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민족 대이동의 새로운 주기, 2012년 설날을 지냈다. 그리웠던 사람들이 만났다. 무슨 얘기들이 오갔을까.

우리는 이미 새해를 전후로 내일을 가늠해 본 바 있다.

지나온 삶이 새 삶의 연장이 되도록 하기 위해 어려운 고비에서 선택한 길이 지속가능한 것인지를 성찰할 필요가 있었다.

머뭇거리다 놓쳤거나 버린 기회가 오히려 더 나은 삶의 문으로 인도하지 않았을까를 되짚어보기도 했다.

실패를 씨실로, 성취들을 날실로 직조해 온 시행착오, 그 요소들은 새해에 우리가 꾸려나갈 삶의 폭과 가능성을 제시할 것이다.

지나온 삶을 보는 눈의 밝기는 미래를 전망하는 눈의 정확도를 결정할 것이다.

특히 자신의 지난 궤적 안에서 한결같이 바른 주제를 발견한다면, 그는 정체성을 세울 수 있게 되고 삶을 대하는 태도도 또렷해질 것이다.

그의 눈이 촛점을 잃었거나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으면, 미래를 맞이할 준비를 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올해 최대 이슈로 떠오를 정치 지형의 변화에 대해서 밝게 전망할 수 있을까.

입지자 가운데 누가 참되고 도덕적인가를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정체성이 불투명한 까닭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눈의 밝기는 예사롭지 않다.

고민은 달갑지 않다. 그러나 깊은 고민에 따른 좋은 결과는 그만큼 벅찬 성취감을 안겨주는 법이다. 

가족 사이에서 각자 신념어린 관점이 충돌하고 소통할 때, 그것이 공동체 안으로 확산될 때 사회적 응집력이 높아진다. 신뢰할 만한 관점의 표본이 추출된 덕이다.

대화는 소통의 본질이다. 이번 설 연휴에는 많은 대화가 있고, 그것이 내일로 이어졌으면 한다.

그 내일이 우리가 선택한 것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우리의 뇌가 그릇된 '밈(meme)'에 선택되어 장악당하는 것을 막고 해방되기 위해서다. 

'밈'은 영국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고찰한 '생각·착상·구상'같은 문화 구성요소의 다른 이름이다. '밈'은 사람이나 고등동물의 뇌에 자리 잡고서 진화한다.

우리의 마음은 거기에 깃든 '밈'들의 생존과 전파를 위해 존재하며, '밈'들은 자신에 적합한 마음에 정착한다.

'밈'들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조정한다. 우리 마음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라기 보다 거기에 깃든 '밈'들이라는 게 도킨스의 주장이다.

영 꺼림칙하고 믿고 싶지 않은 주장이지만 그 논거라 할 만한 사실들은 많다.

아무도 돈을 벌기 위해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지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을 지키려고 기꺼이 순교해 왔다. 믿음의 본질은 '밈'이다.

4대강 사업을 찬성하는 쪽이든 반대하는 쪽이든, 국부를 위해 FTA가 필요하다는 쪽이든 망국의 협상이라고 주장하는 쪽이든 '밈 복합체'(memeplex)들이다.

좌·우익 집단 처럼 종류가 같고 친화적인 '밈'들은 한데 몰려다니며 지극히 배타적이다. 다르거나 새로운 밈들이 지닌 그 자체의 가치를 평가하지 못하는 원인이다.

상생을 교란하는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서늘한 눈을 가질 필요가 있어진다.

나와 남이 모두 '밈'에서 해방되길 원한다면, 나를 살핀 뒤에 남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성숙'이다.

'밈'의 지배가 이 나라를 송두리째 경색시켰고, 모든 불협화음과 사회문제를 야기했다.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서로 적대시하는 오류는, 자신들만이 절대적 진리이고 타자는 모두 틀렸다는 그릇된 편견의 기원이다.

특히 '밈'에 지배됐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책임지지도 않는다. 자신이 속했던 '밈 복합체'의 권익을 위해 헌신했을 뿐이라는 믿음으로 이성을 마비시킨 탓이다. 

이문열이 말하듯 그들은 '달아난 악령'이다.

1950년대 미국을 메카시즘으로 이끌었던 우파들 처럼, 그들은 사거리에서 수신호로 수많은 사람들을 파멸의 길로 보냈지만, 수색대를 피해 달아나 사라졌거나 자연사 하거나 기껏해야 감옥으로 가는데 그쳤다.

우리가 지도자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평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밈'은 우리 몸 안에서 기생하는 박테리아들 처럼 공생체계를 따라야 한다.

박테리아들이 이루는 생태계는 아주 복잡하다. 사람의 입에만 500에서 1,000종이 산다.

그러나 박테리아의 공생체계는 지극히 정연하게 우리 몸에 이롭게 작용한다.

소화기관들 속에 사는 박테리아들이 우리의 소화를 돕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콧속의 박테리아들은 항생제를 만들어내서 병균들을 물리친다.

이 밖에도 여러면에서 우리의 몸에 박테리아들의 공헌은 긴요하다.

독점은 융합과 확산을 막는 독(毒)

박테리아가 그렇듯이 '밈' 역시 독점될 수 없다. 모든 '밈'은 공유될 때 널리 이롭다.

공생체계가 깨지면 숙주인 우리의 몸은 위태로워진다. 유해한 다른 종을 박멸하기 위해 항생제를 사용하면 종류와 수가 바뀌면서 생태계에 교란이 일어난다.

이런 변화는 우리 몸에 당연히 해롭고 정체성의 변화까지 수반한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 초입에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겨눴던 검찰의 칼을 기억한다. 이 정부의 서막은 전 대통령이 바위산 아래로 몸을 던진 장면이었다.

이후 수년동안 속출한 환란들과 정치지형의 변화들은 숨가빴다. 우리는 충분히 우려한다. 현 대통령 역시 비운의 길을 따를 것인가.

자신과 가족, 각종 친인척 비리가 미결상태로 어수선하게 널려 있다. 특히, 민의 혹은 다른 '밈'들을 묵살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제거를 시도했던, 그래서 항생제를 남용한 흔적들이 너무나 뚜렷하다.        

우리의 정체성은 변할 것이다. 융합과 확산을 속성으로 지닌 문명, 그 끊임없는 운동은 위협받은 '밈'의 종들이 존속을 위해 받아들인 변화속에서 새로운 종을 탄생시킬 것이다.

다원화에 적합하게 진화될 우리의 눈도 올해 여러 만남 가운데 백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