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안철수는 대통령 예비후보직을 사퇴하면서 "내가 알던 문재인이 아니었다"고 했다.

여러 맥락을 뒤따라 나왔겠지만, 그가 단일화 협상테이블을 무단으로 떠난 뒤에 그 울림이 갈수록 증폭되는 말이다.

거기에는, 협상 테이블에 쏠렸던 불특정 다수 국민의 시선을 의식한 변명, 그 이상의 결단 근거가 함의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철수가 대선후보 지위를 양보 받거나 단일화 협상에서 이길 수 없었던 원인은 대략 세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첫번 째 완착(緩着)은 문재인을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아닌 개인 문재인으로 만났다는 것이다.

문재인과 소통했으나 그것이 민주통합당과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 했다. '덕이 있는 사람,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문재인'은 없었다.

안철수는 민주통합당을 몰랐다. 두번째 실착(失錯)이다. 신구 세력이 서로 부침을 번갈아 하면서 에너지를 소모하는 야당. 그러나 정치적 혁신성에서 집권정당과 별 차이가 없는 정당. 무엇보다 참신한 인물을 영입할 필터가 없어 집권 여당과의 차별성을 구축하지 못한 집단. 지역할거주의와 계보주의로 폐색(閉塞)된 조직을 실감했을 것이다.

파벌간에 자신만 옳다고 충돌하면서 응집된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 힘이 분산된 정치집단은 견인력도 추동력도 없어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져갈 수밖에 없다.

총선에서 참패했지만, 내부 밥그릇 다툼에 불과한 상층부의 물리적 조직개편에 힘을 탕진하고, 대선 정국을 주도할 이슈도 선점하지 못하는 성찰없는 정당이다.         

이런 이기적인 조직에 진보의 가치를 받아들일 가슴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런 조직이란 밥그릇 앞에 수저를 든 개인의 집합체일 뿐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서 기존 조직이 완전히 초토화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들떠 있지 않았겠는가.

안철수의 세번째 패착(敗着)은 보수 언론에 틈을 준 것이다. 걸어 온 길이 축적된 이미지가 경쟁력인 그로서는 보수 언론에 취약했다.

보수언론은 그가 보수진영에 줄 이익이 없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반면, 문재인에 대한 비판은 자제했다. 단일화 협상과정에서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안철수의 지지율은 하락하고, 문재인의 지지율은 꾸준히 상승했다.

민주통합당 구성원들이 안철수를 정권교체의 대안으로 여길 턱이 있었겠는가. 오히려 단일화 협상이 하루빨리 무산되기를 바라지 않았겠는가.

안철수의 패인은 여전히 유효한 손자병법의 선승구전(先勝求戰)을 충족하지 못한데 있다. 전쟁은 싸워서 이기러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승리를 확보하고 그것을 확인하러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역학에 대한 안철수의 무지와 무능력은 국민적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국민들은 그를 정치인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의 덕망과 학자적 비전이 구태정치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혁신의 기제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정치인이 아닌 안철수야말로 양극화로 치닫는 부의 질주를 잡고, 부의 분배 정의를 세울 것이라는 관점이었다.

새누리당이 가장 두려운 상대로 여길 수 밖에 없었다.

문재인은 어떤가. 그가 이끄는 조직은 호혜적이지 않고, 현실에 안주한다. 지속가능성이 없다. 그는 황폐한 지형에 덩그러니 섰다.

이기적인 집단은 보다 큰 이익을 위해 사분오열한다. 오직 이익만을 분점하는 조직은 불안정하다.

뺏거나 빼앗기는 전투란 밤낮을 가리지 않는 탓이다. 불안은 이기주의의 산물이며, 공멸과 도태의 원인이다.

지속가능한 집단은 호혜주의를 지향한다. 이익을 위해 경쟁하지만, 모두에게 유익한 가치 공유를 전제한다.

평화를 지키는 순리다. 모두에게 이롭다면 상대에게 이익을 줘야 한다. 궁극적으로 그런 관계사이에서 발전된 이익은 호혜적인 집단의 이익으로 되돌아 온다.

이기적인 집단은 도태된다

인간 유전자의 진화는 그런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은 보편적인 가치를 주창해왔지만 허울뿐이었다. 실현하려는 의지가 미약했다.

새누리당과 다른 노선을 설정하고 그것을 국민에게 어필하면 그만이라는 정서가 바닥에 짙게 깔려있다.

국민을 속여 집단의 이익만을 쫓는 이미지 전쟁의 기록, 그것이 우리의 정당사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안철수의 퇴장이 '이타주의'라는 실질적 이미지의 퇴장으로 읽히는 이유다.

문재인은 자신을 대표주자로 만들어 준 조직에는 충실했으나, 국민과 미래를 위한 시대적 요구를 외면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 보다 소중한 가치를 수용해야 할 때 지극히 미온적인 태도를 취했다. 단일화 협상은 그의 대통령 당선 이후를 가늠할 시험무대였으나 결과는 완전한 실패다.

안철수의 차가운 눈물에 문재인이 선 지형은 얼어붙을 것이다. 문재인과 그의 조직은 이미 도태를 선택한 꼴이다.

이대로는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기도 어렵겠지만, 대선 승리가 오히려 불행을 초래 할 공산이 높다. 다수당인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에게 줄 것이 없고, 국민들은 오래지 않아 민주통합당의 기만행위를 간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흄은 이런 부적절한 상황을 이미 250년 전에 갈파했다.

"너의 옥수수가 오늘 익었다. 내것은 내일 익는다. 내가 너를 위해 오늘 일하고, 네가 내일 나를 도와준다면 둘 다 좋을 것이다. 나는 너에게 친절하지 않고, 너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너를 위해 힘든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보상을 바라고 너를 위해 일해야겠지만, 나는 실망하게 될 것을 안다. 너의 감사에 기대는 것은 헛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네가 혼자 일하게 둔다. 너도 나를 똑같이 대한다. 계절은 바뀌고, 서로 믿지 못해서 우리는 둘 다 추수에 실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