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사람을 기중기에 묶어 거꾸로 매달고 땅에 구덩이를 파 목만 나오게 묻는 장면을 현실 속에서 마주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더구나 고등학교에서 선배들이 후배 버릇을 고치기 위해 동원한 수단이었다니, 그런 그림을 잠시라도 머릿속에 그려보았을 학부모들이 있었을까.

몇 일 전 구속된 대구의 한 고등학생들의 폭행과 가혹행위 백태 앞에서 호흡곤란을 겪지 않았을 국민은 또 얼마나 될까.

그들은 또 후배를 흉기로 위협하면서 개처럼 바닥을 기어가게 하고, 강제로 뜨거운 물 샤워를 시키거나, 저수지에 집어 던졌다.

특히, 이런 폭력은 후배들을 상대로 대물림되면서 일상화됐다. 믿을 수 없는 일을 믿어야만 하는 우리들의 탈출구는 '불감증'이다.

지난해 7월 대구의 한 여중생이 자살한 이후, 교육과 치안 당국이 다각적으로 가해 주체 소탕에 나섰지만 그 심층에 접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8개월 가까이 일진회, 폭력써클, 집단 따돌림 등 학교폭력 현장이 언론에 속속들이 조명된 듯 하지만, 학교 안에서 만연된 폭력은 여전히 우리들의 상상 밖에 있다.

학교 폭력 문제가 국민적 사안으로 자리 잡으며 그 논란이 들불처럼 번지던 지난 16일, 앞서 말한 대구 고등학교 '폭력 전통'이 적발 된 것은 그 단적인 예다.

현장에 닿지 않는 교과부의 대책과 소리만 요란한 치안 당국을 함께 지켜보면서 우리는 갈수록 부푸는 불안에 짓눌리며 무력감에 사로잡힌다.    

여기서 우리가 두려워 해야 할 일은, 말단에서 드러난 비인간적 폭력행위에 놀란 나머지 그 근원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사실, 그 심연에는 음성적인 왕따가 있다. 담임 교사가 눈치채기 어려우며, 알더라도 그 실체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학생들 사이에서 영향력 있는 집단은 특정한 기준을 가진다. 누구든지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관습 그것은 학교사회 내부에 깊숙이 스며든지 오래 되었다.  

폭력의 전통화는 그런 토양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났다. 집단 왕따를 주도하는 우두머리(일진)나 그 일당의 당당한 태도는 바로 '지배자'의 오만에서 비롯한다. 

중간자이면서 집단의 압력에 동조해 학우를 괴롭히는 현상도 그들 폭력집단이 학교사회의 질서로 자리잡고 있는데서 기인한다.

단수이거나 소수의 피해자가 다수의 가해자 안에서 정의(正義)로 서기란 어려운 일이다. 피해자가 있을 경우 일당 뿐 아니라 중간자 방관자까지 모두 가해자인 이유다.

소극적이거나 미필적 혹은 묵인에 의한 집단 왕따였다면 누가 부정의(不正義)에 포함되고 싶어하겠는가. 학교사회는 왜곡된 공존의 방법을 터득하는 학습장이다.

세상에서는 결코 용인될 수 없는 일들이 학교 안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함구'라는 불문율 때문이다. '함구'는 편하다. 제3의 왕따 피해자가 되지 않는 길이다.

'함구'는 폭력성이나 분노, 슬픔, 공포 같은 불안정한 정서들을 에워싼 부도체이며, 오히려 불화를 평화로 굴절시켜 보여주는 프리즘이다.       

따라서 왕따는 문제로 불거지지 않으려 하는 관성을 지니며, 견딜 수 있는 한 피해자도 가해자도 심리적 마비상태에 도달하게 하는 방어기제다.     

이는, 잘못을 저지른 왕따에게 벌을 주되, 가해자 각 개인이 가혹하다고 여기지 않는 범주 안에서는 피해자가 적응해야 할 통상의 사회생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정서와 맞물려있다.

이런 경우 가해자는 행위 과정에서나 사후에도 가책을 받지 않으며 결국 가해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반란을 일으켜 사안이 간혹 학교폭력위원회에 회부되거나 했을 때 그렇게 왜곡된 질서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수십 명이 한 사람에게 집단으로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고 욕설을 퍼부었지만, 가해자 각 개인의 항변은 "한 번 툭 건드렸을 뿐"이고, 학우들간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피해자가 과잉반응을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

교실내 피라미드 권력구조 해체해야

나아가 본말이 전도되어 아무런 잘못도 없는 학우들을 폭력배로 지목한 피해자가  오히려 문제아로 낙인 찍힌다.

특히, 가해학생들의 학부모들 사이에서 피해 학생은 '잘난체'하거나, 고자질 쟁이거나, 찌질이거나, 비호감이거나 해서 왕따를 부르는 존재다.

가해학생 부모들 사이에서 피해학생을 매도하는 소문은 급속하고도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반면, 학교 측은 '함구'를 택한다.

이 때 피해 학생이 선택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를 현실 속에 구겨넣고 적응하거나, 전학을 가는 일 중 하나다.

결과를 그렇게밖에 예측 할 수 없고, 그것이 현실이라면 학교사회 안에서는 '함구'가 최고의 덕목이다. 우리는 학교폭력이 발생 할 때 그것을 배운다.         

청소년폭력예방 재단이 2010년까지 3년 동안 벌인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학교폭력 목격시 62%가 '모른척 한다'고 대답한 결과가 그것을 단적으로 방증한다.

게다가 방관자는 3년 만에 27% 늘어나는 등 급격하게 늘고 있는 추세다. 반면, '말리거나 대응한다'는 같은 기간 동안 57.2%에서 31%로 줄어 정반대의 추세를 보였다. 

폭력이 발생했을 때 대응하는 체계는 너무 멀고 느리다. 가해자 혹은 방관자를 만드는 교실에 존재하는 일명 '피라미드 권력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그걸 위해 학생들에게 밀착된 보다 예민한 경보시스템이 필요하다. 폭력과 다름없는 왕따 행위를 위험으로 감지하는 지표가 마련돼야 한다. 
그걸 통해 왕따의 조짐이 보이면 학기 초에 해결하고 원천봉쇄 할 수 있다. 그것으로 부모나

학교, 교사가 학교폭력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불신을 걷어낼 수 있다.

경쟁사회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자와 전수자에 국한되는 시스템을 고쳐야 하는 이유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체계적인 인성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그래서 근원적인 해법이다

그것을 위해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학습된 무기력’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모든 대책은 탁상곤론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