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19년 전 뉴욕시장으로 취임한 루돌프 쥴리아니는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빈발하는 강도·살인 같은 강력범죄의 위협에 직면했다.

직접 현장시찰을 나선 그는 음침하고 혐오스러운 지하철 역, 그 부정적인 이미지가 지하철 역 주변을 우범지대로 전락시키고 도시 전체를 슬럼화 한다는 판단을 내린다.

그는 지하철 역 벽과 차량들에 도배되어 있는 온갖 낙서들과 길바닥에 뒹굴고 있는 술병을 포함한 쓰레기들을 범죄의 근원으로 규정했다.

대대적인 환경개선에 나선 그는, 동시에 뉴욕검찰국장과 함께 무단횡단을 비롯한 무임승차, 낙서 같은 기초질서 위반자들을 집중단속한다.

그로부터 5년 뒤 뉴욕시의 살인사건은 연간 45.4%(1,000건) 줄고, 지하철 범죄율도 75%나 급감했다.

세상을 바꾼 변화는 사소한 부정적 이미지를 제거한데서 비롯한 것이다.

불행은 찰나와 미세한 틈에서 시작된다. 미국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드 교수의 '깨진 유리창 법칙' 확인 실험이 그걸 명증한다.

치안이 불안한 골목에 상태가 같은 두 대의 자동차를 보닛을 연 채로 두고, 한 대만 유리창을 깬 다음 일어나는 변화를 지켜봤다.

불과 10분 만에 유리창이 깨진 차는 배터리와 타이어 등의 부품이 사라졌다. 또 난잡한 낙서로 뒤덮이고 파괴되어 한 순간에 고철덩이로 변해버렸다.

반면, 유리창이 깨지지 않은 차는 처음 상태를 그대로 유지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흠집이 있는 것은 함부로 훼손 하지만, 깨끗한 것는 잘 보존하려고 하는 무의식적인 인간 심리상태다.

슬럼지대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처음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지 않았거나 건물에 깨진 유리창을 즉각 새것으로 갈아끼우지 않은 채 방치 한데서 시작된다.

그럼 익산의 깨진 유리창은 무엇인가. 국가식품클러스터를 위시한 역세권 개발, 보석도시 부활, 섬유산업 재가동, 분양중인 일반산단을 통한 생산도시로의 발돋움, 고도 문화유산이 보유한 잠재역량 같은 눈부신 비전이 있고, 그 현안들을 견인하고 있는 자치단체는 괄목할만한 가시적 성과를 냈다.

그러나 웬일인지 도시의 지표는 가파른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 인구의 경우 지방자치 실시 이래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공동주택 인허가는 도시발전 추세를 다각적으로 심의한 결과지만, 미분양 사태가 속출하고 기존 도심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급락하고 있다. 구도심의 공동화와 농촌의 고령화는 날로 심화되고 있다. 국비 확보는 큰 폭으로 늘었지만, 세입은 별 달라진 게 없다.

이 현상은 물론 당장의 과중한 생활고에서 기인한다. 더이상 버틸 의미도 상실한 사람들의 선택 결과다. 자신이 딛고 선 터전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생각, 그 비전에 대한 불신이 괴나리봇짐을 싸는 손이다.

이는 또한 누군가의 행동, 혹은 희생이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시작된 불신이다.

그것은 과속의 폐단이다. 기존 인식체계의 수정 없이는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 수 없다는 명제를 감안 할 때, 리더들의 지나치게 앞 선 행보는 공감을 얻지 못한다.

이해를 구하지 않고 함께 이끌지 않는 리더들의 과속은 본의 아니게 독단이 된다. 이런 경우의 리더는 자신이 피땀흘려 이룩한 결과를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데 대해 낙담 할 수 밖에 없다.

나아가 미래를 담보 할 성과에 이르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부산물들 즉, 절차상의 문제, 성과의 반대편에 드리운 그늘, 선택과 집중으로 놓쳐버린 현안들을 누군가 지적 할 때 과민하게 반응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익산의 깨진 유리창은 '소통의 창'이다. 잘 한 일과 잘 할 일만 생각하거나, 비전과 효율만을 강조하다 보면 사소한 잘못을 사과 할 줄 모르게 된다.

정리되지 않은 잘못들이 자꾸 쌓이게 되면 결국 사람들의 눈에는 '성과' 보다 사소한 '잘못'이 더 크게 보인다.

가끔은 성장 일변도의 드라이브를 멈추고 독보적인 성능의 제트기에서 내릴 필요가 있다.

쫓아 올 엄두도 내지 못하고 낙오한 사람들과의 만남, 그것이 더 늦기전에 깨진 유리창을 새 것으로 갈아 끼워 더이상의 슬럼화를 막는 길이 아닐까 한다.

정면으로 차분하게 비판을 듣고, 인정할 건 인정하고, 오해는 풀고, 이해를 구할 건 구하는 속도조절은 함께 갈 사람들을 얻는 길이다.

그래야 사람들의 눈에 리더가 한 일들이 들어 온다. 사람들이 성장통을 이해하는 그 순간에 리더의 업적은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다.

선택은 버린 것들의 산물

여기서 앙드레지드의 설파는 긴요하다. "사람이 바른 선택을 하려면 선택하려는 그 하나만을 볼 것이 아니라 선택에서 제외되는 나머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전체를 보게 되면 우리는 타인의 비판, 타인과의 비교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이것은 비단, 리더에 국한된 명제가 아니다. 사람들이 비전을 확신하며 목표를 향해 함께 걸으면서 인내하는 힘은 거기에서 나온다.

누구든지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는 첩경은 깨진 유리창을 신속하게 제대로 수리하는 것이다.

환자들이 병원의 낡은 카펫을 보고 의료기구 역시 구식일 것이라고 추측해버리는 것 처럼 부정적인 인식은 아주 사소한 데서 비롯한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독선에 직면하면, 그가 주변을 돌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배타적이며 다른 부분에서도 문제가 많을 거라고 예단해 버린다.

소통의 통로를 열고 말을 듣는 데 망설이지 않아야 감정적인 유대감이 형성되고 살맛이 난다.

익산에는 파편화된 삶으로 피로감에 쩌든 사람들이 많이 산다. 근원 모를 박탈감에 하루에도몇 번씩이나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는 울렁증이 심한 도시다.  

이 사람들에게 연대의식 말고 무엇이 더 시급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