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공인배

나는 일찌기 이 나라가 중국을 상대로 협상에 성공하고 이익을 균분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중국은 늘 지배국이었고, 이 나라는 피지배국이었으니 리더의 사고방식부터 다르다.

중국의 덩샤오핑을 보라. 공산당의 일당 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시장을 과감하게 개방했다. 

그의 대외 노선은 도광양회(稻光養晦, 칼날의 빛을 가리고 인내하며 어둠속에서 힘을 기른다) 였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모든 장애를 제거한 그의 개혁개방 정책은 중국을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외환보유고 1위로 세계무대 한 복판에 우뚝 세웠다.

덩샤오핑의 뒤를 이은 중국 제4대 지도부 후진타오 체제는 화평굴기(和平堀起, 평화롭게 우뚝선다)를 새 외교노선으로 주창했다.

소위 "할 말은 하고 필요한 역할을 한다"며 포효하는 맹수의 위용이다. 과거는 무력전 이었지만 지금은 경제전쟁이라는 선언이다.

위정자의 지도력과 정치적 파워와 자본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전쟁준비를 완비했다.

일본이 실효 지배하는 센카쿠 열도와 우리 영토인 이어도를 노리는 중국의 행동에서 그 잉여 에너지를 감지한다.

센카쿠 열도를 중심으로 200해리에 이르는 영해의 수산자원과 지하자원을 둘러싼 영토분쟁은 꽤 오랜 세월 부침을 거듭해 왔는데, 2년 전 서로 전투기를 출격시켜 충돌하면서 최근 다시 구체화되고 있다.

센카쿠 열도는 물론 주변 부속 섬들과 이어도가 포함되는 남중국해 지도 제작에 착수했다. 본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대내외에 확고히 하기 위한 장치의 일환이다.    

이 지역은 국제해상의 중심지로 중국이 점령할 경우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가 당장 심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런 중국을 제어 할 만한 힘이 없다.

중국은 주변의 영토, 특히 자국의 패권다툼 과정에서 관계했던 지역을 복속시키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왔고 실패한 적이 없다.

우리는 어떤가. 중국을 1,950년 동안이나 상전으로 모셔 온 나라에 살고있다. 그런 중국의 눈에 우리는 복속의 대상일 뿐이다.

우리의 중심을 여전히 수구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것은 야욕을 꿈꾸는 중국에게 호재다. 약 400년 전 삼전도의 굴욕은 우리를 옭아맨 사슬이며 진행형이다.

조선의 왕 인조가 청나라 군졸의 군복을 입고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 발 아래 엎드렸다. 이마에 피가 나도록 세차례 땅을 찧으며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면서 술을 따랐다. 이른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그것은 삭풍이 부는 겨울날 청군이 도열한 가운데 조선 여인들이 풍악을 울리며 춤을 추고 노래하는 가운데 행해졌다.

이런 참담한 꼴은 인조의 무능에서 비롯되었거니와, 청나라의 전신인 후금과 명나라 사이에서 양면외교를 펼치던 젊고 총명한 광해군을 실각시킨 '수구세력'이 초래한 결과였다.     

그들은, 매년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임금과 세자 책봉까지 허락 받는 것을 나라의 정통성으로 삼는 세력이었다.

사대부의 안녕과 세습을 이념으로 삼으며 권력에 빌붙어 비굴하기 짝이 없고 약자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자들이다. 그들은 지금도 친일세력, 혹은 친미세력으로 건재하다.

우리는 이미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은 을사늑약을 겪었고, 한미FTA 협상과정에서 정부나 국민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미국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우리 대표단을 지켜본 바 있다.

협상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 하는 장치를 허용하고, 우리의 국내법을 부정하며 사문화하는 등 갖가지 독소조항은 이 정부에서 발효됐다.

우리가 인조반정 이후의 지점에 이르는 변곡점 어딘가에 서성이고있다는 불길한 예감은 기우일까.

내부적인 합의가 선결돼야

우리의 대통령은 지난 달 12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 서로 양해할 수 있다면 2년 안에 FTA가 체결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한국 정부 입장에서 보면 농수산물 중 일부, 중소기업 제품 중 일부가 민감한 문제지만, 금액으로 치면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중 양쪽이 모두 6년 가까이 준비 해왔다니 협상이 속전속결로 진행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농수산물과 중소기업 문제를 협상품목 총액에서 차지하는 '금액'으로 인식하는 대통령을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준비했다는 것인지 믿기 어렵다.

식량주권과 산업기반 붕괴에 따른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포기하는 것을 금액으로 산출 할 수 있다는 것인가.

한미FTA로 우리 축산업은 이미 무너졌고, 관세가 있는 지금도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70%가 중국의 농산물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먹튀'한 상하이차를 우리는 선명하게 목도했다.

우리는 10년 전부터 세계 10위권 진입을 노리는 경제대국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2위로 도약하는 사이 우리는 15위로 추락했다. 인구나 경제규모 면에서 극복 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크다.

여러측면에서 제2의 경제도약에 남북 통일이 유일한 열쇠지만, 우리의 지도자와 수구세력은 틈만 나면 북한을 향해 적의를 드러냈다.

나아가 북의 벼랑끝 전술을 부추키는 자극을 일삼아왔다.

인내하고 도우며 기다렸던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도광양회식 전략을 휴지통에 버린지 오래다.

또한 다양성을 존중하는 체제 아래서 실제로는 획일화나 편가르기로 다양성을 배척, 민주사회의 가장 큰 장점이자 동력인 창의력을 억압하면서 경제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중국은 결코 외면 할 수 없는 시장이지만, 한중FTA는 우리에게 시기상조다.

우리는 당장 전략적 가치를 중시하는 지도자가 필요하고, 친중세력의 분탕질을 막아내기 위한 내부적인 협상을 선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