 효과를 극대화하며 역동성을 창출해내는 인재를 배출하는 길은 자율성을 보장했을 때 열린다. 융합의 시대다. 대학은 여기에 걸맞는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학이나 자연, 인문사회, 의과, 예술등 계열들 간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두드러지면서 학문 간 장벽이 모호해지고 있다.

대학이 자율아닌 타율로 시대적 요구에 탄력적으로 부응하기란 지난한 일이다. 평가 이전에 오히려 권한을 놓는 일이 먼저 필요하다. 정부가 교육분권을 단행해야 대학본부가 교육내용에 대한 콘텐츠를 단과대학에 위임 할 수 있다. 이것을 간과하면서 다양화와 차별적인 교과과정 운용을 촉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타율은 학제나 커리큘럼, 교수 경쟁 시스템 같은 대학운영 시스템 자체를 목표시장에 맞게 변혁시키는 것을 가로막는다.

어설픈 대학 통제가 이나라의 교육선진화를 저해하는 직접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