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발 불안은 붕괴될 우리 공동체의 공공성 위에 서있다. 생존과 도태가 전부인 시대는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다.

이 나라의 울타리는 무방비 상태에서 제거됐다. 우리들 99%는 야수들의 습격에 속수무책, 대증요법 조차 없다.

우리는 무수한 난제와 환란을 예견했지만, 우리 내부의 저들 1%의 야수들은 토론과 소통을 원천봉쇄했다.

공론의 장은 이 나라 CEO의 결정을 방해하며, 결국 발목을 잡을 뿐이라는 인식에 지배되는 황망한 꼴이었다.

CEO적 마인드 혹은 야수의 마인드 덕에 저들은 단꿈을 꾸고 있다.  동맹과 그로 인해 구축될 난공불락의 진지, 그 안에서 획책되고 실행에 옮겨질 약탈이 눈 앞에 어른거릴터다.   

그 어떤 우려도 묵살 될 수밖에 없는 지형이다.

반론이 여지가 없는 FTA 독소조항 적출과 ISD(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대한 위험성 지적마저 괴담으로 낙인되는 판국이다.

공인이라는 이유로 개인적인 공간에서의 특정 사회현상에 대한 의견표명 조차 정치활동으로 매도당하는 일상이다.

한 현직 판사는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FTA 국회비준을 밀어붙인 데 대한 짧은 소회를 올렸다가 공직자 윤리위에 회부됐다.

한나라당이나 대표 보수언론 등의 전방위적인 사퇴 압력 또는 제재조치 촉구에 따른 것이다.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관료들이 서민과 나라 살림을 팔아먹은 2011년 11월 22일, 난 이날을 잊지 않겠다"가 문제의 글 전문이다.

이 글이 판사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했는지의 여부는 공직자 윤리위에서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FTA는 이미 대중적인 논쟁단계를 넘어 현실이 됐다.

대중들은 배수의 진을 치고 사선(死線)으로 밀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저항에 임하고있다.

판사의 글이 정치적 개입이 아닌 개인적 사관(史觀)에서 비롯한 것이며, FTA가 날치기로 통과된 것에 따른 일종의 갈무리적 의견표명에 불과한 이유다.   

중용의 길이 판사의 덕목이라면 현재를 통찰하지 않고 그걸 달성해 나갈 수 없다.

숨가쁘게 변하는 세상을 주의 깊게 좇아야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은 현재의 저울을 얻을 수 있다.

판사가 중용의 길에서 벗어나면 '괘씸죄'나 '불경죄' 같은 암흑시대의 저울추를 남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것은 국가의 무절제한 폭력 행사를 뒷받침하는 토대가 된다.

바른 판단을 하려면 문제를 샅샅이 보아야 한다. 문제에 대한 동시대의 시선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현자의 눈을 비난하고 단죄하는 권력의 태도는 함량미달의 현주소를 드러낸다.

무지와 미숙, 폭력성이 뒤섞인 권력보다 더 위험한 것이 또 있을까.

국가는 합법적 폭력을 독점하면서 강제력 행사의 권한을 지닌다.

오늘, 공동체가 국가권력 행사의 과점과 남용 문제에 매몰되어 본질에 얽힌 실타래에 손조차 대지 못하는 것은 파멸의 서막을 알린다.

위험한 길을 인식하지 못하면 안전한 길로 회귀할 수 없다.

FTA 날치기 비준을 앞두고 건강보험을 파국으로 몰아넣을 김종대를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임명한 이명박 대통령은 그 인식 여부를 가름하는 척도다.

김종대는 20년 전부터 골수까지 통합국민건강보험 반대론자다.

김대중 정부는 당시 재정이 넉넉한 '직장의료보험조합'과 재정적자에 허덕이며 제대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지역의료보험조합'을 통합했다.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의료복지의 새 지평은 그렇게 열렸다.

그러나 김종대는 초입에서부터 좌충우돌했다.

의보 통합을 반대하며 "진료비용 심사를 의료계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해 온 인물이다.
그는 결과적으로 '의사의 무한수입을 보장'하게 되는 재분리 주장을 끝내 굽히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정책기획실장으로서 급기야 정부 정책에 대해 저돌적으로 항명파동을 일으켰던 그는 지난 2000년 면직되었었다.

김종대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009년 통합의보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수입에 비례하지 않는 진료비용은 평등권,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 그 골자다.

김종대는 소송에 대응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최고 정책결정자로 돌아온 것이다.

그가 취임식과 그 직후 관련 실무부서에 적극적인 변론을 하지 말도록 명령한 것은 처음부터 예고됐었다.

공공성에 입각한 '사회적 분배'의 문제는 늘 가진쪽의 양보를 강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위헌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반론이 원천 차단되는 이상 통합의보체계에 대한 위헌 판결 가능성은 높다.

통합의보가 깨지면 서민들이 형편에 맞는 보험료와 적정한 의료서비스를 보장받는 길을 찾아 민간보험으로 이탈할 공산이 높다.

의료복지 기반의 와해를 피할 수 없는 지형에서 한미FTA는 모든 절차를 마치고 발효를 앞두고 있다.

장차, 미국의 영리병원들은 덤핑 의료비로 우리 사회의 중심부를 장악할 것이다.

그리고 독과점의 고지를 점령한 뒤 서민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폭리를 취하며 우리의 생명을 위협할 날이 멀지 않았다.

의료보험 부문에서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헌법재판소의 판사들이 중용의 길을 갈 것이라는 기대다.

공공성은 국가와 운명을 같이한다. 이 나라는 다국적기업에 경제주권을 이양하기 위해 자국의 공공성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