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공인배

가능한 일일까. 서울대라는 명칭이 없어지고, 전국 주요대학이 서울대의 캠퍼스로 재편될 수 있을까.

민주당이 "서울 캠퍼스와 주요 국립대학 지방캠퍼스가 학점이나 교수, 졸업장까지 모두 공유하도록 하겠다"는 '국공립 대학 통합운영안'을 발표한 이후, 서울대와 그 출신들은 물론 경쟁제일주의와 신자유주의적 교육관으로 무장한 보수쪽의 공세가 담론의 장을 아예 초토화시킬 기세다.  

대학 서열화를 철폐하고 대학교육의 공적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게 민주당 정책안의 총론이다. 전국의 국공립대학을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 놓고 지역별로 거점대학을 만들어 함께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역 거점별로 대표적인 국립대를 육성하고 나머지 대학은 특성화 하되 이를 통해 인적·지적 자원이 공유되면 지역 기반 캠퍼스의 수준이 샹향 평준화 될것이라는 게 그 목표다.  

민주당은 "이런 충격적인 요법 없이는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학벌주의의 문제가 심각해졌기 때문"이라고 그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8년 전 노무현 정부는 대학을 평준화해 입시 지옥을 없애겠다는 취지로 ‘국립대 공동학위제’를 들고 나왔으나 기득권층의 반발로 무산됐었다.

지금의 반대론은 크게 세가지로 대두된다.

첫째는 국공립 대학이 통합되어도 고려대, 연세대 등 사립대 중심의 서열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둘째는 통합안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기득권층의 반대 장벽을 넘지 못하고 결국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다. 셋째는 극심한 경쟁사회에서 인재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교육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걱정이다. 

대학 서열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통합안이 왜 나오게 되었는가. 경쟁사회는 교육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이렇게 반대론들에 질문을 던지면 마치 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형국을 마주하게 된다.

시장논리에서 시작된 대학의 폐단이 오늘날 우리 문화 속에 완전히 내재화된 학벌사회와 서열사회다.

입시교육의 대안, 기회균등의 보편적 가치를 '국공립대 통합운영안'이 지향하고 있다면 우리는 시장 논리를 배제해야 한다. 국공립대 통합운영안이 공동선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시장논리에서 비롯하는 모든 반대론은 무의미하다.

시장논리를 들여다 보자.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다. 요구와 충족사이에는 과잉의 문제가 발생한다. 넘칠 때는 재화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지고, 모자라면 재화의 가치 상승은 그에 반비례한다.

너무나 단순명료한 시장원리다. 잉여재화가 폐기처분되는 상황에 이르면 생산자나 공급자가 위기에 처한다. 재화가 희소할 경우는 소비자의 과다출혈은 물론, 결핍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반작용이 격발한다. 혼란에 빠진 시장은 피아를 구분 할 수 없는 전쟁터가 된다.

시장이 스스로 조절기능을 작동하는 이유다. 어느쪽이든 장기화 될 경우 시장은 마비되고 그 부작용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 된다.

시장이 자율기능을 상실하고 정상화되지 못할 때 외부의 개입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 때 시장에 필요한 국가의 권력 행사를 명하는 것은 법이 아닌 공동선이어야 한다. 

시장의 불균형을 주도하는 과점과 쏠림이 국민의 기본권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공평의 원칙이나 비례의 원칙(과잉금지) 같은 법의 원칙들이 오히려 시장을 농단하는 주체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공리(功利)를 달성하려는 목적은 정당하다. 국가가 그 수단의 적합성을 확보한다면, 사익(私益)에 대한 침해가 최소화 되야 한다거나 법익의 균형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제한을 배제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부적절한 시장에 개입하려는 힘을 사실상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사익과 법익을 공동선을 실현하는 지표로 삼는 한, 시장의 질서를 공익에 맞게 정비 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일과성에 그친다. 사익이나 법익은 무분별한 경쟁 구조를 재구성하는 프레임이다.

대학구조 개혁은 '공동선'에 따라야

시장의 구조적인 모순을 개혁하고자 할 때, 문제의 중심에 놓여있는 사익은 공동선에 정면으로 반한다.

대학서열화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의 인적·지적 자원을 전국 거점대학이 골고루 공유하도록 하겠다는 생각이, 살인적인 사교육 비용의 지불을 부추기는 주체들과 기득권자들의 탐욕에 발목을 잡힐 수는 없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획일적 서열구조로 이루어진 신분사회가 앗아간 다양성이라는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되찾는 일이다. 나아가 지역대학간 불균등을 해소하기 위해 수도권 중심의 과점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국내 30대 대기업의 주력본사에 수도권 대학출신들이 취업하는 비율은 88.5%에 달한다. 외국인 투자기업에는 72.9%, 국가공공기관에는 83.4%, 정보통신업체에는 89%, 주요 대기업들에는 85%의 취업율을 나타냈다.

'학벌의 낙인'은 이렇게 취업이나 주류사회 진입의 신표가 된지 오래고, 불평등과 절망 같은 퇴행을 낳는 불행바이러스의 숙주다.

가수 타블로의 학력에 대한 수많은 네티즌들의 폭풍 추적은 그 현주소의 단면이다. 그들의 날조된 정보 폭로가 타블로의 인격을 살해하는 칼이 되는 현상은 학벌에 대한 변방인들의 열패감과 우울증의 표출이다.

2년 전 가수 윤종신의 고백도 대학계보의 패러다임에 갇힌 우리들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명문대 학생들로 구성된 그룹 '015B' 출신인 그는 "서울대학생이었던 멤버들에게 열등감과 음악적 박탈감까지 가지게 되어 콤플렉스를 극복하는데 15년이 걸렸다고" 토로했었다.

우리가 대학서열구조에 메스를 가해야 하는 절박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집도에 임하는 태도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다면, 그 행동은 단호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어야 한다.

민주당이 좌고우면하는 어정쩡한 태도로 국민에게 다시 한 번 좌절을 겪게 한다면, 교육의 퇴행과 사회 악폐를 야기시키는 무리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