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배 국장

영화 링컨이 포착한 시간과 공간은 지금 우리가 처한 시대상황과 흡사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유혈충돌 유무(有無) 정도일 것이다.

이 나라는 대통령 선거조차 좌우 혹은 보수와 진보의 대결로 가름하는 갈등구조에 갇혀있다.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의 틀은 재벌을 보호하고 육성하며, 경쟁에 낙오된 사람들의 인권은 박탈되고 재벌에 예속된 노동자들은 착취와 탄압의 대상이다.

링컨 시대의 남부는 대농장이 발달해 노예 노동은 곧 부(富)의 원천이었다. 반면, 소농과 상공업이 발달한 북부는 자유로운 노동력이 필요했다.

또, 남부는 영국과 프랑스에 면화를 수출했는데, 영국과 독립전쟁을 치르고 가까스로 독립을 쟁취한 북부의 입장에서는 자국의 산물로 영국자본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경제력이 영국에 예속되는 것은 국가안보와도 직결된다.

1850년대 북부인들의 완전한 노예제 폐지 요구는 그런 여러각도의 손익계산에서 비롯했다.
따라서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은 미국인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으며 나온 것이고, 그 실천의 당위는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지상과제라는 점이었다.

더구나 민주주의 국가 미국에서 노예해방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 언젠가는 이루어져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노예제를 반대하는 링컨의 대통령 당선이 남부 7개주의 미 연방 탈퇴와 남북 내전 발발의 직접적인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노예를 자본으로 여기는 부호들이 기득권 수호를 위해 죽음도 불사한 것이다.

특히 현실은 천길 벼랑 옆구리에 난 좁은 험로였다. 노예제 폐지 없이 남북이 휴전한다면 남부의 이탈로 강력한 지지기반을 잃고 소수당으로 전락했던 민주당에 남부 주(州)들이 복귀하고 민주당의 당세가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화당 단독으로 노예의 완전한 해방을 골자로하는 헌법 13조 수정안을 통과시킬 기회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링컨은 그런 냉철한 판단을 바탕으로 노예제 폐지의 정확한 타이밍을 찾아내고, 자신의 결단을 흔들림 없이 실천한 행동력에서 독보적인 족적을 남겼다.   

링컨이 위대한 지점이다.

감독이 영화의 앵글을, 재선된 링컨 대통령이 헌법 수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키는 구간에 고정시킨 것은 링컨의 신화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읽힌다.

감독은 링컨이 노예해방을 진영논리가 아닌 인류 보편적 가치로 인식하고 있는 관점을 가장 밀도있게 탐닉한다.

‘인권은 하늘이 부여한 것’이라는 명분을 세운 링컨은 진영을 초월해 신을 대행하는 지위를 확보한다.

국무장관을 위시한 3인조 로비스트들의 민주당 의원들을 상대로 한 표 거래 양태, 대통령의 특권을 이용해 장관자리까지 약속하는 반대자 포섭 등 부정한 수단에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이다.   

헌법 수정안을 정치적 거래로 생각하는 내각과 공화당 의원들은 고비마다 흔들렸다. 주변 동지들 조차 평화와 대의(大義) 두 가지를 한꺼번에 달성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으로 링컨을 압박하는 순간도 있었다.

링컨은 그들을 자신의 논리로 설득하되 후퇴하지 않는다.

‘인권’ 문제는 적당히 물러서서 접점을 찾을 성격이 아니라는 인식을 기반한 태도였다. 노예제가 폐지되더라도 유색인종들이 참정권을 갖지 못하거나 노동 말고는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무엇보다도 4년 동안의 유혈 충돌로 60만명이 죽어나간 남북전쟁을 헛되게 하는 것이었다.

링컨은 결코 토론을 포기하지 않으며, 빈틈없는 논리로 좌중을 압도한다. 링컨에게 정치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불굴의 의지이고 끊임없는 소통이며 그로인해 ‘피로가 뼈에 사무치는 것’이다.

그것은 공화당이 통일된 목소리를 내고, 승리를 위해 스스로 묵은 관성을 깨게하는 힘이 됐다. 

스필버그에게 이 영화의 제작 의도를 묻는다면, “현실 속에 두 발을 딛고 미래라는 골리앗에 정면으로 맞선 링컨의 진정한 가치를 담고 싶었다”고 말할 것 같다.
자신의 소명을 경배하듯 수행하고, 천성적으로 느린 언행으로 어둡고 깊은 곳에서 길어올린 사유의 결과들을 드러내면서도 속도전에서 누수를 용납하지 않으며, 결국 목적지에 도달하는 링컨을 통해 투영된다.

인류 보편적 가치 돋을 새김

노예가 부의 근원이었던 사회, 기득권세력의 기반을 허무는 시도는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를 암살 위험에 초연 할 수 있을 때 가능했다.

링컨은 더구나, 과소비 벽이 있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틈만나면 자신의 불행만을 강조하며 떼쓰듯 매달리는 부인과 자존적 가치를 강조하며 부모의 뜻을 거스르는 아들 사이에서 고뇌하는 가장이다.

그는 슬픔 조차 드러내지 못하는 고독한 한 남자였다. 안팎의 중압감을 감내하며 물러서지 말아야 할 당위에 자신의 욕망을 일치시키는데 집중하는 링컨을 카메라는 집요하게 추적한다.
금방이라도 피를 토할 것 같은 링컨의 매 순간이 느릿느릿 돋을 새김된다. (그렇다. 독자들이 이미 느꼈겠지만 절박하지 않는 사람이 이 영화를 본다면 금새 흥미를 잃어버릴 것이다)

워싱턴에 있는 한 극장에서 링컨을 관통한 총알이 그가 선택한 ‘자유’를 죽이지 못한 이유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링컨의 주검을 그가 걸어 온 숙명의 길 한 켠 처럼 비출 뿐이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위선자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제도를 옹호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자유를 사랑한다고 자찬함으로써 말입니다”

1854년 캔자스주와 네브래스카주에서 노예제 허용법이 제정되게 한 스티븐 더글러스 상원의원을 질타하는 1858년 링컨의 육성이다.

우리는 링컨이 필요하다. ‘평등’이라는 천부의 가치를 세워 진영논리와 특권, 독점 경제체제를 허물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이룩 할 그 링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