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누가 현자(賢者)이고 누가 지자(智者)인가.

문재인과 안철수를 볼 때면 줄곧 따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생각이다.

지금으로서는 서로 몸집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으니, 아무래도 둘을 다른 격(格)으로 나눌 수는 없을 듯 하다.

둘 다 지자에 머물러 있다면, 이들에게는 현자가 필요하다.

정치에서 만남이 왜 중요한지와, 이들이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들려 줄 이는 누구인가.

중국 동진(東晉) 시대의 학자 원안백은 삼국지의 건국 공신들을 정리한 삼국명신서찬(三國名臣序贊)에서 유독 위(魏)나라의 순문약(荀文若)에 반한 것을 감추지 못한다. 

순문약은 조조의 최고 책사로 수많은 계책을 내서 실패한 적이 없으며, 조조가 패업을 이루는 결정적인 기초를 만들었다.

원안백은 그를 일컬어 백락(伯樂, 주(周)나라 때 사람. 독보적인 통찰력을 지닌 말 감정사. 그의 이름은 명마를 알아보는 밝은 눈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대명사가 됨)이라 일컫고, 그와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천년이 지나도 천리마 한 필을 얻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또, 기회란 만년에 한 번 주어지며, 현자와 지자의 만남은 천년에 한번 이루어진다고 적었다.

문재인과 안철수에게 사람을 보는 눈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하려 할 때 천재일우를 넘어선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국민들에게 누가 필요한지,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애써 외면하면서 딴전을 피우는 그들을 돌려 세우려 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들이 표방하는 바, 소위 만남을 위한 전투는 가능한 것일까. 같은 영토 안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자기 세력을 넓힐 수 있다는 발상은 누가 했을까.

그들은 가파른 산 정상에서 굴러내리는 눈덩이 처럼 어느 지점에선가 제동력을 잃게 될 것이다. 자신이 커졌다는 사실에만 도취 된 채 풍비박산 날 것이다.

문재인은 정당을 대표하는 주자, 안철수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주자로서 자신만이 적합한 단일후보라는 생각이 굳어진 양태에서 투영 된 비극이다.

서로를 존경했던 또는 흠모했던 둘은 어제의 그들이 아닌 오늘을 맞이하고 있다. 

과거에도 남은 시간에도 두 진영에게는 평화로운 길이란 없다. 오직 승부의 외길을 걸었으며 결전을 앞두고 있을 뿐이다.

국민들은 염원한다. "다른 건 유보하더라도 경제민주화는 달성해야 한다. 그것을 이룰 선택받은 자가 필요하다"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시스템을 구축해 달라."

문재인과 안철수는 이같은 역사인식에 추호의 다름이 없어야 한다. 그것은 야당 단일 후보의 제일 자격요건이다. 그렇지 않다면 단일화의 의미는 없다.

그런 맥락에서 단일 후보를 내는 방식도 거기에 부합해야 한다.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시장경제 방식의 무한경쟁은 바람직하지 않다.

담론과 합의를 중시하지 않고, 힘의 논리를 앞세운 경쟁이라면 두 후보는 벌써 결격사유를 드러낸 것이다.  

시장자본주의를 추구하는 마인드로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읽어낼리 만무하다. 약육강식과 부의 편중이 사회적 파국을 부르고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으며 공감감도 없다.

더구나 경제민주화를 이룩하려면 시장에 대한 정치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단기적인 효율과 집중을 견제하고, 장기적으로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꾀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둘 중 하나가, 그럴싸한 '중도'나 혹은 익명의 정체성을 표방하며 '실용경제' 밖의 요구들을 현실 질서에 반하는 이상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한다면, 국민들은 위기에 처한다.

만약, 시대정신에 동떨어진 한 사람이 단일화 경쟁에서 이기고 본선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것은, 박근혜가 당선되는 것 보다 불행한 일이다.

그것은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진영의 와해를 뜻하기 때문이다. 패잔병도 아닌 주변인들의 모호한 세상이 열릴 것이다. 고통 속에 궤멸되면서도 인고의 세월을 감내하는 회색세상에 떨어질 것이다.

문재인과 안철수가 단순히 인기몰이식 세불리기를 멈추고, 자신과 상대방이 시대정신에 적합한지의 여부를 먼저 검증해야 하는 이유다. 대선에 나선 그들의 첫번째 책무다.

단순히 이기기 위해서 단일화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재벌들의 방향성이다.

개혁의 힘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재벌들의 친위세력인 권력을 해체해 제자리에 되돌려 놓아야 한다. 대선 후보 스스로도 당선 뒤 부여받은 권력을 재벌에게 팔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들여다 보아야 한다.

노무현 정권 핵심부에서 삼성을 비롯한 친재벌 세력의 한 구성원이었던 문재인이나, 축재(蓄財)와 관해서 승승장구해 온 안철수나, 그 검증 요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체로 거울 앞에 서서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대통령으로 나는 적합한가'를 혹독하게 물어봐야 한다. 새로운 오늘의 '나'가 현자(賢者)일 수 있도록.

문재인과 안철수는 일생에 단 한번, 딱 한차례의 만남을 직시해야 한다. 국민을 위해 지금 뭔가를 하는 것이 당선 뒤 보다 더 기여하는 바가 클 수 있다. 상대를 추대하는 이가 바로 현자(賢者)다.

자신의 장점보다 단점을 더 깊이 살펴야 할 때다. 어줍잖은 정책의 분가루들을 흩뿌려 본질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이대로 가서는 단일화 자체가 어려울 수 있고, 뒤늦은 단일화로 참패를 맛볼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민에 기대지 않고 당선 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며, 당선된 뒤에도 국민의 힘에 기대지 않으면서 공룡들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도탄에 빠진 국민에게, 둘의 만남은 하늘이 준 천재일우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백락(伯樂)이 될 때 비로소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누가 현자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