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배/편집국장

불쾌한 정권이다. 선량한 국민들의 뒷조사나 하면서 상쾌할 일이 있겠는가.

'사찰'이라는 말을 접하는 우리는 반사적으로 사적이고 어두운 공간에서 번뜩이는 눈을 떠올린다. 뒤를 캐려는 목적이 있는 이상 신선한 쪽에는 별 관심이 없는 법이다.

썩은 냄새를 찾아내고 그것을 뒤지면서 울컥 넘어오는 역겨운 것들을 얼마나 삼켰겠는가. 그래서 필경 자기 속이 뒤죽박죽 되는 기분은 무엇이 되겠는가.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MB 정권의 태도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무차별적으로 민간인을 사찰하면서 광범위하게 포착되는 개인의 취약성에 고무되었을 것이다.

권력을 쥔 주체가 법이 정한 권한의 범위을 넘어 국민을 통제 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는 망상의 근원이다.

이는 또 정권 자신의 썩은 냄새가 다른 것들과 섞여 자신의 냄새를 은폐 할 수 있다는 착각을 낳았다.

위기에 닥칠 때 마다 "모두 다 부패하긴 마찬가지"라는 주장을 항용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편향된 정보에 노출되어 나타나는 패색 증후군이다.

지난 3월 29일 KBS 새노조가 현 정권의 무차별 사찰 사실을 폭로한 이틀 뒤, 청와대는 노무현 정부도 사찰했다고 맞불을 놨다.

그러자 노무현 정부의 사찰이 적법한 공직감찰이었느냐 민간인 사찰도 포함됐느냐에 대한 공방이 이어졌고, 그 와중에 박근혜는 "어느 정권 없이 불법 사찰했다"고 물타기하며, "정쟁만 일삼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면서 굴레를 벗으려 했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문제를 민생과 무관한 정쟁 대상으로 규정한 것이다. 또한 노무현 정부의 공직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감찰과, 현 정권의 정적이나 민간인을 사찰한 것을 변별하지 않은 채 덮어놓고 '마찬가지 론'을 들이댔다.

사찰 보고서의 '국정철학 구현'이라는 평가항목에선 현 정부의 국정철학이 무엇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참여정부 때 요직을 차지했던 인사나 호남출신 공직자들은 갖가지 사유로 이 평가항목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평화로운 촛불집회에 물대포 사용 같은 강경한 대응은 여러모로 부적절하다는 서울지방경찰청 경비부장의 소신있는 현장 판단은, 오히려 소신없는 태도로 평가됐다.

다른 인사를 평가하는 같은 평가항목에선 풍문에 불과한 음해성 정보를 빼곡히 적어 표적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수사부장에 대해서는, 그의 처가 참여정부 권양숙 전 영부인과 인척간으로 처를 통해 권여사에게 청탁, 승진했다는 소문을 평가 지표로 삼았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장에 대한 '국정철학 구현 '평가 항목에서는 "부내에 특정 파벌(호남-서울대 사회복지학과)의 중심 인물로 정보를 독점하고 인사를 농단한다"고 비틀었다.

이 같은 평가항목을 기준으로 보면, 현 정권의 국정철학이라는 게 처음과 끝이 타자와 섞이지 않는 '배타주의'다.

패거리들의 독점을 위해 공존의 구조를 파괴하며 몰다양성의 세계를 추구하는 살벌한 집단이다. 고위직 공무원들의 경우 친 정부 성향인가의 여부가 인사의 지표 아닌가.

그 일에 적임이냐 아니냐는 평가 기준에 없다. 전 정권의 잔류 세력들을 철저하게 솎아내 현 정권의 안녕을 도모하겠다는 집요한 의지가 도처에서 번뜩인다.

민간인 사찰에 대해 정부와 국민사이에 놓인 쟁점은 '대통령이 합법적인 범주 내에서 보고받았는가'의 여부다. 보고가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지시도 뒤따르는 법이다.

정부 조직 시스템상 국무총리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공직자 감찰 결과를 보고하는 것 말고는 전부 불법이다.

그래서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의 몸통을 자처한 이영호가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라는 사실부터 상상의 범주밖이다. 상식선에서는 사찰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 할 수 없다는 명제가 따라붙는 이유다.

비선라인의 직보체계를 검찰이 과연 밝혀낼 수 있을까. 더구나 지난 2010년 같은 사안의 민간인 사찰을 수사했던 검찰의 은폐·축소 의혹에는 아직 먼지도 쌓이지 않았다.

실체적 진실로부터 거리를 두면 살고, 가까이 다가가면 자살행위인 상황에서 검찰의 향방을 생각하며 국민들은 쓴 웃음을 짓는다.

더구나 권재진 법무부장관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이 들통나 검찰의 당시 1차 수사가 종결될 때 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근무했던 인물이다.

검찰 수뇌와 청와대로부터 자유로운 특검 가동이 그동안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던 손을 색출하는 것 만이 유일한 희망인 듯 하다.

열린 실체적 진실 규명의 장 필요

지난 2일 검찰은 "범죄혐의가 인정되는 관련자들에 대해 신분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단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엎드려 있어야 할 때 불쑥 고개를 들고 겸허한 자세와 국민의 여망을 들먹이는 상투적인 어법에서 그 의도가 묻어난다.

특검은 실효적 수사를 위해 어떤 식으로든 검찰조직과 결합 할 수밖에 없고, 조력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민간인 사찰 재수사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다.

민간인 사찰과 관련해 양심선언을 하고, 지난 4일에는 자신이 받은 입막음용 돈다발의 관봉 사진을 공개한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전달한 쪽을 청와대로 지목하고 있다.

검찰의 지난 2일 발표가 "그동안 신분이나 지위고하에 따라 법과 원칙의 잣대를 다르게 댔다"고 들리는 건 누구 탓인가.

검찰 일선의 1차 수사 결과, 검찰 수뇌가 사건과 맺고 있는 직접적인 관련성, 청와대를 향한 모든 의혹들은 이미 특검을 둘러싼 천 길 깎아지른 장벽이다.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참여 할 수 있는 제 3지대의 열린 실체적 진실 규명의 장이 필요한 까닭이다.

미숙하거나 부덕하거나 혹은 연대를 벗어나지 못했거나 그 자리에서 어쩔 수 없었던 자신이 불쾌하지 않은가. 스스로 버리면 상쾌할 텐데. 인간 노무현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