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공인배

그는 쉽게 말할 줄 알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겠다고 그가 말했을 때 우리들이 뜨거웁게 공감했던 이유다.

그는 우리가 경험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미숙한 참여정부의 산물, '민주주의가 밥먹여주냐'는 냉소의 기류를 타고 그가 일으킨 더 많은 바람에 힘입어 훌쩍 원하는 곳에 올랐다.

곤궁한 형편이 날이 갈수록 더 기울고 출구가 없다고 느꼈을 때, 그는 국민 모두가 먹고 살 걱정 않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중도실용'이라는 모호한 자기 정의로 보수와 진보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겠다는 게 그가 일으킨 바람이었다. 그가 지향할 점이 모두의 이익이며, 그 실현을 위해 어떤 방해도 받지 않겠다는 의지의 천명이었다.

누구의 말이란 듣는 쪽에서 절박할 때 구원의 손길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그 말에 깊고 넓게 사로잡혀 그의 실천 없는 세월을 인내하며 기다렸던 것은 그가 세상을 바꿀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가용한 나랏 돈 대부분을 몇몇 건설업자들의 입에 털어넣어 거덜낸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그릇된 결과를 믿지 못한다.

그는 순하면서도 뜻이 깊은 말을 하는 사람이었고, 말을 하면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소박한 마음을 길러 욕심을 버린자여야 찍을 수 있는 족적이며 마음이 큰 사람의 표징이었다.

하지만 그는 민간인 사찰 같은 원해선 안 될 것을 원했고, 비리의 온상인 형이 헌정을 농단하는 지위에 오르도록 행해서는 안 될 것을 행했다.

그는 오직 국익과 국민을 위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위시한 FTA 협상 같은 걸 밀어붙였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은 안된다며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바른 국민이 아니었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를 증명하는 언론의 자유는 국익과 관련이 없었다. 국제적인 망신과 국가 신인도는 그의 뇌를 지배하는 숫자 바깥에 있었다.

그의 정부는 다만 그가 하고자 하는 일에 거치적거리는 언론인들을 가차없이 법정으로 보내고 패소해도 국민에게 사과 한마디 없었다.

정부를 비판하는 방송사에 낙하산 사장을 보내 식물언론을 만들고, 그가 장악한 방송사는 구성원 대다수가 파업에 들어가도 정권의 나팔수 역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 방송사의 최고 결정권자는 자신을 보낸 이의 눈빛만 봐도 의중을 간파하고 공명하는 인물들을 조직 상층부에 포진했다. 노사간의 170일에 걸친 충돌은 그들의 뿌리를 공고히 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벼랑끝 결속을 자랑하던 노조가 자신이 몸담았던 곳으로 돌아가서 풍비박산 되어 낯선 곳으로 흩어진 것은 그 반증이다.

이 방송사의 사장과 그는 뻔뻔하다는 점에서 너무나도 닮은 꼴이다. 가정이 있는 한 무용가와 그의 불륜 의혹이 불거진 지 꽤 되었지만, 그는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다. 일본의 모 호텔에 같이 묵은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납득 할 수 없는 변명으로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

무용가와 그의 불륜이 담긴 편지가 공개되어도 그와 방송사 차원의 적절한 대응은 없었다. 그들의 부도덕성과 언론인으로서의 부적합성이 그대로 드러난 현주소다.

이 위험하기 짝이없는 언론사 경영진의 고삐를 쥐고 있는, 우리의 희망이었던 그를 견제 하고 이 난국을 조율 할 국회는 여전히 그와 그 형의 조직을 지키는 철옹성이다.

국민을 위해 부여한 특권을 범죄자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쓰는 방탄국회 역시 그가 걸어 온 궤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국민을 사랑하는데 국민은 몰라준다고 말할 것이다. 열심히 국정을 돌보는데 세상이 잘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한탄할 것이다. 자신이 잘못한 일은 들춰내고 잘한 일에 대한 칭찬에는 인색하다고 슬퍼하며, 최선을 다하는데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강변할 것이다.

측근비리를 사과하면서도 정확히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언급하지 않는 불성실과, 몇몇 재벌과특정 종교단체가 곧 국민의 전부라는 망상, 경제적 하위계층은 피지배세력일 뿐이라는 관점이 그의 중심 유전자 정보로 투영되는 것이 그걸 방증한다.

자신이 모자란 것은 성찰하지 않고, 위선과 거짓을 포장하는 또다른 말들은 그의 나팔수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 된다.

그는 교육을 비롯한 물가, FTA, 한일군사협정, 청와대 문제 같은 각종 현안이 묵인되기를 원한다. 나아가 언론통제를 통해 행복한 일만 일어나는 나라로 꾸미고 싶어한다.

첩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거나 일을 처리할 때 구사하는 전술들을 보면 영락없이 내전(內戰)을 지휘하는 장수다.

용산 남일당 옥상 위에서 전경과 시민들이 불타 죽고, 노동자들은 거리에 나와 분신을 택하지만, 저항하는 현장에는 물 한방울 마저 차단되며 무자비한 억압에 숨이 막힌다.

불성실과 망상, 특권의식이 부를 화(禍) 

살아남기 위해서는 죽여야 하는 전쟁터도 장수의 수준에 의해서 그 질이 달라진다. 그 중 최고는 피를 흘리지 않고 이기는 방법을 아는 장수다. 이런 경우 적국의 장수가 같은 눈높이에서 전략을 구사하지 않으면 병사 몇 명 죽이고 나라를 헌납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죽이는 것이 리더의 책무인 것으로 아는 천박한 적장은 자기가 만드는 것이다. 이기는 전쟁이라도 과다한 피해가 예상되면 피해야 하는 법이다.

하물며 적도 아닌 국민의 저항을 무조건 봉쇄하려 드는 정도의 수준이라면, 정부비판 조차 허용하지 않는 미숙한 상태라면, 그가 만나야 할 적은 명확하게 정해진다.

보라, 방탄국회를 만든 새누리당을 비판하던 민주당이 이번에는 자신의 대표가 구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그가 여당의 허물을 가리기 위한 물타기 목적으로 권력의 시녀를 시켜 야당 대표를 흔드는 저급한 수준의 리더로 읽히고 있는 탓이다.

또, 경선부정 의혹 논란의 중심에서 서서 반세기 이상 쌓아 온 진보의 탑을 무너뜨리고, 힘의 논리로 단죄를 피해간 당권파들을 보라. 그들은 뒤로 돌아섰다. 야권연대는 해체되고 그들은 국지전에 매달리는 레지스탕스로 돌아갈 것이다.

그들이 그런 양태로 한나라당과 대적 할 수 있다고 믿게 한 책임 역시 명백히 그에게 있다.

그가 주도한 권력과 자본의 연대는 그의 목을 겨누는 무수한 칼들을 양산했다. '자신이 뽑은 국민의 대표 몸에 칼을 찔러 넣을 수 있을까'를 가늠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수준이 어땠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의 퇴임 5개월을 앞 둔 지금, 도탄에 빠져 피폐해진 서민들의 삶은 IMF때 보다 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