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익산은 철도물류 중심의 교통요충지다.

호남평야의 중심지로서 곡창지대의 쌀을 수도권으로 실어나르던 과거에도, 1977년 화약을 실은 화물열차의 폭발을 계기로 재정비됐던 시절에도, 호남선 복선화시대를 맞은 이후 현재에 이르러서도, 그것은 부동의 명제였다.

익산이 사통팔달의 도로망을 자랑하는 것도, 모두 익산역 기능의 극대화를 위한 것이었다.
철도는 한꺼번에 많은 물량을 수도권까지 최단거리로 수송 할 수 있다는 점을 육로교통수단에서 가장 큰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2015년을 개통 목표로 약 60%의 공정률을 보이며 한창 노반공사를 추진중인 KTX호남고속철은 그 결정판이다.

8조7,283억원의 투자가치는, 호남고속철이 개통되면 광주송정에서 용산까지 소요시간이 기존 2시간 48분에서 1시간33분으로 단축된다는데 있다.

그런데, 대전·충청권 지자체와 육·해·공군본부 등이 호남고속철도 신설노선에 서대전역을 경유할 수 있도록 기존노선을 병행운행하도록 요구하고 나섰다.

이는, 용산∼오송∼공주∼익산∼정읍∼광주로 이어지는 '호남고속철'의 건설 이유를 부정하고, 정체불명의 '저속철'로 전락시키자는 주장이다.

충청권의 요구는 오송∼서대전∼계룡∼논산 등으로 이어지는 기존 '일반선로'를 병행, 운행해 대전·세종·계룡·논산 4개 시 승객들에게 이용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따르게 되면 32㎞ 거리가 늘어나 익산역에서 용산까지는 1시간51분이 걸린다. KTX호남고속철의 전용선로가 개통되면 용산까지 66분이 걸리는데, 1시간 생활권시대가 좌절된다.

충청권은 자신들의 요구를 배제하면 호남권과 대전권의 접근성이 악화돼 국가균형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발상부터 무리고, 지역이기주의의 발로다.

서대전역에서 호남고속철 전용선로 안에 있는 KTX오송역까지 일반열차의 소요시간이 33분 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불편을 겪지 않겠다며, 호남지역 이용객들에게 더 많은 시간적·경제적 손실을 강요하고, 호남고속철의 본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   

더구나 공정률이 60%를 넘긴 상황에서 생떼를 쓰며 국토해양부를 흔드는 충청권의 저의에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18대 대선에서 몰표로 박근혜 정부를 창출한 지역적 지분을 믿고 가당치도 않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국토해양부의 입장에서 어림없는 논리지만, 예측불가능한 예비정부의 행보를 보면서 일말의 불안감이 엄습한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는 정권 말 무딘 칼을 휘두르며 철도민영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고약한 조짐이다.

국토해양부가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철도 관제권을 환수해 한국철도시설공단에 넘기는 것을 골자로하는 철도산업발전기본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을 지난 9일 입법예고했다.

관제권은 열차 운행 시스템을 관장하는 것으로, 현재 운행중인 열차뿐만 아니라 미래의 열차 운행 계획과 이에 따른 선로 배분, 비상시의 응급조처 등 철도운영과 관련한 모든 것을 주관하는 핵심기능이다.

철도공사가 이를 독점하고 있는데, 시설공단으로 관제권이 넘어가면 민간 철도업체가 들어올 때 손쉽게 철도운행시간, 노선 등을 편성 할 수 있게된다.

시설공단이 철도공사의 관제권을 이관 받는 것이 철도 민영화의 사전 정지작업이라고 지적받는 이유다.

철도의 민영화는 공공성을 훼손하고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데도 마이동풍이다. 

국토부는 철도공사의 독점이 부실을 가져왔다는 빌미를 내세우며, 안전을 위해 관제업무를 이관하되 철도시설은 국가 소유로 하고 운영은 경쟁원리를 통해 효율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철도민영화 움직임도

 KTX 저속철 풍향계

하지만 이는 철도운영기관이 관제권을 갖는 철도선진국들의 정책과 정반대 쪽이다.

기차와 철도, 신호가 하나의 시스템이기 때문에 운영과 시설기능을 통합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고 안전하다. 오히려 선진국들이 철도의 기능을 쪼개기 보다 일원화 하는데 주력하는 배경이다.

그런데 국토해양부는 경험도 없고 조직도 작은 시설공단에 안전이 생명인 철도관제를 시설공단에 이관하겠다는 것이다.

공공성 문제를 보더라도, 앞서 철도 민영화의 길을 간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서비스 질 저하와 과도한 요금인상 같은 폐단을 안고 있다.

철도공사의 적자는 공공성 때문에 적자를 감수하면서 이용율이 낮은 일부 노선을 운영하는 데서 오는 부분이 크다.

사회기반시설까지 재벌기업들에게 내주기 위한 위험한 정부의 작태를 보며,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이윤과 수익성이 관제권 이관의 전제 구실이라면, 국토해양부에 심어진 이명박식 사고체계가 박근혜 정부에서 작동하는 끔찍한 상황이 선연하게 예측된다.

KTX호남고속철의 대전 경유가 그런 풍향계와 무관치 않다는 각성에서 비롯한다. 운영을 맡게 되는 재벌의 기업논리라면 호남고속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도 남는 까닭이다.

호남고속철 대전경유 주장과 철도민영화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일이 정치권은 물론 범도민적 차원에서 전방위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특히 익산은 사활을 걸어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