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공인배

지난 12일 익산의 3선 여성 거목이 쓰러졌다. 큰 나무일 수록 바람에 약하다는 격언의 실증일 법 하다. 가지가 많고 뻣뻣한 덩치가 화를 부른 경우다.

어느 방향으로든 바람을 맞는 면이 컸다. 제 줄기가 굵기에 한껏 굵고 긴 가지를 뻗은데다 기형적으로 과밀한 가지들을 거느린 태만한 자의 최후다.

그 중 홀로 하늘 높이 치솟은 가지도 한 둘 있었다. 이 가지들은 높은 바람에 몸을 요령처럼 흔들어댔다. 가지 아래에 바람 한 점 없을 때도 나무는 조용 할 날이 없었다.

나무는 강풍을 만나서도 높은 가지들을 지켰다. 그들 가지는 끊어지거나 찢어지지 않는 대신 거목의 뿌리에 시나브로 상처를 입혔다.

다른 여러 원인이 겹쳐 뿌리가 썩었고 거목은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자신이 느끼지 못할 정도의 미풍에 쓰러지고 만 것이다.

중진 국회의원이 우리곁에서 사라지는 일은 불행한 일이다. 정부의 예산편성이나 국토개발 과정에서 지역안배를 생각하면 영향력 있는 국회의원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12년동안 국회를 출입하면서 인상적인 면모를 각인하지 못한 책임이 적지 않다. 또 지역의 문제로 자신의 뿌리가  썩어가는 걸 인지하지 못한 오류도 크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없었던 탓이다. 열고 듣고 살피는 일에 게을렀다. 이런 경우 측근들의 참언에 휘둘리기 쉽다.

가까운 소리는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들린다. 달콤한 아첨에 취한 것이 절대적인 파트너여야 할 상대를 오히려 적으로 만든 갈등의 원인이다.

도덕성과 유권자에 대한 불성실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우리는 잘 하고 있다"로 일축할 수 있었던 용기, 그것은 내부를 향한 귀는 크고 밖을 향한 귀는 지나치게 작은 불균형에서 비롯했다.

질퍽한 봉밀 속에 도취 된 상태에서 살을 에는 벌판의 삭풍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는 법이다. 뿌리 뽑혀 나뒹구는 나무의 참혹함이란, 힘이 있을 때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보다 넓게 소통하지 못한 것에 비례한다. "우리는 정치의 전장에서 항상 승리 할 수 밖에 없다"는 착각이 독선과 독재를 낳은 결과다.      

메스키타와 알라스테어 어법을 빌리면 무자비하고 파렴치한 모든 독재자들의 정치적 행동에서 독특한 요소란 찾아낼 수 없었다.

그들에게 정치란 오직 정치권력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일 이며, '우리' 또는 '국민들'의 공공복지를 위한 일이 아니다. 정치의 주체는 자신에게 유리한 일을 하는 데 급급한 개인이다.

대다수의 유권자는 정치에 대해 무지하고 나름 밝은 눈을 가진 유권자는 정치에 무관심해서 그들 정치조직의 연결고리가 노출되지 않는다는 경험칙이 그들이 살아가는 물이다.

지도자를 결정하는 데 최종적인 권한을 가진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보편성이 그들 오만의 근원이다.

외부에 어떻게 비쳐지든 지도자를 지키려고 하는 소수의 핵심 조직이 각자 추구하는 이익을 공유하는 한 어떤 형식으로든 조장이 가능하고 개인들을 지배 할 수 있다는 섬뜩한 방법론이 독단 정치의 동력인 것이다.

정치 지도자들의 의식속에서 자신과 소수의 핵심집단, 유력집단이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유권자들이 대규모로 연합 할 확률은 거의 없다.

만약, 유권자의 도끼가 그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해방의 정치를 정치지도자가 맞닥뜨린다면 그 충격이란 이루 형언키 어려울 것이다.

익산에서 세대교체 현상이 일어났다. 단순히 구태정치 물갈이에 그치지 않고, 수동적이던 개인이 지도자를 결정하는 집단지성으로 출현한 것이다.
이런 유권자의 의식 변화는 부적절한 정치 화학적 환경에서 비롯했다.

표면 아래 숨겨진 이해관계에 의해 유지되는 정치 현상이 도드라졌고, 사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유지되는 정치의 속성이 들끓었다.  

소위 권력균형, 당파성, 국익, 생존 같은 정치의 지표는 윤리교과서에 구겨넣어졌다. 더구나 정치인의 오만방자한 군림이 시끄러운 세상의 중심에 있었다.

최근 코리아리서치의 여론조사에 참여한 65.7%가 이 나라는 지금 "위기상황"이라고 응답했다. MB 정부가 남은 임기동안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분야로 경제회복(88.1%), 사회갈등 해소(29.4%), 정치개혁(28.9%)의 순을 들었다. 모두가 정치의 영역이다.

보여야 할 것이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 가득찬 것에 관한 의구심이 변화에 필요한 온도와 습도다. 

정치는 한정적인 자원의 고른 분배

떠난 정치인 보다는 새로운 정치 입지자들이 살펴야 할 정치의 현주소다.

개인은 예측 가능한 존재다. 정치가 예측가능하지 않으면 반드시 망한다.

정치인이 자유로운 생업과 균등한 기회 확보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혁신을 초래하는 기제가 된다.

사회란 늘 적대적이고 대립적인 이해를 가진 사람들과 세력에 의해 피할 수 없는 갈등이 상존하고 있는 곳이다. 정치는 그런 갈등을 해결하는 메커니즘이어야 한다.

나아가 갈등이 보다 성숙된 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승화시키는 것도 정치의 몫이다. 뒤베르제의 그런 주장에 제기할 반론은 딱히없는 듯 하다.

그렇다. 권력투쟁은 항상 인간들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를 유지·재생산시키거나 변화·혁신시키는 인간의 사회적 실천이어야만 한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토양에서만 정치는 영속성을 꾀할 수 있다. 익산에서도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한 공동체 의식의 회복이 일어나고 있다. 오늘, 여기서 다가올 대선에 대한 희망도 본다.

1970년대 독일의 녹생당을 창당으로 이끈 세계 평화운동가 페트라 켈리의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는 설파가 봄날의 새순 처럼 지축을 뚫고 올라온다.
정치의 영향은 위정자의 출세와 몰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밥 한그릇에 국 한그릇 먹는 우리들의 하찮은 밥상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