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시끄럽다. 지난 17일 오후 단독판사회의를 연 서울서부지법을 필두로 재경지역 법원들의 평판사들이 연쇄적으로 판사회의를 소집하고 있다.

정권의 부적절한 행태를 희화화한 언어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촌평했다가 재임용에서 탈락된 서기호(41) 판사가 그 격론의 중심이다.

서기호는 지난해 12월 7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앞으로 분식집 쫄면 메뉴도 점차 사라질 듯. 쫄면 시켰다가는 가카의 빅엿까지 먹게 되니. 푸하하"라고 썼다.

같은 날 방통위가 SNS검열을 시작하는데 대해 "쫄지않고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누리겠다. 쫄면 정부가 의도한 바대로 되는 것이다"로 읽히는 개인적 의견 표명이다. 

그가 소속된 법원장은 그에게 구두로 신중한 처신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편향성 시비에 휘말려 곤경에 처한 한 교사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SNS에 올렸다.

수도권에 소재한 같은 중학교 교사는 "(A)는 △교회장로다 △대표적인 친미주의자다 △친일파와 손잡았다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자 경찰을 앞세워 가혹하게 탄압했다 △그러다가 권좌에서 쫓겨났다 △해외로 망명한 뒤 그곳에서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등의 예문을 제시하고, 여기에 속하는 대통령의 이름을 물었다

이는 '즉각 처벌' 여론을 불렀고, 특정 언론사의 기자는 교사를 '편향적'으로 규정하는 등 압박을 가했다.

위축된 교사는 SNS에 걱정하는 글을 올렸고, 서기호는 "버티면 이긴다"고 응원했다.

교사가 낸 문제가 '가카의 빅엿'에 겹쳐지면서 그는 전현직 대통령을 모욕하거나 부적절하게 묘사하여 매도하는데 동조하는 판사가  됐다.

서기호 판사는 지난 3개월 동안 여권은 물론이고 친여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이 과정에서 판사의 정치적 중립 공방이 과열되면서 본질이 녹아 형체를 잃어버렸다.

'법정은 판사의 사생활을 몰수하는 것'으로 오인한 폭거가 난무했다.

서기호는 법정을 주재하는 판사에게 요구되는 잣대에 의해 사생활이 평가되어 '좌 편향 법관' 혹은 '자질없는 법관'으로 매도된 것이다. 그러나 서기호는 "다른 의견이 존재하는 건 당연하니 표현합시다"라는 자신의 지론을 꺽지 않은 채 SNS상에서 촌철살인의 어록 생산을 이어갔다. 

서기호 판사에 대한 공격은 현 정권의 의지를 등에 업고 있거나 공조하는 양태를 띠고 있어서 그에 대한 대법원장의 재임용 부적격 판정 통보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정권이나 친여세력의 목소리는 헌법 위에 군림하며, 그런 영향력으로 소위 그들의 적을 여지없이 파멸시키는 현주소다.
서기호가 이런 구조를 몰랐을 리 없다. SNS에 올라 온 그의 글들에서 그가 권력의 남용과

도덕성, 미숙 혹은 편향성에 피해를 입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얼마나 우려하는 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나는 그가 책임 있는 개체로서 파급력이 가장 큰 힘을 조절하지 못하는 주체들을 향한 경고와 저항에 앞장섰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에 따른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춘추시대 제(齊)나라 임금 장공(莊公)의 수레바퀴를 앞발을 들어 가로막은 사마귀의 기상이 거기에서 엿보인다.

고사 당랑거철(螳螂拒轍)에서 장공(莊公)은 사마귀의 긍정적인 면인 물러설 줄 모르는 '용맹'을 높이사서 수레를 돌려 사마귀를 피해가게 했고, 이런 일화는 출중한 용사들을 제나라에 구름처럼 몰려들게 했다.

춘추시대와 지금 다른 게 있다면, 이 시대에 장공(莊公)은 없고 서기호의 부정적인 면인 '무모함'만이 부각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쇄적으로 열리고 있는 판사회의는 또다른 사마귀들의 준동일까. 아니다. 그들의 주제는 법관의 연임제도와 근무평정의 공정성이다.

그 단초가 서기호 판사 일 지언정 결국 평판사들이 사법파동 우려를 감수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법관의 불완전한 신분보장 문제다. '보복성 조치'에 대한 반발로 포장했지만, 들여다보면 법관사회에 누적된 불만이 그들을 움직였다.

'대법원장의 법관 길들이기' 시비에 편승했을 뿐, 그들의 담론에는 판사 개인이 누려야 할 '표현의 자유'는 없다.

사실,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보여지듯이 그들은 스스로 법원의 종속관계에 길들여져 있고, 그것은 특정한 사건 심리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기까지 한다.

서기호는 수레를 막아선 사마귀 인가

내부 관계망에서 자유롭지 못한 판사들의 양태는 재벌에 대한 판결들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법원은 천 억대 조세포탈과 횡령, 수천억대 배임, 수천억원대 혹은 조단위를 넘어서는 분식회계 같은 중대범죄를 저지르고 피소되었던 재벌총수들에게 일관되게 관대했다.

법원 밖 법조계에서는 이구동성 재벌총수들의 장기 징역살이를 가늠했지만, 대부분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판결문에는 그 이유가 구구절절하게도 기술됐다. "회사발전에 상당히 기여했으므로", "회사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국내 1위라서", "국가 경제에 이바지해서" 등등 이다.

판사회의에 참여했거나 참여할 판사들의 뇌리에 불가항력적인 기득권에 항거하는 미미한 존재의 사마귀가 있었거나 앞으로 있을까. 적어도 서기호 판사에게는 법정안에서 억울한 사람과 사마귀의 신념을 가려낼 눈이 생겼겠지만, 그는 법복을 벗어야 할 처지다.

법원에서 관료주의는 어떤 형태로든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해서 재판할 법관의 권리를 직접적으로 사멸하는 독소다.

사법관료화를 배격하지 않고 윗선의 눈치를 보기를 근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돈 없고 배경 없으면 판사들의 방망이 엿을 각오해야 하는 억울한 국민들을 생각하라. 지금 대법원장과 법관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통부재의 폐단을 타산지석 삼아, 법정에서도 소명과 묵살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지를 살피라.

법정이 차별 없는 신성불가침으로 서면, 굳이 판사회의를 열지 않아도 국민들이 불의(不義)앞에 분연히 나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