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공인배

유권자는 최선을 선택하지 못한다. 인물에 대한 비교평가는 거치겠지만 유권자의 선택은 늘 차선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서 비교우위를 차지하는 쪽을 최선이라고 인식할 뿐이다. 정치는 늘 관심있는 자의 것이다.

선거판 밖에 최선의 인물이 있다 한들 의지가 없으면 기회를 얻지 못한다. 또 그 최선이 선거판에 진입하더라도 그에 대한 평가가 유지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정치인은 광장에서 발가벗을 것을 요구받는다. 선거판 밖에서는 별다른 흠결이 없던 사람이 정치 무대에 오른 순간 평가절하되어 뭇매를 맞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정치에 뜻을 둔 사람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덕목이 신독(愼獨)인 까닭이다. 남 앞에서는 물론 자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정치인의 기초다.

오늘 우리가 정치를 생각하면 불안의 근저에는 정치판에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이 스스로에게 '떳떳한가'를 물을 줄 모르는 야바위꾼의 근성이 있다.

오직 주어진 역학에 기대어 당선가능성만을 계산한 상술에 지배되는 정치가, 준비를 하지 않아도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막가파식의 정치인을 양산해 온 꼴이다.

정치에 뜻을 세운다는 건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이 있다는 것이다. 앞서 남들이 잘 못 간 길이 아니라 절대다수가 행복해지는 자신의 목표를 제시하고 평가를 받는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길 앞에 놓인 장애물을 어떻게 제거해 나아갈 지, 필요하다면 새 길을 어떻게 개척해 나갈지 뚜렷한 복안을 내 보여야 한다.

외도하지 않고 한결 같이 똑바로 가겠다는 약속도 전제되어야 한다. 정치인은 공의로운 세상을 이룩 할 수단이며 정치는 그 목적이다.

그러나 정치 입지자들이 정치를 '사사로운 밥'으로 인식하는 탓에 그들은 유권자들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속빈강정들의 무임승차와 야합이 판을 친다.

4.11총선 국회의원 후보가 지난 6.2 지방선거 자치단체장 후보의 공약을 배껴서 내놓을 수 있는 풍토다. 우선, 자신이 왜 국회의원 후보인가부터 모르는 소치다.    

지역을 대표해 정부를 감시하는 입법부의 한 구성원이 되겠다면서, 지역에 대한 청사진 조차 남의 것을 원용하는 사람에겐 일말의 수치심도 없다.

자괴감을 느끼는 쪽은, 초등학생도 알만 한 '정치인의 조건'을 말해야 하는 사람일 뿐이다.

지역사람들의 먹는 물이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고, 백제의 도읍을 말해주는 문화유적에 명운을 거는 도시(익산)의 후보가 가장 중요한 유적의 위치도 모르고 있었다.

대형 할인마트가 지역의 막대한 자금을 역외로 유출하고, 영세상인들의 줄도산을 일으키는 등 지역경제 침체의 주범이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는데, 특정 대형마트를 외곽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더구나 이 후보는 재산을 허위로 신고했다는 선관위의 판명이 있었다. 선거사무소를 출입하는 인물들을 둘러싼 금품살포 의혹도 꼬리를 물었다.

재산축소신고는 사안이 중대하다. 유사한 사례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은 판례도 있다. 이 후보가 당선되면 또 막대한 비용을 들여 보궐선거를 할 공산이 아주 높다.

그래도 이 지역(익산 乙)의 유권자들 20.2%(투표자 중 39.52%)는 그런 후보를 찍어 당선시켰다.

오늘, 세력화된 눈먼 유권자들과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당과 후보 앞에서 집단적 좌절을 목도한다. 그런 상태를 알지 못하는 것은 또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어느 후보는 한 방송 토론회에서 '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간의 갈등해소 방안'이라는 주제가 "부적절하다고" 견해를 뚜렷하게 밝히면서도, 주어진 주제를 다른 후보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더 나아가 주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현역 자치단체장의 재임기간에 공무원들이 사법처리된 사건이나,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단체장의 전력, 단체장 부인의 인사 부정 개입 의혹에 대한 검찰의 내사 같은 오래된 언론 보도 내용을 읽었다.

유권자들은, 총선 출마 당사자가 아닌 장외의 자치단체장을 표적으로 삼은 그의 비방과 명예훼손을 지켜 보면서 그 밖에 다른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열거된 모든 사건은 사법기관에 의해 자치단체장과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이 검증됐었고, 벌금형을 선고받은 선거법 위반은 전북대-익산대 통합 당시 지역발전에 실익을 안겨줄 학과를 익산으로 유치하는 과정에서 비롯한 비용 정산이 합리적 범주를 벗어난 결과였다.

그가 '진보'의 외피를 입고 참신성을 내세우는 후보 였기에, 주제파악을 못하고 총선과 무관한 사람을 난도질 한 점이 못내 석연치 않고 구태 정치인에게서 받는 충격보다 훨씬 더 큰 실망감을 안게 된다.      

기초 부재 불안에 유권자는 피곤해

결국 변별력 문제가 아닌가. 토론의 주제 혹은 사건의 기록을 이해하고 특정인과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것은 최소한 정치 입지자가 지녀야 할 학문적 기초에 기인한다.

뿐만 아니라 총선을 함께 뛰는 후보 당사자들간에도 개인사를 언급하는 것은 지극히 조심해야 할 사안이다.

어느때 보다 치열했던 총선 격전장을 벗어난 오늘, 특별한 '집단적 개인'을 지향하는 그 개인들의 터무니없는 내용에 낯빛을 잃었던 지난 며칠을 생각한다.

어떤 이유로든 대중을 피로하게 만드는 건 정치가 아니다. 거칠게 좌충우돌하며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도 않는 행태는 불안을 낳는다.

오늘 이렇게 극도의 피로감에 짓눌리는 것은 대열에서조차 낙오할 허약한 사람들이 대열 앞으로 나아가 무리를 이끌겠다고 설친 등쌀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치에 뜻을 둔 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발가벗고 자기 자신을 살피는 것', '체급에 맞는지 무게를 재는 것'이다.

그런데 무모하고도 무례하며 파렴치한 사이비 정치인들은 여전히 우리사회의 주류다. 익산 을지역에서 당선자를 낸 2만5,797명의 유권자들은 함량미달의 정치인이 들어 올리는 무게를 함께 거들어 준 사람들이고, 그 보다 많은 투표 불참 유권자 6만815명은 그들의 자양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