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최근 잇따른 거리의 마구잡이 칼부림에 사람들이 공포의 도가니에 빠져들고 있다.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은 누구나 그 칼에 찔릴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칼을 든 사람들은 불만을 마주 대하는 힘이 미약하다. 불쾌한 상황에 민감하고 내부에서 일어나는 격정에 즉각적으로 무너져 버린다.

자신을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는 이유로 현장에 있는 여덟명에게 칼질을 한 지난 달 18일의 의정부지하철 역 참사, 그로부터 사흘 뒤 여자를 성폭행하려다 거부하자 칼을 휘두른 살인사건, 그 다음날 퇴사문제로 앙심을 품고 퇴근길의 전 직장동료와 길가던 시민들에게 닥치는대로 칼을 휘두른 사건, 이 모두가 우연이 아니다.

사회적 규범으로 자신을 제어해야 할 이유를 상실한 사람들이 드러낸 광기다. 이런 자포자기 상태는 불만족의 축적에서 비롯한다.

뒤돌아 볼 줄 모르고 전통을 새롭게 지닐 줄 모르는 우리가 기초를 서서히 파괴해 온 결과다. 우리는 스스로 만든 길을 따라 야만의 시대로 접어든지 오래다.

물신주의가 낳은 괴물이 지배하는 시장, 거기에는 인륜과 도덕을 장애물로 여기는 탐욕이 득시글거리고, 그 바깥에서는 시장에 진입하려는 개인이 경쟁 이외의 것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긴다. 그 바람에 공동체 의식은 구겨진 다른 보편적 가치들과 함께 폐기처분된지 오래다.

이런 메커니즘 속에서 우리 사회는 빈부격차를 극대화하고 있다. 지난 달 27일 세계유수의 평가기관이 우리나라 국가 신용등급을 역대 최고인 'Aa3'으로 상향조정 했는가 하면, 서울시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는 100일 동안 6명이 연달아 목숨을 끊었다.

생활고의 무게에 짓눌려 온 그들은 더이상 일어서지 못했다. 희망도, 고통을 호소할 곳도 없었다.

극한 사회적 오지에서 한축은 자살을 선택하고, 다른 한축은 세상을 향해 칼을 겨눴다. 칼을 든 그들은 책임을 사회에 돌렸고, 사회 구성원들이 그 적대감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된다. 

공개된 장소에서 칼을 휘두른 사람들은 모두 30대다. 불만이 임계점에 이르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퇴로가 차단된 사람들의 출현은 오래전에 예고됐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나 2008년 고시원방화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에게도 아무런 동기가 없었다. 사후에 후회 할 망정, 당장에는 누군가를 살상하는데 거리낌이 없고, 충동적으로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넘어버린 사례들이다. 

인성(人性)에는 부끄러워하는 마음과 옳고 그름을 가리려는 관성이 깃들어있다. 개인이 어떤 행위에 앞서 사회적인 명분을 생각하고, 최소한 모순으로 사실을 가공해서라도 자기합리화를 꽤하는 이유다.

정신이상이 아닌 이상, 누구에게든 행동을 정당화하는 핑계가 있다. 이것은 인성의 본질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으려는 방어기제다.

공간을 불문하고 어떤 형태로든 성장한다는 것은, 사회구성원으로 존재하기 위해 최소한의 억압에 길들여지는 것이며, 공감과 공명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들이 미쳐 맞는 어휘를 발견하지 못한 채 저지를 칼부림일지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

더이상 갈 곳이 없었던 저들 30대는 소통의 부재와 만연한 부조리에 밀려 벼랑 끝에 섰다. 그들이 집어든 원망의 칼은 불공정한 사회를 겨눴다. 칼이 닿는 표층에 무고한 시민들이 있었을 따름이다.

개인주의가 심화된, 안아 줄 공동체의 품도 없는 각박한 사회가 불만에 가득찬 부적응자들을 양산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그 해법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늘 처방은 대증요법이다. 치안시스템 강화 같은 물리적인 원천봉쇄를 외치면서, 그 책임을 특정 집단에 떠넘기고 재빨리 불안을 떨치고 안도하는 게 체질화됐다.

연쇄적인, 공개적인 대사회 불만표출의 위협 앞에서 사회안전망을 불신하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사람들은 곧, '피해자는 내가 아니다'는 자위에 마비될 것이다.

공포의 확산은 없다. 우리가 사는 정글은 그런 위험요소들을 합리화 하고, 우리는 단지 좀 더 많아진 위협을 공존해야 할 대상으로 인정하고 적응할 것이다.

지배자들은 그런 대중들의 순응을 잘 알고있다. 패턴없이 빈발하는 공격에 질겁한 나머지 눈을 감아버리는 대중을 내려다 본다. 대중은 어둠 속에서 '직면한 공포'와 '막연한 공포'를 동일시하며 빠르게 수용할 것이다. 위험은 정글에 상존한다는 것.

상처입는 것은 '하류'일 뿐

이 세상이 하류, 중류, 상류로 나뉘며, 낮은 계급이 신분상승을 위해 필사적으로 경쟁하는 한. 높은 곳에 올라가면 지배하는 것이고, 직접 칼을 들 필요도 없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혀를 놀려 하류의 목줄을 끊는 것이 '지배'로 인식되는 한.

먼 곳에서 사람을 해치는 것은 쉽고, 가책도 없다. 대중은 그것을 안다. 공개된 장소에서 칼을 휘두르거나 그 칼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는 그들은 모두 희생양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나 상류의 구성원들은 그들끼리 충돌하지 않는 이상 하류가 단죄 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있다는 것. 대중은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고, 저주받은 계급을 탈피하기 위해 경쟁한다.

나약한 대중은 상류의 착취와 폭력에 저항하지만, 그것이 고난의 길이며 원하는 걸 얻기도 희박하다는 것, 순응하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잃는다는 것을 안다.

현실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중, 그들은 상류에 의해 스스로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결정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대중들은 불가항력적인 폭력에 노출 될 때마다 권력에 대한 저항력을 상실한다.

상대적 박탈감과 불안이 누적된 하류는 부조리한 현상에 쉽게 상처를 받고, 거리로 나온 하류의 칼이 하류를 찌르고, 상류의 오점을 덮어버리는 악순환의 근원이다.

누구나 알듯이, 보편적 가치가 실현되는 공동체를 복원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이 공동체로 끌어들이는 것이 근본 해법인데, 그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유다.

오는 12월 대선에서는 자신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결정 할 대중이 얼마나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