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2013년은 '검은 뱀의 해'로 불린다. 첨단과학의 과실이 익숙한 입장에서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새 해 이름 계사년(癸巳年)이다.

하지만 12지(十二支)와 10간(干)은 4082년 전에 건국한 중국 하(夏朝)왕조의 천문학적 산물로 추정한다. 하루를 두시간을 묶어 12등분으로 나누고, 10간을 1순으로 한 달을 상순·중순·하순으로 나눴다. 매번 중복되는 달수를 피해 12지간을 붙여 사용했고, 이 것은 60갑자로 윤전한다.

이런 천기의 순환은 은대(殷代)를 거쳐 한대(漢代) 중기에 이르러 체계화됐고, 12지에 열 두 동물을 대응시킨 것은 그로부터 훨씬 뒤의 일이다.

어떤 이유로 해(年)에 동물의 이름이 부여됐는지, 해의 이름과 동물의 특성이 과학적으로 부합하는지는 어떤 기록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해와 달과 날에 동물이름을 붙이고, 동물이 가진 특성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음양오행설과 결합시켜 길흉을 판단하는 얘기는 허황하게 들린다.

사람의 성질과 운세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고 좋은 날 나쁜 날이 윤전한다는 통계란, 설사 인간이 누대에 걸쳐 천기를 읽고 기록한 결과라 하더라도 그 오류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우리가 상하귀천이 정해진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어진 처지를 극복하는 것 조차도 운명이라는 명제를 부정하는 한 계사년이 담고 있는 내용은 우리에게 무의미하다.

그러나 우리는 닥쳐 올 운명을 알 수 없고, 운명의 운용은 인간의 영역 밖의 일이다. 우리가 현실에 순응하고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이유다.

우리는 여전히 평등하게 기회를 얻지 못하는 세상을 살고 있으며, 기득권은 특정 소수의 전유물이 되어 절대다수의 희생을 강요한다.

수천년이 지나고 우주선이 신(神)의 나라를 방문하는 시대를 살아도, 우리는 불가측의 운명에 지배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럴 수밖에 도리없는 근원에 그런 당위를 표징하는 현실이 엄연히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일 시작되는 계사년 '검은 뱀'은 어떤 기운을 지녔을까. 이 한 해는 어떤 운명의 고리들로 연결되어 있을까. 예측이 가능하다면 지친 마음을 추스릴 수 있다.

억지로 되는 일이란 없다. 큰 새 일수록 바람을 타야 높이 날아오를 수 있고 멀리 날아갈 수 있다. 최소한 바람의 방향이라도 알고 싶다. 새해를 맞이하는 소시민들의 마음이다.

사실, 대자연의 법칙은 상식이다. 한 여름에 얼음이 얼지 않고 한 겨울에 풀이 자라지 못한다. 사람이 그것을 거슬러 혼란에 빠뜨릴 따름이다.

12간지 역시 당초에는 간명한 뜻을 내포했을 것이나, 사람이 복잡하게 얽어 스스로 혼돈에 빠졌을 수도 있다. 상식의 범주 안에서 흑사(黑巳)를 상상해 본다면 어떻게 마음을 추스려야 할 지 가늠할 수는 있지 않을까.

검은 것은 깊고 멀다. 물이 깊으려면 많아야 한다. 멀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니, 보이는 것을 토대로 보이지 않는 세상을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계사년은 풍부한 식견과 혜안으로 번영된 미래를 열어가는 해가 아닌가 한다.
뱀은 곧게 폈을 때 양극단을 지닌 선분이지만, 꼬리를 물면 둥근 원이 된다. 윤회와 영생, 풍요를 상징한다.

뱀 꿈이 길몽으로 해몽되는 배경이다. 많은 뱀을 보면 일이 잘 되고, 만지면 부자가 되며, 치마 속으로 들어오면 잉태하고, 구렁이에 물리는 꿈을 꾸면 큰 일물이 될 아이를 낳는다.

허물을 벗는 뱀은 성장을 상징한다. 뒤틀린 사고방식과 태도, 퇴행적인 습성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몸을 얻는 환골탈태를 주도한다.

뱀은 성격이 차분하고 신중하며 끈기 있게 기다릴 줄 안다. 긴긴 겨울날을 먹지 않고 버틸 수 있으며, 오랜 세월이 지나면 용이 된다.

대통합의 길 발견은
운명이 아니라  지도자의 몫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뱀은 겸손을 덕성으로 지녀서, 탐욕으로 타락한 것들을 정화하는 힘을 발휘한다.

뱀은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잘 알고, 그런 편안한 자리에서 똬리를 튼다.
흑계사년의 대강을 살펴보니, 길을 잃고 도탄에 빠진 서민들을 건져내며 방향을 제시 해 줄 현자의 출현이 있을 법도 하다.

남북 분단과 보혁 양단의 진영간 대치 상황을 풀고 대통합의 길로 이끄는 힘이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도 생겨난다.

혼탁해진 세상을 차분하게 접촉하며, '이익 독점 카르텔'구조를 해체하고 분배정의를 바로세우는 단초가 마련 될 것이라는 희망이 샘솟는다.
하지만 우리들은 인고의 시간들을 감내 해야 할 것이다. 정성을 다하며 대자연의 법칙에 기대야 할 것이다.                  

우리 상대다수는 이미 현자를 선택했다. 그는 세상을 바꿀 힘을 지니게 됐다. 그가 공약을 이행 할 때 상식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된다.

사실, 우리가 연초에 다가 올 한 해를 예측하는 것 보다, 지도자의 가능성에 기대는 것이 흑계사년에 더 어울리는 일이다,

지도자가 할 일은, 우리가 결코 구체적일 수 없는 운명론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새 세상을 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희망은 반신반의다. 박근혜 당선인은 초장부터 국론 분열을 확대·극대화하는 인선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지난 25일 수석대변인으로 임명된 윤창중은 언론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행렬을 '황위병이 벌인 거리의 환각파티' 등 원색적인 표현들로 매도해 분열을 부추겼던 인물이다.
그런가 하면, 다음 날 대기업 총수들을 만난 자리에선 '정리해고 자제'를 촉구하고 '중소기업 대통령'을 선언하며 대기업의 변화를 압박했다.

우리가 닥쳐 올 운명을 어찌 알겠는가. 박근혜는 검은 뱀 계사년의 선택 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