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4.11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물갈이'가 대세다. 오는 12월 정권을 탈환하려는 쪽이든 지키려는 쪽이든 수혈 없이 전투에 나설 수 없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여야가 내놓은 공천기준을 우리가 혁신의 결정판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정치에 냉소적이었던 계층의 눈높이에서 고민한 흔적을 찾게 되는 배경이다.

정치권은 그동안 심판대에 오를 때 마다 인적쇄신을 부르짖었지만, 대부분 환심을 훔치는 선언에 그쳤기에 그 표방 조차도 식상하고 의심스러운 작태가 되기에 이르렀다.    

여당은 무능과 부패, 독선과 독단으로 저지른 정권의 온갖 실정을 건성건성 싸서 부산스럽게 짊어지고 길을 나섰다. 뛰어가고 있다.

저대로 목적지까지 흘리지 않고 잘 갈 수 있을까. 짐 꾸러미에 매장하거나 소각하거나 할 폐기물들이 남아있을까.

야당은 여전히 낡은 구성원들을 끌어안고 여당에서 날아오른 표들을 유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정표가 가르키는 곳에는 여당과 다른 환경이 존재하지 않는다.

저런식으로 기득권 지키기나 지분나누기 같은 낡은 행태를 배제할 수 있을까.

민주통합당은 지난 6일 245개 지역구 가운데 최대 30%에 대해 경선없이 전략공천하고, 15%는 여성후보를 공천하기로 최종 확정했다.

전략공천이라니, 민주당이 그동안 시대정신을 담아내지 못해 외면받아 왔다는 성찰이 있다면 그 발상부터 시대착오다.

특히, '여성후보 15% 공천' 기준에선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망령든 정당 마인드가 그대로 드러난다.

민주통합당의 현역지역구 여성 국회의원은 모두 4명이다. 현재 89개 의석을 감안하면 6.38%에 해당한다. 현역은 물론이고 4명의 여성을 더 공천하겠다는 뜻이다.

현역의원 4명 가운데 이미경은 4선이고 추미애와 조배숙은 3선의원이며 박영선 의원만 재선이다.

무능력한 낡은 정치를 청산하라는 시대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민주통합당은 공천 심사 지표로 눈을 가린채 양날의 검과 천칭저울을 들고 있는 고대 그리스 정의의 여신 '디케'를 내세웠다.

눈을 가린 '디케'는 개인적 연고를 배제한 객관성과 공정성의 상징이다.

그의 저울은 특정 후보와 관련해 알려진 사실과 실재를 충분히 살피고 엄밀하게 판단하는 도구여야 할 것이다.

그가 들고 있는 양날의 검은 함부로 휘두른 칼날에 자신이 다칠 수 있다는 암시다. '공천'의 검으로 신인의 정치 진출을 막아 온 기득권 남용이 오늘의 불신과 단절의 원인이 아니던가.

그러나 민주통합당은 눈을 가리는 것은 고사하고 지분나누기에 고착화된 낡은 정치행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서로 크기가 불균등한 저울판을 사용하며 임의의 추를 지닌 상태다. 들고 있는 검이란 게 한 쪽 날만 번득이며 기득권에 반하는 쪽을 향한 양상이 아닌가.

시대의 관점에서 낡은 정치인은 상징적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99%의 서민을 양산한 재벌위주의 정책과 제도 만들기에 앞장서거나 합심했던 대표집단의 구성원들이다.

혹은 주권 포기와 인권 유린을 일절 견제하지 못한 존재들이며, 자신이 무사안일을 취하는 대신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을 박탈당하는 것을 방조한 사람들이다.     

낡은 정치의 폐해는 주로 '패거리'에서 비롯한다. 패거리가 지향하는 방향성 안에서는 옳은 목소리가 묻히거나 소외당한다.

패거리 정신은 기득권을 존중한다. 패거리의 '물갈이'는 오로지 기득권을 노린다. 여야가 공천 심사위원회 구성부터 파열음을 냈던 원인은 그런 사당화(私黨化)에 있다.

국민에게 공천권을 되돌려준다는 명분 아래 외부 명망가들을 대거 영입해 '공심위'를 구성했지만, 출발 전부터 내부에서 불만이 제기돼 삐걱거리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는 진영아 공심위원이 공천심사위 구성 다음 날 중도사퇴 했다. '의식있는 시민'이 선정 이유였는데 적극적으로 정치활동을 했던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영향력에 따른 공정성 시비가 일었다.

민주통합당에서는 문성근 최고위원이 시민사회 측 대표가 빠졌다며 공심위의 전면 재구성을 요구했다.

장세환 의원도 공심위가 친노무현 세력과 특정지역 위주로만 짜여졌다며 한명숙 대표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정파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이 초입에서부터 표출된 것이다.

기득권에 사로잡힌 망령든 정당

이대로는 '상대 후보와의 경쟁력'이나 '교체지수', '원천 배제' 같은 공천혁명의 지표들이 공천심사의 중심에 설 수 없다.

공심위원들부터 계파간 대리전을 치르고, 후보들이 이를 계승하는 현실 속에서 공천개혁은 어불성설이다.

정치권은 매번 30% 안팎의 새 얼굴을 영입한 모양세를 갖추고 참신한 인재를 발굴했다고 강조하며 표를 받아왔다.
그러나 정치 신인 조차도 당선이 되면 순식간에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일개 계파의원으로 전락하는 일이 반복됐다.

물론 무조건 물갈이를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지역의 입장에서 국회나 정부에서 중책을 맡아 일 할 인재가 많이 필요하다.

다만, 다선의원들은 인지도와 지지기반이 정치신인에 비해 우월한 만큼 의정활동과 능력, 도덕성을 엄격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4.11총선에서 새 인물을 뽑겠다는 비율이 대부분 절반을 넘긴 각종언론매체의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해야 한다.

특히 익산지역에서는 현역의원을 지지하는 비율이 채 25%가 안됐다.

4.11총선은 대선으로 가는 징검다리다. 그래서 존재감 없는 중진의원들에 대한 용퇴론이 불거지고, 중진의원들의 지역 불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익산지역에서 민주통합당의 후보들이 난립하는 것은 중진의원에 대한 지역민들의 회의감을 반영한다.

인적쇄신은 '지속'과 '도태'를 가늠할 진화의 고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