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지난 13일은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 41주기다.

노동의 지형이 크게 바뀐, 그러나 여전히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오늘, 그의 정신이 이동한 지점을 본다.

35m 고공크레인, 이름만 들어도 아찔한, 노동현장에서 신(神)과 가장 가까운 그곳이다.

8년 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 김주익은 거기에서 목을 맸다.

곽재규 부장은 그의 죽음을 괴로워하다 11m 지하 도크에 투신했다. 노동현장에서 신으로부터 가장 먼 곳이었다.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그 불공정한 게임의 법칙이 지배하는 링 위에서 노동자였기 때문에 내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던 그들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신의 코 앞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한 노동자였다.

불경죄를 무릅쓰고 신의 눈길을 끌어보려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노동이 더이상 삶의 가치가 되지 못하는, 심판도 없는 링에 대한 고발이었다.

309일 동안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던 김진숙은 그들의 분신(分身)이다.

"사측의 더 많은 이윤창출을 노린 노동자 대량 정리해고는 '공평'을 주재하는 자리에서 신을 밀어내는 행위다."

그렇게 읽혀진다. 김진숙은 자본과 신의 눈 높이에서 노동자가 처한 현재의 명제를 말하고 싶었다.

지난 10일 공포와 사투를 벌이던 그는 지상으로 내려왔다.

한진중공업 노사가 정리해고자를 재고용하는 데 합의한 결과다.

하지만 노조원들과 해고 당사자들은 여전히 김진숙 처럼 어지러움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지상에 내려 온지 열 하루가 지났어도 균형감각을 잡지 못하고 있다.

불안하다. 자본의 탐욕과 자본주의에 맹종하는 정부와 그 주구(走狗)들은 어떻게든 그를 싸늘한 감옥에 격리시키려 할 것이다.

노동자들의 현주소다. 2년 전 5월에 점화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노사가 극한 대립 상황에 떨어져 합의에 이르는 77일간 사업장은 전쟁터였다.

노조원과 경찰, 노조원과 비노조원 등이 서로 충돌해 부상이 속출했고 응급실에 실려간 사람이 수백명에 달했다.

300명이 넘는 전과자가 양산됐으며, 96명이 구속됐다.

특히 사측은 노조원들에게 80억이 넘은 손배가압류와 110억원의 구상권을 청구했다.

해고자와 무급휴직자들에게 떨어진 발등의 불이다.

기본적 생활마저 파탄으로 치닫고 있다.

이렇듯 사측이 분명한 살인의도를 품고 있는 한 8.6노사합의가 이행될 턱이 없다.

'쌍용차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단 노동자들은 노동시장에서도 철저하게 배제됐다.

2년여 동안 쌍용차 노동자들 19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울증 같은 스트레스성 질환에 따른 사망과 자살이 대종을 이룬다.

파업현장에서 우리의 공권력은 식수와 전기를 차단해 생명을 위협했다.

살인진압의 후유증으로 거동조차 불편한 노동자에게 국민건강보험료 환수조치를 단행하는 나라다.

유가족들이 입은 내상은 분노조차 잊어버린 패닉상태다.

죽음의 행렬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음울한 전조가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전태일이 떠난지 41년,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라갔지만 우리 노동은 그 때 보다 훨씬 더 위태롭다.

빛의 속도를 방불하는 기술은 그 간 노동시장에 상전벽해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착취'의 문제에 골몰했던 노동 문제는 부지불식간에 '상실'의 지형으로 이동했다. 

리프킨이 역설한 '노동의 종말'이 코앞에 닥친 것을 직감한다.

오직 이윤창출을 위한 수단을 찾아 온 자본은 기계로 부터 얻는 실익에 경도되었다.

지칠줄도 모르는 기계는 노동조합을 만들지도 않는다. 복지를 위해 신경 쓸 필요도 없다.

목숨을 걸어야 노동자가 되는 나라

기업들은 지능을 갖춘 기계와 친화적인 방향으로 재빨리 조직구조를 재구축하고 있다.

이에 따른 생산성의 증가는 대대적인 노동력의 감축을 의미한다.

기계보다 효율성이 낮은 노동자는 생산과정에서부터 체계적으로 제거되고 있다.

구조조정은 나날이 심화될 것이고, 노동시장에 진입조차 하지 못하는 청년들은 조만간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다.

우리는 600만 청년실업시대다.

20대의 90%가 백수이고, 인턴만 옮겨다니는 메뚜기 인턴이 젊은 세대의 신풍속도를 상징한다.

30대 초에 퇴직하는 노동자들이 속출하고, 장기간 미취업자들이 부모나 친인척에게 빌붙어 모두가 고단하다. 

자본의 재생산수단 대체는 가속화될 것이고, 블루칼라나 화이트칼라 모두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이테크 혁명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분이 공유되지 않고 있다.

리프킨은 "이렇게 자본의 독점이 지속된다면 사회정치적 격변을 피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전태일. 그의 공통체적 인식에 기반한 신독의 결과에 기대어 우리는 품위 있는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포레스테가 가리키는 새 문명을 인정할 수 없다. 인간의 착취라는 문제보다 더

끔찍한 현실, 더이상 착취 될 것도 없는 세상을 믿을 수 없다.

노동자가 착취 당하던 자에서 배제된 자로, 배제된 자에서 제거될 운명에 놓인 자로 이행하는 것은 자본이 먼저 막아야 한다.

무엇으로든지 사회적 관계를 대체 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자본은 노동을 돌려줘야 한다.

우리는 사회 계약의 기본 토대 위에 '노동이 삶의 근본 요소'라는 지표를 다시 세워야만 하는 시점에 처해 있다.

노동시간 단축이나 제3 부문의 직업 창출 같은 대안 이행은 그 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