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공인배

우리는 자유시장주의 그 작용의 끝에 섰다. 재벌의 이익은 사유화되고 비용은 사회화 되는 구조적 모순이 고착화되고, 재벌에 대한 특혜 집중은 도를 넘어섰다.

우리의 시장은 대기업이 주 동력으로 작동하는 뼈대에 엮여있다. 대기업에 비용을 쏟아붓고 이익을 몰아주고 세금을 줄여주는데, 대기업은 정치의 정점에서 흥청망청하며 천년가업을 꿈꿀 뿐, 폐기처분되는 실업자와 불안정한 노동자들에 대해 일말의 연민도 없다.

최근 참여연대의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한 해 총 조세지원액 가운데 59.1%인 5조원을 10대 재벌이 가져갔다. 반면, 중소기업 지원액은 다 합쳐야 1조3천억원에 불과하다.

또 2010년 기준 우리나라 10대 재벌기업의 평균 실효법인세율은 15.1%였고, 중소기업의 실효세율은 22%였다. 이는 재벌 대기업이 우리나라 대다수 서민·중산층 월급쟁이보다 세금을 적게내는 수치며, 재벌들이 국민들과 중소기업으로부터 세금지원을 받고 있는 현주소다.  

또한 30대 재벌그룹은 2006년부터 2011년까지 3조8천억원에 달하는 전기요금을 할인받았다. 주택용 전기는 산업용보다 50%나 비싸다. 서민·중산층 가정에서 매달 전기료 6만원을 낸다고 가정할 경우 이 가운데 2만원은 산업용 전기요금을 대신 내준 거고, 그중에서 대략 절반 정도인 만원은 30대 재벌의 전기요금을 대신 내준 결과다.

나아가 우리 정부는 재벌 대기업들의 각종 연구개발비를 국민세금으로 부담하고, 이명박 정부의 경우 고환율 정책을 써서 국민들이 수출 대기업들한테 천문학적인 수출보조금을 대신 지급하도록 했다. 

이렇게 국가개입으로 막대한 특혜를 받고 있는 재벌 기업들은 "헌법 119조 2항에 명시된 '경제민주화' 문구를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만능 규칙처럼 인식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다.

변혁의 물결은 망설임없이 밀려오고 있다. 뛰어들거나 휩쓸리거나, 둘 중 하나의 태도로 우리는 경제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대선을 앞 둔 여야는 19대 국회 초장부터 앞다투어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이 법안들의 재벌개혁·서민살리기 견인력이 각 정당의 경쟁력을 가늠할 지표가 될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지난 달 말 재벌그룹 총수들의 경제범죄를 특정해 더욱 강력히 단죄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또 출자총액 제한제도 재도입, 금산분리 강화, 대통령 사면 대상에서 기업인 범죄 관련자의 제외 등을 추진 중이다.

새누리당은 대형마트의 의무휴업 등을 규정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등을 발의했고, 담합 행위 등 불공정거래 관행 규제, 대기업 계열사간 일감 몰아주기 근절 등의 추가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적어도 경제민주화의 각론에 고민하는 흔적들이 엿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총론, 혹은 공동체의 합의된 지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적잖게 불안하다.

우리가 가진 총론은 헌법 제119조 2항이다.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헌법 조항에 대한 해석은 경제주체, 이념 진영, 정당에 따라 크게 다르다. 이미 그 논쟁은 시작됐고, 혼란과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경제민주화라는 목적보다는 서로 다른 척도 때문에 소모적인 논쟁에 휘말리고 막대한 사회적비용을 지불 할 공산도 높다.

경제민주화 총론의 골자는 '분배를 통해 격차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보수 정당의 최고위원마저도, "재벌은 힘을 남용하고 있고 재벌ㆍ중소기업ㆍ상인ㆍ근로자 등 경제주체들간 힘의 견제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는 배경이다.

재벌의 시장 독점으로 중소기업 같은 성장의 다른 축을 무너뜨린 점, 경제력과 정치력의 집중으로 서민들의 미래가 단절 된 점을 정면으로 인식하는 것이 변혁의 물결이다.

그러나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시각차는 현격하다. "경제민주화는 소유의 평등을 전제로 한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전제로 삼고 있으며 보편적 복지나 재벌개혁과도 무관하다"고 딴청을 피운다.

재계의 관점은 '시장주의만이 경제민주화다'로 압축된다. 그래서 균형발전·소득분배·경제력 남용 방지를 지향하는 정책들이 부당할 따름이다.

야당과 진보진영이 추진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와 초과이익 공유제 등을 재계가 시장을 말살하는 독소로 여기는 인식의 틀이다.

재벌 기업에 틈을 보이지 말라

재계는 본능적으로 전쟁태세에 돌입했다. 의원들을 다각도로 접촉하면서 사태의 추이를 탐색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각 재벌 대기업의 국회 담당부서는 경계대상 의원들을 분류하고 밀착마크에 들어갔다. 동시에 물타기에도 한창이다.

"현실과 다른 인식을 바탕으로 극단적인 재별개혁 쪽으로 간다면 외국자본만 좋은 일 시킬 수 있다" 따위의 경고가 짐짓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의 발화 지점은 현실이다. 소수의 독점구조가 원심력으로 작용하는 시장에선 독점 극대화의 가속화에 손 쓸 길이 없다.

상실과 박탈의 면적을 줄이고 착취를 추방하며 분배의 방향성 설정으로 동반성장을 추구한다면, 소비자인 서민과 노동자가 외국자본을 견제할 수 있다. 중소기업은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다만, 여야의 과도한 경쟁이 시대정신을 퇴색시키고, 결국 경제민주화가 방향을 잃어 국민에게 외면받을 가능성은 높다.

시대정신을 집약하는 사회적 합의가 선결돼야 하는 이유다. 국민들의 피부에서 먼 쪽으로 경도되어 과열되는 건 재벌기업에 틈을 드러내는 것이다.

국회가 로비의 대상이 되어 야합을 허용한다면 이전보다 훨씬 더 큰 재앙이 우리를 덮칠 것이 불보듯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