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해, 우리는 희망한다. 무엇이든 과도하게 빠른 변화들이 둔화되기를.

첨단 속도를 따라 잡지만 아직 적응했는지 조차 모른 채 숨가쁘게 뛰고 있다. 잠시나마 시선이라도 돌릴 틈이 언제 없을까.

그러나 우리는 그런 바람이 사치라는 사실을 잘 안다.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 곧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치솟는 물가((物價)를 외면하지 못한다. 매일 개벽되는 세상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경쟁시장은 갈수록 빠른 주기로 낙오자를 양산하고 있다.

우리는 백색 광장에 있다. 감시와 평가의 빛, 일체감을 조장하는 그 빛 안에 포함되어 있을 때 우리는 안도한다.

우월한 유전자들이 집합한 시장과 열등한 유전자들이 산재하는 어두운 골목으로 양분된 세상에서 우리는 전체를 '시장'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인다.

스스로를 비정상적인 존재로 여기는 우리는 혈육의 권력에 내침 당한 반인반수 미노타우로스가 되어 미궁 라비린토스 속에 유폐된다.

그런 우리는 어둠 속에 고립되거나 탈출 하거나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불가항력의 결과를 부끄럽게 여기는 완벽주의에서 비롯했다.

경쟁을 삶의 목표로 산다면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한 사람을 제외하곤 모두 패배자들이며, 더구나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 패배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골목에는 다만, 무수한 경쟁의 장 가운데 자신이 선택한 곳에 진입했다가 밀려났을 뿐인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골목은 빠져나가기 어려운 미로다.

라비린토스를 만든 건축가 다이달로스가 신의 능력을 발휘한 것이 아니라 체념과 절망, 그리고 박탈감이 그들을 골목에 묶는 사슬이다.  

반면, 자신과 같은 낙오자들을 위해 생존을 포기하고 광장으로 나가는 이들도 많다. 골목을 줄이고 광장을 넓히라는 주장에 전부를 던진다.

이상하리만치 현실에 순응한다. 그래서 골목은 불행하다.

도대체, 골목이 외톨이들의 은신처이고, 범죄의 온상이며, 사회적 사각지대여야 하는 현실에는 설득력이 없다.

광장을 넓히기 위해 골목을 파괴하고, 그 안에 살던 사람들을 또다른 비좁은 골목으로 내모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 개발이라니.

혹은, 더 나은 광장을 건설하자고 낡은 광장을 고립시켜 골목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발전이라니.

한 번 버려진 슬럼지대에서는 시계가 거꾸로 돈다. 생활환경이 눈부시게 변하는 광장의 속도에 반비례한다.

박탈감은 고립을 고착화 시킨다. 가능성은 빠져나가고 단절의 간극을 넓혀나가는 퇴행이 만연한다.

담장 너머 들리는 말 소리로 이웃을 알고, 골목에서 섞여들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함께사는 것이 삶의 뜻인 줄 알았던 종(種)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가릴 것도 숨길 것도 없어 얼굴만 들면 바로 이웃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골목, 그러나 지금 퇴화한 담장과 무너져 내리는 축대 그 너머에는 정적만 감돌고 있다.           

생태계 어느 곳도 비켜 갈 수 없는 진화는 골목에서 멈췄다.

우리가 냉혹한 속도전에서 벗어나 본래 둘이 아닌 공동체의 복원을 위해 시선을 돌려야 할 곳이 골목길인 이유다.  

사실, 성취감과 자신감으로 등등한 광장의 벽이 훨씬 높고 견고하다. 골목의 단절감이란 거기에 비할 바가 못된다. 경쟁에 따른 갈등과 승자들의 오만이 불통의 근원이다.

하지만 골목에는 여전히 함께가야 수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자족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기에 탐욕을 버리고, 작지만 나누어서 얻는 충만감을 체감하며 살아야 할 의미를 얻는 사람들이있다.

골목에는 그들이 기록해 온 역사의 발자취가 있고, 지리적인 요소가 자연스럽게 창출해 온 양식들이 있다.

시간에 따라 다르게 지리를 보는 시각들이 오롯이 살아 숨쉰다.

골목 탐구자는 숨어있는 의외의 장면들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되어있다. 

그래서 골목길은 지루하지 않다. 음침하고 좁으며, 담벼락은 어설프고, 집안 마당은 어둡고 스산하지만, 조금만 집중하면 촘촘하게 박혀있는 시간의 활자들을 발견 할 수 있고 다양한 언어들을 들을 수도 있다. 
도시 정체성 복원과 회귀의 선순환 고리

도시가 차별성을 가지려면, 먼저 개발의 속도를 늦추고 균형을 잡아야 한다. 차분하게 정체성을 살펴야 한다. 도시가 시간을 사용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때, 골목의 원형은 도시 경쟁력의 선순환 고리가 될 수 있다.

골목에서 성장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장소지만, 사회적 소수자에게는 고단한 삶을 영위하는 실존의 공간이다.

그 추억과 실존이 공간을 파괴하지 않고 골목을 재생한다면 머물고 싶고 또 찾고 싶은 골목이 새롭게 우리 앞에 다가서지 않을까 한다.

명인들은 골목에 있어야 제격이다. 노쇠하지만 여유만만한 노인들이 그곳에 있어야 한다. 지나가는 청년이 그들과 오순도순 말을 섞고, 동네 아이들이 왁자지껄 골목을 매워야 한다.

오밀조밀한 상점들과 사람냄새를 투영하는 문화시설들이 회귀해야 한다.

익산에는 희귀한 골목들도 많다. 가정집들과 여인숙이 공존하는 골목, 전통시장과 연접한 주택가 골목, 1970년대 어간에 멈춘 골목 등 다양한 유형으로 산재한다.   

도시를 보는 눈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도시를 이해하는 중요한 문화코드가 골목에 있다. 광장과 골목이 그런 관점에 의해 연결되고 소통해야 한다.

미세한 시간의 흔적들과 버려진 증거들을 골목 제자리에 돌려놔야 한다. 복잡하면서도 무형식적인 조형적 특징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것은 극적 요소들이며 극의 소품 같은 것들이다.

계사년 벽두다. 도심공동화를 일으키는 신시가지 개발 일변도를 성찰하면서 시작돼야 한다. 익산시의 시선이 골목을로 돌려지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