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시장가격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경제를 농단하는 주체가 없는 상태에서 경제정의가 구현된다고 할 때, 우리의 시장은 그와 거리가 먼 불완전경쟁이 과포화를 이룬다.

골목상권을 초토화시키고 그 폐허 위에서 독식하는 대기업.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계열사의 제품을 사들이면서 과세를 피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상위 그룹에 속한다.

특히, 그들 그룹 내부시장은 계열사에 일감 몰아주기로 외부로의 화폐유통을 철저히 차단한다. 변칙 부당거래, 내출혈을 일으키는 혈류 막기를 대기업이 주도하는 것이다. 

대기업 몇 개가 모든 부문의 생산, 유통, 판매를 장악 할 수 있는 독점과 착취의 정글이 우리 신자유주의 시장의 현주소다.

대기업에 포착되면 명장의 동네 빵집이나 명소였던 음식점까지 더 이상 그 자리를 지킬 수 없다. 대형마트나 중대형마트, 혹은 프랜차이즈를 앞세운 대기업은 갈래갈래 소비자의 생활 깊은 곳 까지 뿌리를 뻗히고 있다. 빨아들인 잉여 재화는 그룹 일가에 분배되고 이 화폐는 더욱 공고한 왕국의 성곽이 된다.

재벌 빵집에 그치는가. 거래하던 중소기업의 목을 졸라 기술을 헐 값에 빼앗고. 납품단가를 후려쳐서 이익을 착취하고, 재료비와 인건비가 모두 올랐는데 부품 단가를 인하해 문을 닫게 하는 일은 너무 흔해빠졌다.

부당한 소득분배로 재벌들은 돈을 긁어 모으지만 투자를 꺼리고 일자리를 늘리지도 않는다. 노동시장과 서민가계는 악성 빈혈을 앓고 있거나 내출혈을 일으키고 있지만, 백만장자 미성년 재벌 2세들은 지난 달 말 기준으로 82명에 달한다.

이런 '편중' 혹은 '집중'되는 자본의 지배구조는 지극히 위험하다. 대기업이 하나가 무너지면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타격을 입는지 우리는 익히 보아왔다.

가장 비근한 예는 쌍용자동차일 것이다. 그 구조조정은 2천646명를 해고하고 23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평택과 창원의 쌍용차 공장 소재지역 일원은 죽음의 도시를 방불한다.

쌍용차 사태는 대기업 편향의 그릇된 노·사 정책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조직적 폭력, 경제권력들의 담합, 초법적이고도 살인적인 정리해고 등 구조적인 문제들이 한꺼번에 나타났다. 이는, 이 나라 정부가 선택하고 집중적으로 육성한 모든 대기업에 내재한다.    

사쪽은 정리해고가 유동성 위기, 재무구조 악화, 생산성 열위 등으로 불가피했다고 정당성을 주장해 왔고, 정부는 이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며 조작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은폐해 온 정황이 최근 국회 청문회에서 드러났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특수관계가 지배하는 현주소다. 탐욕에서 부산(副産) 된 온갖 인화물질을 가두기 위해 독점은 양산되는 것이다.      

자본의 소유가 모든 경제주체에 분산되어 골고루 위험을 분담하지 않으면 희망은 없다. 도전정신에 기인한 벤처기업들의 탄생은 애초에 기대 할 수 없다. 전체 제조업 가운데 2.3%에 불과한 이 나라 혁신형 중소기업이 그 실태를 방증한다.

더구나 이 나라 산업자본은 금융자본을 동시에 지배한다. 산업자본의 사업성을 평가하고 자원을 배분해주는 금융자본의 견제와 보완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정의 조차 없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데도, 이 나라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한다.   

대기업과 소비자만 남으면 된다는 시장논리가 이 나라의 경제정의이고 자본정의다.        

골목상권이나 중소기업이 없는, 대기업이 완전히 독점하게 되어 제품 원가보다 수백배 높은 가격이 매겨져 소비자에 던져저도 소비자로선 거부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우리는 이미 값을 멋대로 올렸다 내렸다하는 정유사 같은 경우를 통해 대기업에 종속된 소비자의 기분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의 기업들은 7,80년대 산업화 물결을 타고 급격히 선장했다. 기술력이 못 미치던 초창기에는 저가로 수출시장에서 버텼다. 이로 인한 손실분은 '국산품 애용' 운운하며 애국심에 호소해 충당했다. 결국 지금의 대기업들은 수출가격보다 비싼 가격으로 소비해 준 국민들의 덕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재벌들은 지금 이 나라의 점령군이며, 초법적 지위를 갖는다. 그들에게 노동자들은 전리품이며 약탈의 대상일 뿐이다.

무정부 상태를 부르는 대기업

심지어 국가 권력을 등에 업은 법 집행자들은 재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후견세력이다. 그들에게 천억원대 이상의 탈세, 배임, 횡령 같은 실정법 위반을 법의 이름으로 꾸짖는 것 조차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최태원 SK회장 같은 경우 1조5천억원 규모의 분식회계와 부당내부거래로 기소 됐으나 재판이 끝난 후 개선장군 처럼 귀가했다.

걸핏하면 주먹과 몽둥이를 휘둘러 사람의 심신을 짓밟아도, 회장님이 스트레스를 해소 한 것 정도로 간주하는 사법의 잣대다.

대기업 회장 개인이 경제정의에 역행해 수 조단위의 재산을 증식하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불법을 저질러 재판을 받고도 실형 한 번 선고받은 바 없다. 나아가 유죄로 인정된 양형기록의 효력 조차도 특별사면을 통해 면제시켜주는 나라다.

불법을 저지르고도 무탈한 재벌들을 보면서, 대다수 국민들은 사법부에 절망하고, 그런 시스템을 방조하는 국가를 불신하게 된다. 

체감경기가 지난 IMF 때 보다도 나빠졌다. 창업한 자영업자 50% 가까이가 3년을 못넘기고 문을 닫는 등 한파는 갈수록 모질어지고 있다.

대기업들 등쌀에 쇠약해진 서민가계는 경제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지만, 대기업은 '자유'를 방패삼아 약탈을 정당화 한다.      

그러나 공정한 기회, 고른 분배, 사회적 약자 보호, 동반성장을 위한 화두 '상생'이 지표가 되지 않는 경제는 필경 저항을 부른다. 더이상 정부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날 국민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이 냉엄한 가을, 대선주자들의 지표가 무엇보다 '경제민주화'여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