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영화 ‘부러진 화살’은 이성을 잃어버린 법정이 치달아 간 어처구니 없는 장면들에 똑바로 고정된 앵글이다.

그 렌즈를 통해 우리는 일찌기 보지 못했던 보아서도 안 될 극명한 ‘불안’을 만났다.

법원이 이렇게 무너질 수 있을까. 법치주의에 대한 판사들의 해석은 곧 법치의 수준을 가늠할 척도다.

법치의 근본은 권력의 독단이나 자의를 배격하고 권력의 행사를 법률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한 대학의 수학 교수 김명호가 판사를 향해 석궁을 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법원은 즉각 사법권력을 남용했다.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전국 법원장들을 소집, 김명호의 ‘사법권에 대한 도전’을 엄단하기로 결의한다. 또한 그런 입장을 대대적으로 공표했다.

김명호는 검찰에 의해 구속 기소돼 법정에 섰고, 판사는 법원의 뜻을 반영하듯 자의적인 해석에 따른 김명호의 ‘살인미수죄’ 몰아가기에 충실했다.

헌법에 정해진 ‘재판의 독립 원칙’을 침해하는 ‘개입’이 법원 내부에서 조직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전국의 법원장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항소심 선고 직전에 다시 모여 사법테러 엄단을 천명하는 망동을 거듭했다.

사법권력은 자존을 지키는 방법으로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짓밟는 길을 택하면서 스스로 자존을 내팽개친 꼴이 되었다.

법정에서 헌법이 정한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가 유린되고, 증거재판주의가 묵살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법관의 자유심증주의를 내세우며 호도하는 목소리는 더욱 위험하다. 

그것이 법관의 자의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법관에게 부여된 국민의 신뢰에 부응해야 한다는 대전제가 있다.

재판실무상의 경험과 증거의 평가에 대한 각종 보조과학의 지식을 기초로 논리칙과 경험법칙에 따라 사실의 진실여부를 판단해야 할 책무가 있다.

법관들은 지망생 시절부터 부여되는 책무를 누누이 학습했고, 그것은 법조인의 계명이다. 법관에게 증거란 자신을 판사로 세울 지표인 탓이다. 그러나 ‘석궁사건’에서 법관들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 근원에 눈먼 집단이기주의가 있다.

그들은 권위에 눈 먼 것이다. 하지만 법관의 권위는 탄탄한 사법정의의 토대 위에 설 수 있다. 보라. 사법정의가 무너진 법정이 어떠한가. 피고인이 재판을 거부하고, 판사를 기피하는 권리를 행사하며, 검사와 판사를 직무유기로 고발했다.

방청객들은 판사의 부당한 재판진행에 분노했고, 판사에게 계란세례를 퍼부었으며, 판사는 그들을 유치장에 가뒀다.

석궁사건 법정은, 권력 앞에 맥없이 굴종해 온 우리들의 시선으로 볼 때 너무나 낯선 현장이다.

수학교수 김명호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보다, 부당한 사법권력에 저항하는 쪽을 택한 결과다.

김명호는 오랜 세월 켜켜이 싸여온 왜곡된 권위, 그 심층을 뚫고 올라온 개인이다. 그러므로 이제 제2 제3 김명호가 속출할 것이며 우리는 거기에 익숙해질 것이다.

김명호는 동료교수가 출제한 대학입시 수학문제의 오류를 지적하고, 이를 바로잡을 것을 주장하다가 해고됐었다.   

문제의 오류를 인정하면 대학은 물론 수학과의 권위가 무너진다는 학교 쪽과 동료교수들의 합치된 위기의식, 혹은 뒤틀린 집단의식에 당한 불의(不義)의 일격이었다.  

김명호가 석궁사건으로 피소되기 전에 제기했던 교수지위확인소송은 ‘정의는 상식이다’를 구하는 방정식을 확신하는데서 비롯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말을 빌리면, 합법적인 모든 수단을 강구했는데 소용없었고 소는 기각됐다. 그의 수학적 사고가 심각하게 손상됐다. 믿을 수 없는 현실, 그걸 인정하면 정체성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가 자신을 쫓아낸 대학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신의 가치관으로 점철된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는 법원의 부정의(不正義)에 더 큰 상처를 입었다. 거기에 터무니 없이 나약한 개인을 재확인했다.

그가 석궁을 들고 항소심 판사를 찾아간 것은 법원 밖에서라도 납득할 만한 이유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의 흉기를 소지한 시위는 현행 법률에 비추어 합법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다만, 검사가 김명호에게 위협과 관련한 형법 조항을 찾아 죄를 묻지 않고, 뚜렷한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흉기등 상해’ 혐의로 구속 기소한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판사집단의 김명호 엄단 의지 공표는 기소 전에 있어진 일이었고, 이 때문에 검찰의 무모한 기소가 그와 무관하지 않았다는 추론이 별반 부자연스럽지 않다.

판사 사회, 눈먼 집단이기주의

법정을 주재하는 판사는 김명호가 구속기소된 이유를 뒷받침 할 증거심리 요구를 모두 묵살했다.

당초 빗나갔기에 벽에 맞아 부러진 것으로 추정되는, 피해자가 확인했던 화살은 온데간데 없어 피고측이 담당 검사를 증거인멸죄로 고발했으나 무시됐다.

피해자의 겉옷과 속옷에 묻어있는 혈흔이 중간에 있는 와이셔츠에는 한 방울도 묻어있지 않은 현상은 불가사의로 남았다.

혈흔이 피해자의 것인지의 여부 확인 요구도 판사는 배척했다. 항소심 판사는 경찰과 검찰 1심 법원에서 매번 진술을 바꾼 피해자의 증인 채택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사가 김명호의 유죄를 입증할 위와 같은 핵심쟁점들에 대해 모두 “모르겠다”고 대답했지만, 판사는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은 궁극적으로 유·무죄를 가리는 일이다. 법원이 ‘엄단’이라는 의지 천명으로 사법질서 붕괴와 권위 훼손을 예방하고자 했다면 유죄로 가려진 뒤에도 늦지 않았다. 특히 법원이 특정한 범죄 사실에 대해 결의하고 공표하는 것은 상궤를 벗어난 정치적인 행위다. 법관의 정치행위는 금지되어있다.

법관은 공명정대의 표상이다. 하물며 법관이 범죄를 예단하고 응징을 표방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

‘부러진 화살’은 ‘부러진 민주주의’와 ‘부러진 사법정의’를 동시에 가르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