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대중은 부등호의 열린쪽에 쏠린다. 높은 피로도에 시달리는 탓에 닫힌 쪽의 응축된 의미를 들여다 보기가 어렵다.

대중이 지니는 보상심리다. 자신의 목소리가 효과를 발휘하기를 바란다. 정책이나 정치적 발언은 대체로 거기에 편승한다.

큰 쪽을 자극하고 사안을 부풀리는 일련의 조치들은 표피적이거나 감각적인 것으로 충분하다.

인기에 영합하려는 쪽의 입장에서 깊은 곳을 들여다 보다가는 자칫 시기를 놓칠 수 있다.

어떤 정책이든 과잉이라고 느껴지는 부류는 그 정책이 대증요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9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을 성폭행한 범죄자에게 살인죄의 법정형량 하한선보다 곱절 더 무겁게 엄벌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움직임은 그 단적인 예다.

그 엄단 의지를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적 진단에 따른 처방이라기 보다는, '물리적 거세'같은 거친 시류에 편승했다는 점에서 지속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반면, 교육 내용 개선이나 도덕성 회복 또는 홀로 지내며 범죄에 노출된 아이들, 은둔형 외톨이와 관련한 근원적인 해결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통치 편의주의의 발로다. 선은 행복하며 지속돼야 할 대상이고, 악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기대는 것 보다 쉬운 정치는 없다.

국민의 구미에 맞는 말을 찾아 빠르게 전파하고, 악을 섬멸하며, 기대치를 훨씬 상회하는 강도로 손질한 '척결 법'의 잉크냄새 풍기기는 정권이 자랑하는 전가의 보도다.

사회안녕은 그런 허장성세로 이루어진다. 선이 특정한 환경에 노출되어 악으로 변질되거나, 반인륜적 범죄는 오히려 급증하지만, 정권의 말초적 통치에 거듭 노출되는 국민은 이내 마비되고 만다.

이는, 보다 악랄해진 범행이 보다 양심의 가책없이 발원하는 환경이고, 악을 증식하는 자궁이다.

모호한 세상에서는 말이 문자를 지배한다. 문자는 논거를 생명으로 삼지만, 말은 자극이 먼저고 검증은 나중이다.       

편의주의가 통치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여기는, 권력을 쟁취하려는 무리에게 말이란, 검증되기 전에 충분한 화력을 발휘하는 절대적인 무기가 된다.

대선정국에서 새누리 대선기획단 인사가 안철수 교수 쪽에, 안교수의 룸살롱 출입과 뇌물, 여자문제를 거론했고, 안교수 쪽이 황망한 반응을 보였다.

꽤 구체적으로 협박당했다는 기자회견이 협박을 당했다는 안교수쪽 당사자에 의해 이루어졌다.

안철수 교수쪽은 해명 할 수록 수렁에 빠져들고, 가만히 있자니 논란을 증폭시키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가뜩이나 성(性) 문제로 세상이 끝장날 것 같은 지점에서다. 어떤 식으로든 안철수 의혹 과잉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새누리당 나팔잡이는 계산했을까. 

대선을 불과 3개월 앞두고 있다. 새누리당이 의도하고 있다면, 의혹을 말끔하게 해소한 이후 안철수 교수가 본래 이미지를 되찾을 시간은 불충분 할 것이다.

정치를 가볍게 생각하는 자의 속성은 '천박'이다. 언행의 출발점에서 명분보다는 실리에 치우치고,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이 지극히 사적으로 흐르는 이유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박정희 정권시절 대표적인 '사법살인'으로 꼽히는 인혁당 사건을 놓고 뒤틀린 역사인식과 자의적 사법인식을 보이는 근원이다.

인혁당 사건은 관련자 8명이 지난 1975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기소됐고, 유죄가 확정된 뒤 하루도 지나지 않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기록이다.

유신치하 독재정권에 장악당한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32여년 동안 문제제기가 있었고, 2007년 열린 재심에서 재판부는 희생자들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는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두개의 상반된 판결'을 거론하며 직답하지 않고 '역사의 판단'으로 미뤘다.

인혁당 사건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벗어난 유신체제의 산물이다. '내가 아니면 나라를 구할 수 없다'는 박정희의 과잉에서 비롯됐다.

당시 국가보안법은 자신에게 대적하거나 자신보다 우월한 자들을 핍박하고 살륙하는 철권통치의 수단이었다. 그 도구는 6.25동란 중에 소중한 것을 잃고 위축되거나 피폐해진 대중속에서 찾았다. 불안의 과잉이 그를 존재케 한 것이다.

박근혜 후보는 유신에 대해서도 그의 아버지가 강변한 '구국의 결단'과 궤를 같이 하는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천민 자본주의 총알받이 '우파'

재판의 정통성을 따지기 전에, 우리의 사법체계에서는 재판에 회부된 자는 최종심의 결과를 따라야 한다.

박 후보는 거기에 근거한 사과의 뜻을 밝히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박 후보는 또다시 '좌파' '우파'로 대별되는 이항대립을 끌어들인 양상이다. 어차피 좌파는 적이고, 우파의 대동단결 정도면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일까.

박후보의 언동이 그런 계산에 따른 전략적 실행이라면, 가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좌파의 분노가 커지면 우파의 결집이 그에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또, 자신들을 좌파라 일컫는자들의 피해망상보다, 우파의 불안에 대한 방어심리가 대중에게는 더 잘먹힌다는 사실을 부인 할 수도 없다. 그건 박정희 정권에서부터 확인된 바다.

열정이 요구되고 개혁을 관철하는 것, 거기에 동조하는 것은 어렵고 피곤한 일이다.

권력이 부의 편중을 돕고, 노동공동체의 노동 총량에 비하면 과소한 분배가 이루어지더라도, 편안한 일상에 안주하는 대신 경쟁에 뒤쳐지는 자신을 책망하는 편이 쉽다.

낙오하는 타인은 경쟁대상일 뿐이고, 시야에서 사라지면 쾌재를 부를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중은 본질적으로 우파에 속해있다.

천민자본주의는 박근혜를 낳았고, 인혁당사건의 사실관계 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그는 천박한 우파들을 전장의 총알받이로 앞세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