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공인배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가 남미를 여행하다가 인디안 추장 일행을 우연히 만났다. 몽테뉴는 화려한 복장과 장신구를 걸치고 위엄을 갖춘 추장에게 물었다.

"추장님, 당신의 특권은 무엇입니까?"

추장이 대답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맨 앞에 서는 것이지요."

'책임은 권한에 비례한다'는 격언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일화다. 최근 '익산 투자 철회'를 선언한 방적업체, 전방 사수에 전부를 던진 이한수 시장을 보면서 맞닥뜨린 화두다.

게다가 이 격언이 그에게서는 상당히 가혹하게 투영된다. 특권이 일절 배제 된 '책임'만을 그가 짊어지고 있는 탓이다.

이 시장은 지난 1일 전방과의 간담회장에서 지나친 저자세를 취해 온갖 억측과 왜곡을 낳았다. 절차상 하자를 감수하고 입주를 도왔으면서도, 전방측의 횡포에 시민들의 자존심까지 담보하는 속사정을 건너짚은 굴절된 상상들이었다.

언론까지 나서서 그런 억측들을 부추겼기에 시민들의 부정적인 시각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구체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 시장으로선 전방 문제를 더이상 거론하지 않는 것이 어느면에서 보나 정치적으로 이로웠다.

언론과 시민들의 정서에 기대서 자존심의 그늘 아래 앉아 쉬고 있으면, 전방이 이전을 하든 눌러 앉든 아무도 책망 할 사람이 없었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 17일 직접 대시민 호소문을 작성해 발표했다. 전방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의 중단을 바라는 참담한 심정을 담았다. 익산 상공인들과 함께였다.

부정적인 기류는 늪과 같은 것이다. 움직이면 자꾸만 빠져들게 되어있다. 호소문은 평가를 부르고 평가주체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자신이 접한 정보에 개인적 취향을 보태 진실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미지를 만들어낼 공산이 높다. 그런데 이 시장은 스스로 사면초가의 중심에 나아간 모양새다.

피투성이가 될 것을 각오한 그를 살펴보니, 그는 익산의 '현실'을 전방 문제의 해법으로 삼고있다. 장기간 침체에 빠진 소비도시 익산을 생산도시로 변환시켜 생기를 돌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같은 맥락에서 전방은 그 규모나 성격상 '익산이 기업하기 좋은 도시인가'를 가늠할 시금석이라는 관점이다. 국가식품클러스터와 대규모 산단, LED 협동화 단지 등 대규모 기업유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논리도 기업이 떠나간 뒤에는 의미를 상실하며, 미래로 나아가야 할 익산의 발목을 잡는 손에 불과하다는 명분이 그의 간곡한 호소의 중심을 관류한다. 시민들의 향토의식과 결속의 불길이 소모적인 논쟁을 일거에 불살라 주기를 애원한다.

여전히 돌아서서 완강한 전방을 설득해 돌려세워야 하는 그는 "상황이 좋지 않다"고 토로한다. "두렵고 무섭기까지 하다"고 고백한다.

"기업유치와 일자리 창출만이 최고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며, 익산의 현재 시각을 가리키는 그의 가치관에 전방은 어떻게 분석되고 있는가.

그는, 조규옥회장은 타 지자체 제안 상황과 국제경제 여건 등으로 볼 때 익산에 투자 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전한다. 특히, 방적시설은 특성상 10만추 정도는 돼야 최소한의 수익을 바랄 수 있는데, 광주 평동에 10만추 공장을 짓다가 5만추를 익산으로 떼어 온 것은 산술적으로 '어리석음'이라는 답을 도출한다는 것.

5만추 공장은 손익분기점에 머무는 규모로, 단일공장이 5만추인 방적설비는 세계 어느곳에도 없다고 부연한다. 더구나 5만추든 10만추든 실험실 분석요원은 대동소이하게 필요해 연간 40억원의 고정지출이 발생하고, 10만추에 1기로 적용되는 130억원이 넘는 모터설비 역시 5만추 일 때 줄일 수 있는 구조가 아니어서 그대로 설치해야만 한다고 했다.

조회장으로서는 광주 평동과 익산 산단에 신규투자를 결정한 순간 부터 적자를 안게 된 셈인데, 고향의 미래에 눈이 멀지 않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방의 재무재표는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는데, 그동안 2천억원의 영업 손실이 발생했다. 이같은 장기불황은 이례적인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신규투자는 어불성설이었다. 재정고갈을 내세우며 익산 투자를 반대하는 임원들 앞에 조 회장은 사재 1,700억원을 털어 내놓고, "투자는 불황일 때 하고 호황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손문선 의원이 울고싶은 사람을 때려준 격이 됐다는 것이다. 상황 발생 직후 전방의 법무법인은 이대로는 익산 산단과 광주 평동 양쪽이 영구적으로 적자에서 빠저나올 수 없지만, 익산 설비를 광주 평동으로 합치면 4년 내에 투자비를 회수하고 흑자로 돌려 세울 수 있다는 검토 결과를 내놨다.

손익 계산 밖의 가치를 선택한 '전방'

담당국장은 본회의가 열리기 전날 손문선 의원에게 사안의 경위와 불가피성을 다섯차례나 찾아가 설명했는데, 굳이 시정질문을 해야 했던 것인지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국장으로부터 다섯차례나 해명을 들어서 더이상 답변이 필요 없는 손 의원의 시정질문은 여과 없이 카메라에 담겨 열 두차례나 방영됐고, 조규옥 회장의 순수의지와 투자의욕을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시장은 지엽 말단을 벗어나 본질을 내세우며 정면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당장의 평가를 위해 비겁하게 물러서기 보다는 미래의 평가에 무게 중심을 두는 쪽을 택했다.

기업유치를 떠나 전방만을 국한하여 보더라도 이 시장의 눈에는 가시거리 끝의 꿈이 어린다.

익산이 잃어버린 영광, 쌍방울을 위시한 섬유산업의 융성기를 복원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심장박동이 급하다.

방적회사가 없이 섬유산업의 발전은 불가능하다. 솜에서 실을 뽑아내는 방적공장이 있어야 직물을 짜는 방직 공장이 따라오고 옷을 만드는 봉제공장도 따라온다.

하청업체와 관련업계의 집적화가 '섬유산업 도시 익산'의 명성을 되찾고 '패션의 도시 익산'을 재창출 할 것이다. 이 시장은 그 지점을 바라보고 있다.         

어느모로 보나 익산은 위기에 처해있다. 짚어 말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시민 모두가 그것을 체감하고 있다.

이 도시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익산의 결핍을 아파하고 함께 채워나가는데 힘을 보태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일을 맡긴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침묵과 기다림은 그 화답이며, 그것은 때로 공동체의 역량을 가늠하는 지표가 된다. 

조규옥 회장 역시 기왕 고향의 미래 가치에 투자하고 사익을 다음으로 미뤘었다면, 비판이 존중되는 건강한 도시에 일조하는 것도 그 행보에 어울리지 않을까 한다.

이 폭염 아래서 가을을 가리키는 전방의 '익산 투자 철회방침 취소'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