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공인배

공교롭게도 지난 4월 28일은 원불교 대각개교절, 5월 28일은 석가탄신일이다. 익산에 사는 우리는 이 한 달 사이에서 여러모로 선각자들의 사자후(獅子吼)에 노출된다.

대각개교절(大覺開敎節)은 97년 전 농민의 아들 박중빈이 창시한 원불교가 세상을 향해 처음 문을 연 날이다. 

원불교의 교조 박중빈의 만생령을 구원할 발견은 석가의 깨달음과 같다는 데, 그 표상은 둥근 원이다.

나는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性)이 자기 내부에 있다는 걸 본(見) 것'을 석가의 깨달음(견성성불, 見性成佛)이라고 여기는 범부(凡夫)다. 그런 범주에 머무는 관념으로 원불교의 키워드를 보는 것이니, 보다 심오한 형이상(形而上)에 도달하지 못한 것을 심원(深遠)한 종교적 관점으로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박중빈이 제시하는 마음은 온 우주에 가득한 일원(一圓)의 상태다. 텅비어 시비가 없는 것(空), 얼키설키 엮이지 않은 것(圓), 어느 한 쪽으로 쏠리지 않는 것(正)이다.

그것은 말로 형언 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한 모양을 드러내고, 막힘이 없는 '앎' 자체 이면서, 바르다.

원불교도들은 그런 마음을 따라 모든 일에 그릇된 분별을 버리고, 집착을 없애며, 모든 일에 중도를 행하는 이들 이다. 

또 마음을 밝히기 위해 '있다' '없다'를 초월하고, '오고' '감'에 얽매이지 않으며, 기울어지지 않는, 마음 기르기를 쉬지 않는 이들이다.

내세의 일은 모르겠지만, 현세에서 원불교의 지향하는 바는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일원의 진리를 좇는 이는, 생겨나는 것이나 소멸하는 것과 무관한 마음에 이르러 해탈한 경지의 무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런 토대 위에서 탐욕을 버리고 삿됨이 없이 공의로운 삶을 살아 갈 것이다.

살아있는 경전, 달라이라마를 통해 투영되는 사람의 본래 마음은 정결하다. 마음이 번민으로 인해 그 본질을 드러내지 못할 때, 그 사람은 윤회에 붙잡힌다.

하지만 바르게 수행을 하면, 고뇌에서 벗어나 마음의 청아한 빛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고,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불교를 먼 발치에서 보면, 자존감이 충만한 고고한 태도가 보인다. 고락의 바다에서 유유자적하다.

모든 것을 마음의 문제로 다루어 육신에서 비롯하는 감정과 육신이 겪는 변화들을 관조 할 수 있는 덕이다.

불교 밖에서 석가의 구도(求道)시기와 비슷한 연대에 중국에는 마음을 담론으로 삼았던 자사(子思)가 있었다.

그는 마음(性)을 하늘이 명한 것이라 했다. 사람의 마음은 우주(하늘)의 본체인 성(誠)이 드러난 우주의 축소판이다.

하늘은 치우치지 않으며 거스르지 않는다. 태양은 삼라만상을 골고루 비추고, 목숨이 있는 것은 태어나고 죽는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변하지도 않는다.

하늘은 순리다. 사람의 마음은 순리에 순응하는 것이다. 자사는 하늘이 가르키는 그 길을 중용(中庸)에서 풀이했다.  

하늘의 본체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항구불변한 것이다. 지극한 정성이다. 그래서 멈추는

일이 없고, 영원하며, 아득한 궁극이다. 이 하늘의 원리는 인간과 만물의 본성이다.

자사는, 사람의 마음이 하늘의 뜻을 따르면 하늘과 땅과 더불어 그 질서에 참여 할 수 있고, 만물과 하나가 될 수 있다고 갈파했다.  

월불교는 교도들에게 일원상과 부처가 둘이 아니라고 한다. 또 박중빈은 중용에서 살핀 '하늘의 길'(天道)을 잘 사용해야 부처의 경지에 오른다고 했다.

하늘 법도를 어떻게 쓸 수 있다는 것인지는 범부로서 알 길이 없지만, 아무튼 마음을 따르는 것을 요체로하는 원불교의 총부가 이 지역에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특히, 총론에서 불교의 교리와 유가에서 통찰된 것에 별다른 차이가 발견되지 않는데도 민중의 심연에 뿌리를 내리고 종교공동체를 형성한 뒤 100년 가까이 지속되어 온 원불교의 저력에 경탄한다.
뭘까? 그것이 알고 싶을 때 범부의 눈은 경전 보다 박중빈의 일생에 먼저 끌린다.    

내려와 민중과 함께 밥을 나누고

그는 조선 왕조의 말기에 태어났다. 일본과 서양 여러나라에 시달리던 어지러운 시대였다. 그가 네 살 되던 때, 부패한 조선왕조의 개혁을 주창하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으나 농민군 수십만 명이 희생당했다. 20세 되던 해에는 나라가 망했다. 

26세에 큰 깨달음을 이뤘다는 그는, 시종일관 공의로운 마음으로 지극정성을 다하고, 맑거나 탁한 것을 가리지 않고 포용하는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 상처받은 민중들을 이상향으로 이끌었다.

몰려든 제자들과 함께 허례를 폐지하고 저축조합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2년 뒤 바다 간척운동을 벌여 3만평의 농지를 개척하는 등 공동체의 생존을 살폈다. 이후 그는 일본 경찰의 감시와 탄압을 피해 은거하면서 5년을 준비, 1924년 6월 익산시 신용동에 원불교의 전신인 '불법연구회'를 열어 활동을 시작했다.

박중빈은 굶주리고 절망에 빠진 민중들에게 밥을 먹이고, 더 잘사는 방법을 제시했다.

원불교가 불교 경전이나 중용의 도 처럼 현학적인 가르침에 갇히지 않고, 민중의 삶을 흔드는 고락(苦樂)의 파도에 닿아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박중빈의 멸사봉공(滅私奉公)이 면면히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지금 원불교의 수행자들은 크게 두갈래로 나뉘어 파벌간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높은 지위에 오른 이는 은둔거사가 되어 홀로 유유자적하며 세상에 내려오는 걸음이 무겁다.

나아가 원불교가 세운 대학교는 돈이 안되는 인문계열 학과를 폐지하겠다는 발상을 다른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한다. 원불교를 둘러싼 각종 사업들은 확장 일로에 있으나, 민중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종교 공동체의 밥을 늘리는 것에 불과한 양태가 대종을 이룬다.

이런 난맥과 정체성 부재가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고 범부의 눈에만 보이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