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공인배

익산에는 특정 정당의 정치 독점을 견제하는 길항력(拮抗力)이 없다.

정당주의 정치체제 아래서 정당간의 경쟁은 반드시 필요한 선순환 요소다. 정당은 정강(政綱)을 올곧게 실현 할 인물을 공천해야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나라 대부분의 정당들은 조악한 인물들을 너나 없이 부정한 방법으로 공천하고, 보다 손쉬운 경쟁 주제 혹은 실속 없는 이미지 정치에 함몰된 채 합리적인 경쟁을 도외시 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공급자(정당)간의 정치 독점 제어력은 사실상 상실됐다.

이렇게 정치 전반이 이성을 상실하게 되면, 감정과 감성에 호소하는 쪽으로 방향성이 경도되고, 지역할거주의 같은 부작용을 낳아 정치 독점이 고착화 될 수밖에 없다.

이럴때 시민단체나 집단지성들의 적극적인 평가와 효과적인 공표시스템은 정당간의 균형을 이끄는 길항력이 된다. 하지만 익산에는 그런 기능마저 없어 악순환만 존재한다.

이 도시가 왜 이렇게 됐을까. 이해관계에 얽힌 정치공동체나 종교공동체는 뚜렷하지만, 공리(功利)를 목표로 몸을 던지는 사회공동체는 미미하다.

그나마 군소 사회단체의 주요 구성원들은 호시탐탐 지역 정치판의 틈새를 노리며 정치세력화를 꾀한다.

리더들의 정치 지망으로 이탈이 발생하면 구심점을 잃어버린 사회단체는 침몰한다.

또한 정치인을 배출한 사회단체는 '목적이 불순한 단체'로 매도되며, 그런 꼬리표는 같은 이름의 사회단체 안에서 새로운 리더가 출현하는 것을 장기간 봉쇄한다.

경쟁이 속성인 정치란 기득권을 중시하는 까닭에 사회단체의 순수성을 강요하며, 사회단체 구성원이 정치인으로 편입하는 것을 기득권 손실로 간주한다. 그런 배타주의는 찍힌 사회단체를 백안시하며, 더이상의 편입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배척 수단을 동원한다.

이런 통제기제는 새로운 이름의 사회단체 출현을 촉진하며, 이들 구성원들은 '봉사활동' 같은 시민사회로의 접근성이 강한 수단들을 동원해 순수성에 광택을 낸다.

혹은, 아예 생활정치라는 애매한 가치를 표방하며 활동 전반을 제도권의 조력에 대폭적으로 의존하는 단체도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러나 순수성을 견지하든 제도권에 일부 협력하는 단체든 이들의 재정상태는 당초 설립 취지를 독립적으로 달성해 나가는데 턱없이 모자란다.

익산의 시민단체들은 모두 자치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같은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처지다. 제도권에 반하는 담론이 기를 펴지 못하는 구조다.

사실, 사회참여는 모두 정치적 행위다. 사회단체의 특정한 지표와 활동에서 정치적인 것을 뺀 나머지를 '순수'로 규정하고 이를 강요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지분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기득권세력의 논리일 뿐, 사회단체의 순수성이란 현실 속에서 구체화될 수 없는 허구다.

그런데 기득권 세력과 사회단체는 그런 모호한 지점을 서로 암묵적으로 인정하며, 사회단체 조직의 정치화를 반칙으로 합의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시민단체의 타의 혹은 자의에 따르는 '순수성' 지키기는 정치행위가 불순하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시민단체가 스스로 그런 순수성을 포장했던 탓에 시민들이 시민단체 구성원의 정치적행위를 '변절'로 인식하는 불편한 역설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시민단체 지도부 일원이 정치영역으로 이동할 경우 시민들이 먼저 그 시민단체를 외면하는 이유다.

이같은 부작용은 특히, '정치는 불순하다'는 인식의 왜곡을 심화시킨다.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무관심은 시민단체들의 명멸과 무관치 않다.

나아가 이런 왜곡은 지역의 정치행위와 시민단체의 활동을 뚜렷하게 구별한다. 시민단체의 지향점이 현실 정치와 동떨어진 것으로 취급된다.

이 지역 시민단체의 태도가 그것을 부추겨왔다. 어떤 문제를 비판하되, 몇 줄의 성명은 대개 한 둘의 의견이 정리된 자신들의 존재 확인에 불과했다.

비판은 제도권이 흠칫 놀라 바라보게 하는 정도의 선에 머문다. 성명은 말의 성찬일 뿐, 그 결과에는 매달리지 않는다. 시민단체의 직접적인 정치활동 혹은 참여 과정에서 시민활동가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것은 불순한 목적을 가진 기득권층 후원인이 시민단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여지도 준다.

저항만이 장벽 뚫는 길, 배고픈 것 감내가 출발점

정치든 시민운동이든 '행동'을 수단으로 삼는다. 어느 쪽이든 행동하려면 신념을 세워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면서 혁신을 부르짓는 것은 진정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정치를 시민에게 돌려달라"고 요구 하려면, 저급한 파벌정치 또는 특권의식을 해체해야 한다. 저항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힘 없는 자에게 돌을 던지고 힘 있는 자에게는 빌붙는 마인드로 시민사회단체가 이 지역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다원성의 가치를 지녔다고 어찌 감히 말할 수 있겠나.

사람이 브랜드다. 사람이 일류의 조직을 만드는 것이지 조직이 일류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정치란 출발점이 같지 않은 경기다.

어디에서든 정치는 발아하고 사람들 속에서 자란다. 정치는 잡초와 같다. 어떻게든지 살아남는 방법을 염색체에 기록하고 번식하는 생명현상이다.

시민단체는 정치단체다. 기성 정치단체와 속성이 다를 뿐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이 출발점이다.
다원성의 가치를 세워 정치에 대한 길항력을 지닌 시민사회공동체를 구상한다면 기득권의 부조리와 끊임없이 충돌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가진자에게 "나누라"고 요구할 수 있기 위해선 '대표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것은 정치행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기득권의 장벽을 뚫고 진입하려면 저항이 필요하다. 그 저항을 함께 할 다수의 시민들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 배고픈 것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