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한미 FTA는 피비린내를 풍기는 미끼였다. 배고픈 자를 유혹하기에는 딱 좋은 상태였다.

그러나 야생의 법칙을 잘 아는 자는 탐욕을 자극하는 잘 재단된 미끼에서 그 함정을 즉각 연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나라의 국회의원 151명은 2011년 11월 22일 그걸 게 눈 감추듯 집어삼켰다.

굵고 단단한, 그 끝이 미생물도 찍어낼 만큼 예리한 낚시바늘은 그들의 깊은 내장에 박혔다.

그들은 이제 곧 알게 될 것이다. 맑은 햇살아래 물빛 처럼 투명한 낚시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자신을.

돌이킬 수 없다. 거스르려 하면 내부의 주요기관이 낚시바늘 미늘에 찢기고 터져서 손쓸 겨를도 없이 치사량의 출혈을 당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끌려갈 도리밖에 없는 한미 FTA 역진방지(逆進防止)장치에 꿰였다.    

쌀 개방으로 쌀농사가 전폐되고 식량이 무기화되는 상황이 와도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인간광우병이 창궐하는 상황이 와도 쇠고기 수입을 막지 못한다.

의료보험이 영리화 되고 병원이 사유화된 후 보험료 폭등 같은 부작용들이 속출해도 다시는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전기, 가스, 수도 등이 민영화 된 후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났을 때 예전을 떠 올리는 것은 고통만 부른다.

교육 및 문화 분야가 사유화 된 후 혼란의 도가니에 빠진다 한들 돌이킬 묘책은 없다.

미국식 투자자의 논리가 우리의 법을 무력화시키고, 공공정책을 제한하며 기존의 공익관(共益觀)을 파괴할 것이다.

보존하고 보호해야 할 가치가 금권에 유린돼 흔적도 없이 사라져갈 것이다.

우리는 새 정글주의(신자유주의)에 적응해야 한다.

필요한 만큼만 사냥하는 강자가 아니라, 약자를 닥치는대로 살육하는 변이된 강자들을 상대해야만 한다.

열위에 있는 자의 목소리는 사회 악이 될 날이 곧 닥쳐올 것이다.

미국의 투자자는 이 나라의 법보다 우선하고, 내국인보다 우위에 있게 될 것이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 나라 사람들은 착취의 대상이 되고, 투자자를 배불리는 소비집단으로 전락할 것이다.    

미국의 투자자와 그 뜻을 같이하는 기업들이 무한 권력으로 등극하는 순간이다.

우리의 국회는 무엇을 위해 이 나라의 통상과 사법주권을 미국에 바쳤는가.

투자자와 자본가의 영지(領地)에 떨어져 더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된 이상 우리가 이룬 모든 것은 제자리 걸음을 시작할 것이다.

경제적 정체는 공격하기 쉬운 표적이 된다. 쓰러지지 않으려면 물러서야 한다. 퇴행성 난치병에 걸린 이 나라는 급격한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이다.

더는 앞을 내다볼 용기가 없는 지금, 돌이켜 보니 한미 FTA는 참여 정부에서 시작됐다. 2006년 벽두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한미 FTA 협상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양국은 협상 초반에 의약품, 자동차, 쇠고기, 스크린쿼터 관련 이익을 미국에 양보한다는 이른바 4대 선결조건에 합의했다.

국민들의 길거리 반대투쟁이 이어졌고, 여러 우려와 비판은 이념공세로 매도됐다.

참여정부 지지세력의 분화를 겪으면서도 노무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미 FTA의 경제효과가 조작되거나 과장됐다는 지적과, 정부의 일방적 선전이 서로 격렬하게 충돌했다.

2007년 4월 2일 결국 6차례의 협상 끝에 한미 FTA는 공식 타결 됐다.

하지만 두달 뒤 양국은 재협상에 들어갔고, 두 나라 정부는 8일만에 미국의 요구안을 더 많이 반영한 합의문에 서명했다.

국회 비준동의안 처리 절차는 이명박 정부로 넘겨졌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 정권은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하는 정신적 분열상태로 읽혀졌다.

폐쇄되어야 할 국회

주요 내각에 삼성 출신들 및 삼성가 인물을 기용한 것이나, 핵심 참모들을 친삼성 인물들로 포진한 것도 참여정부의 정체성 부재론을 부른 근원이었다.

최근 민주당 소속 안희정 충남지사와 송영길 인천광역시장이 한미 FTA를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그 연장선상에서 투영된다.   

민주당이 대기업과의 유착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이 나라의 경제주권을 미국에 양도한 '신묘늑약'은 자본에 잠식된 공적시스템과 정치의 결정판이다.

금권이 기획하고 정부와 한나라당이 주연을, 민주당이 조연한 삼류영화만도 못한 블랙코미디다.

한미 FTA 비준 당일 같은 시각 그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손학규 당대표를 위시한 민주당 의원들은 동료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있었다.

같은 날 한나라당 의원들은 박희태 국회의장에게 FTA 비준안의 직권상정을 요구했다.

이어 2시 30분께부터는 100여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과 가까운 예결위회의실에서 의원총회를 열었다.

의원총회가 끝난 직후 한나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으로 이동해 날치기를 자행했다.

민노당 의원들만 이런 정보를 갖고 있지는 않았을터다.

왜 하필이면 민주당 3선 의원 김성곤은 이 때에 맞춰 출판기념회를 벌였나.

그는 협정 비준을 강력히 주장하며 국회의사당 로비에서 108배를 했던 자다.

이 나라의 국회는 자본의 꼭두각시들이 점령한 곳이었다.

협정 비준은 정해진 수순이었고, 여야 합작품이었다는 관점을 일소하기 위해 내세울 마땅한 논거도 없어 보인다.     

정말 민주당은 국회일정을 전면 보이콧하는 것으로 협정 비준 무효화 투쟁이 성공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내장이 터져서 내출혈로 숨이 끊기는 순간에 거들떠도 보지 않는 미국을 보고서야 오늘 한 일이 무엇인 줄 깨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