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나는 카약의 바닥에서 하늘에 피어오르는 구름을 바라보았어. 구름이 하늘을 가로지르듯 영혼은 기나긴 세월을 가로지른다지. 모양이나 색조나 크기는 다르다 해도, 구름은 여전히 구름이야. 영혼도 마찬가지지. 구름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아침이면 영혼이 어떤 이가 되어 있을지를 누가 알겠니?"

데이비드 미첼의 소설 '클라우드 아틀라스'(cloud Atlas: 구름 지도)의 한 구절이다.

대선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해 어수선하다. 와중에 새 해를 맞았다.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를 스스로 묻던 중에 불현듯 미첼의 구름에 빗댄 인간 본질에 대한 역설에 사로잡힌다.

이 작품은 19세기 말부터 지구가 멸망한 근 미래까지 500년을 넘나들며 각기 다른 시공간을 사는 인물들의 여섯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인간의 권리를 억압하는 야만성에 치열하게 도전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몸 깊은 곳에 답을 새긴다.

1984년, 태평양을 항해하는 변호사 '애덤 어윙'은 그의 돈 궤짝을 노리고 접근한 의사의 살해 대상이 된다. 그는 의사가 투여한 독에 중독돼 죽음의 문턱에 이르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구한 흑인에 의해 극적으로 살아난다. 앞서, 어윙은 백인이 유색인종을 착취와 압제의 대상으로 삼는 시대의 금기를 깨고 밀항한 흑인이 자유의 몸이 되도록 도왔었다.

집으로 돌아 온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부와 권력을 초개처럼 버리고 아내와 함께 노예 해방운동을 위해 떠난다. 

1931년, 젊은 천재음악가 '로버트 프로비셔'는 동성의 루퍼스 식스미스를 사랑하는 남자다. 방탕한 생활로 곤경에 처한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저명한 작곡가인 에어스의 조수가 되어 걸작 '클라우드 아틀라스 6중주'를 작곡한다.

하지만 에어스가 저작권을 빼앗기 위해 그의 과거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하자 자살을 택하는 비운의 주인공이다. 짧지만 강렬한 삶을 살았던 그는 세상에 두가지를 남긴다.

하나는 자신의 일상을 담아 식스미스에게 보낸 편지이고, 또 하나는 자신의 이름으로 취입한 음반 클라우드 아틀라스다. 

1974년, 미국 핵발전소 건립 이면에 숨겨진 거대한 음모를 단신으로 추적하는 여기자 '루이자 레이'. 늙은 핵발전소 연구원 식스미스는 그녀에게 극비문서를 전하려다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레이는 수차례의 테러에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추적을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결국, 불완전한 핵발전소를 폐기처분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극비문서를 손에 넣게 되고, 사실을 은폐하고 방치한 음모를 세상에 고발한다.  

2012년, 출판업자 티모시 캐번디시는 자신을 성공시켜준 작가의 음모에 의해 사채업자들에게 쫓기게 된다. 그는 형의 소개로 피난처에 들어갔으나, 그곳은 노인을 죄수처럼 가두고 억압하는 요양원이었다. 그는 요양원의 독재적인 규율과 무지막지한 폭력에 저항하다 동료들과 탈출계획을 세워 그곳을 벗어나게 된다.

2144년, 네오 서울의 복제인간 '손미-451'. 그녀는 반군장교 장혜주에 의해 지식을 추구하면서 자기와 같은 복제인간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순혈인간들의 필요에 따라 착취당하다 죽여지도록 계획되어진 복제인간들의 실체를 알리고, 구속에서 벗어나 생명의 본원적 가치인 자유를 되찾으라는 메세지를 남기고 최후를 맞이한다.

2345년, 문명이 파괴된 미래의 지구에서 손미를 신으로 섬기는 원시유목민 '자크리'. 그는 잔악무도한 식인종 코나족으로부터 선(善)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우지만 결국 소중한 가족들을 잃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자크리는 앞서 자신의 의지로 주어진 운명을 뛰어 넘으며 도왔던 여인에 의해 살아남게 된다. 그녀는 핵에 의한 세상의 종말을 막고, 또 다른 미래를 열어갈 부족의 일원이다.

이야기들은 완전한 독립성을 지니며 이야기의 양식 또한 분명하게 구분된다. 그런데 작가는 전혀 다른 이 시공간의 사건들을 절묘하게 연관짓고 있다.

어윙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보내는 태평양 항해일지는, 절반쯤 뜯겨진 채 에어스 집에서 살게 된 프로비셔의 침대 밑에서 발견됐고, 그것은 '클라우드 아틀라스' 작곡에 결정적인 영감을 제공한다.

유전자의 존재 방법은 '사랑'

어윙의 일지에서 그의 장인은 떠나려는 사위에게 "자신의 삶이 끝없는 바다에서 한 방울의 물방울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될 테니 헛수고하지 말라"고 하는데, 어윙은 "하지만 바다 또한 무수히 많은 물방울이 모인 것이 아닙니까?"하고 받는다.

프로비셔가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다'고 웅변하는 '클라우드 아틀라스 6중주'를 낳은 원천이다.

레이는 식스미스가 남긴 유품 가운데서 프로비셔의 편지를 발견하고, 음반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손에 넣게 되며, 이후 그것은 그녀가 즐겨듣는 음악이 된다.

티머시 캐번디시는 투고작으로 들어 온 레이의 이야기 1부를 읽게 되며, 손미는 캐번디시의 모험담을 영화로 본다.

손미를 신으로 섬기는 자크리는 손미의 인터뷰 영상이 담긴 기기를 보게 된다.

그렇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여러개의 이야기인 동시에 한 사람의 이야기다. 작가는 각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신체에 지닌 혜성 모양의 점(버스마크)에 윤회를 표징한다.      

버스마크는 어윙의 가슴에, 프로비셔의 허리부분에, 레이의 어깨에, 젊은 캐번디시의 종아리에, 손미의 목, 자크리의 뒷통수에 각각 찍혀 그들의 환생을 암시한다.

미첼은 '구름 지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 유전자의 생존 방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는 끊임없이 외피를 바꾸면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살아가는 이유이고,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힘이며, 운명을 지배하는 가치다.

'손미-451'는 프로비셔의 환생이다. 손미를 취조하는 기록관은 전생에 프로비셔를 사랑했던 식스미스다. 그는 "너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가"하고 묻는데, 손미는 "이미 누군가는 믿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순간 빈틈없던 식스미스의 눈은 흔들린다.

이 수상한 시절에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면, '구름 지도'를 영화로라도 만나보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