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학교폭력은 이제 '만연'이라는 모호한 수량의 가리킴을 벗어나야 한다. 학교 구성원들과 학부모, 교육·치안 당국의 막연한 인식이 학교폭력의 주범이었기 때문이다.

왕따와 폭력피해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불감증이었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학교는 정글이다'는 명제에 순응해 온 결과다.

빛을 등진 피해자들의 바람은 학교폭력의 실체와 그 위해성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이 마지막이기를 바랐던 사자들의 절규에 귀를 기울인다면 누구든지 그 당위에 동의할 것이다.

왕따와 학교폭력 문제는 학교 안팎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야 한다. 가볍거나 무거운 것이란 없다. 골라서 비추지 않는 태양의 길을 지표로 삼아야 한다. 

최근 조사 결과를 보면, 학교폭력 가해자는 10명 중 2명에 가까웠다. 피해자는 1.5명 꼴인데, 피해자 10명 중 1명은 자살충동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한 학생이 자살한 모 중학교의 자살위험 학생은 한 학년당 5배로 급증했다. 얼핏 보면 학교폭력이 심화된 결과로 비쳐진다.

그러나 그것은 자각증상의 확산이다. 죽음에 대한 상상은 피투성이가 된 채 고립무원에 떨어져 진퇴양난일 때 마지막 남은 자존적 가치의 피난처다.

물론, 극단적인 선택이 일어날 때는 심신의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 된 상태겠지만, 퇴로를 모색하는 단계에서는 아직 회복 가능한 동력을 지닌다.

위험한 상황을 알고, 당사자와 주변이 그걸 공감해야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다.

학교폭력의 위험성은 집단성에 있다. 점(가해자)들이 이어져 하나의 거대한 피라미드를 이루는 구조가 문제다.

가해자가 피해자로 혹은 피해자가 가해자로 폭력을 수용하는 음성화가 감지되었을 때 경보가 울려야 하는 이유다. 피해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최근 자살사건이 이어지면서 학교폭력에 대한 상담이나 신고 건수가 폭증하자 일선 교사들이나 교장들의 불만도 덩달아 높아졌다는 얘기가 세간에 자자하다.

그 가운데 대종을 이루는 것은, 피해자들이 별것도 아닌 일을 침소봉대해 분란을 일으킨다는 관점이다. 치고받으며 자라는 것 아니냐는 일반론이다.

이는, 한 사람에게 다수가 돌아가면서 욕설을 하고 툭툭 건드리는 일이 지속적으로 일어났지만, 말단을 보는 눈이다.

개별적으로 볼 때 욕 좀 하고 신체를 살짝 건드렸을 뿐인 또래들의 놀이문화를 규정하는 인식이다. 이미 개인에게 너그러웠으므로 집단은 바라보지도 않는 태도다.

일대 일의 폭력이 빈발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한데도 양비론으로 물타기하는 행태의 근원이다. 나름 그것은 '중립적 사고'라는 설득력으로 무장한다.

학교폭력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른 만큼 그에 반비례하여 지능화 될 것이 명백하다. 따라서 그 대응에 창의성이 요구된다. 효과없는 대책은 무용하다.

교사들의 사고가 먼저 열리지 않으면 안된다. "애들 싸움까지 내가 책임져야 하나"라는 무책임과 무사안일주의, 불성실은 폐쇄에서 비롯한 경직이다.

묵살과 침묵의 링 위에서 폭력이 난무하는 학교는 그런 교사들이 조장한다. 그들이 "양과 늑대가 있으면 늑대를 잡아 양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절규를 이해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오늘이 아닌 내일도 양한테 피하라고 하고, "네가 못 피해서 늑대한테 물렸다"고 양 탓만 하는 부류들이다.

나아가 가해자를 선처해 달라고 탄원서를 쓰는 축들이다. 그런 교사의 태도는 폭력의 연대를 공고히 하며 침묵의 질서를 지배한다.

그들이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싶을 리 없다.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없는 탓이다. 그들이 사는 동안 자식의 영혼과 동행하는 부모들의 심정을 공감할 리 없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없는 까닭이다.

고인 지식을 전달하는 기계일 뿐, 자신도 학부모이거나 예비 학부모이면서, 옳고 그른 것을 가릴 책무를 방기하고, 위기에 처한 누군가를 반사적으로 구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교사 자질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의 문제다.

교사 스스로 거듭나야 하고, 임용주체도 함량미달의 교사들을 양산하지 않기 위해 키질을 잘 해야 할 일이다. 무엇보다 경쟁일변도의 교육 현장을 '전인교육'의 장으로 탈바꿈시키는 백년대계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가해'와 '피해' 사이에 양비론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당장은 학교가 스스로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역량이 없어 보이기에, 한사코 그것을 외부에 알리는 것이 긴요하다.

그러나 전라북도, 또는 익산의 교육계는 여전히 폐쇄적이다. 교과부는 최근, 학교폭력 예방·근절 프로그램을 학교급별 실정에 맞게 효과적으로 운영한 초·중·고교 30곳, 지역사회의 자원 등을 활용해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노력한 기관 10곳을 선정한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익산시와 익산교육청 산하 학교는 단 한 곳도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내세울만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은 고민이 적었다는 걸 방증한다. 우수사례로 선정된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학교가 학교폭력 문제를 외부로 들고 나와 협력을 구한 경우들이 대종을 이뤘다.

지역사회의 차량을 통해 학교 주변 폭력을 예방하자는 취지의 제도를 운영한 초등학교나, 전 학교에 예산을 들여 전문상담교사를 배치한 자치단체, 학교폭력만을 전문으로 상담하는 '청소년 어울림센터'를 구축한 자치단체, 피해학생 프로그램으로 템플 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는 사찰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또 응모한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에서는 교사들의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태도를 만날 수 있지만, 익산시의 경우 이런 보편적 범주에 조차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지역에서는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시스템을 신뢰하기 어렵다. 더구나 학교폭력이 발생하고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린 뒤 도 교육청이 선택하는 최종적인 해법이 '피해학생 전학 권고'라는 역량의 한계에 마주치면 불안과 공포가 엄습한다.

여기에서 전학을 간 피해학생이 여전히 왕따에 시달리고, 폭력 앞에 굴복하며 학교를 지옥같이 여긴다 한들 누가 책임지겠는가.

영혼이 없는 교사들은 학생의 영혼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으며, 찢기고 무너진 고통을 공감할 수 없다. 그런 교사들을 세상에 보여라. 살아남으려면 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