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민주통합당 대표를 선출하는 5·4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김한길은 “대탕평으로 하나된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자신이 대표가 되면 하고 싶은 일을 밝혔다.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다. 민주통합당은 어차피 쪼개질 정당이다. 친노·비노·주류·비주류로 갈리는 계파주의, 기회주의, 보신주의, 패권주의의 혼재가 지금 민주당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이라는 진보의 가치를 망각하고 오직 당권에만 올인하는 자들을 하나로 아우르겠다니, 김한길의 꿈은 그저 야무질 뿐이다.

일각에서 반성과 성찰, 개혁과 쇄신들을 외치지만 실천할 주체가 없고, 정당 지지도 20%에 자족하며 지분 나눠먹기에 급급한 나머지 대선에 패한 이후 3개월 동안 ‘성찰’은 거당적 의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김한길 그 자신부터 성찰 없는 오류 투성이다.

그는 “소모적인 이념논쟁 보다는 서민과 중산층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내는 것이 민주당의 최우선 과제다. 경제민주화와 복지사회로 가기 위한 구체적 정책들을 실천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념을 바로세우지 못한 정당이 서민과 중산층의 먹고사는 문제의 방향성을 제시 할 수 있다니 모순이 아닌가.

김한길은 또, 민주통합당의 당권은 당원에게 있고, 당원의 뜻이 당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정당이라고 했는데, 현실에서 당권은 당 대표에게 있고 당원은 당의 정강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 일 뿐이다. 과거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나아가 민주통합당의 당원들은 대부분 당의 정강정책 보다는 지역적 지분을 신뢰한다. 오랜 세월 동안 당이 고착화시켜 온 것이다.

더이상 희망이 없는 몰골로 야권의 재구성에 민주통합당이 중심에 서겠다니 망발이다. 더구나“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이기지 못한다면 민주당은 미래가 없는 정치세력으로 규정당할 지도 모른다”는 그의 우려는 너무나 안일하다.

민주통합당은 이미 두번의 대의민주주의와 두번의 직접민주주의 선거에서 연거푸 패했다. 10년 동안 보수에게 서민과 중산층의 운명을 맡긴 것이다.

제1 야당의 깃발과 진보의 깃발이 내려진지 오래다. 그런데 누구하나 책임지는 자가 없다.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다.  

과거 청산도 없이 어떻게 불신과 반목을 마감하고 무슨 수로 혁신하겠다는 것인가.

같은날 발표한 이용섭, 신계륜, 강기정 등 민주통합당 대표 후보들의 정견이 김한길의 생각을 뛰어넘을 리 없으니, 그들의 말을 되짚을 필요는 없겠다.

다만, 민주당 비주류의 좌장격인 김한길이나 범주류인 이용섭, 신계륜, 강기정 등 모두가 절체절명의 위기의식, 그리고 혁신과 통합이 절박하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낙망한다. 

그렇다면 왜 성찰을 하지 않는가.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면 패인을 분석해야 한다. 외부 압박의 강도가 느슨해졌더라도 스스로를 위해서 필요하다.

과거에서 배워야 성장 할 수 있다. 이 경구는 보수진영에서는 지표가 되고있지만 진보진영에선 그저 존속을 위해 동원하는 언어적 수사에 불과할 뿐인 현실이다.

지배당하는 99%와 지배하는 1%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지점이다. 

경험에 대한 체계적인 학습이 없이는 막힌 현실을 돌파 할 지식으로 무장 할 수 없고 나침반 너머를 볼 수 있는 지혜도 얻지 못한다.

민주통합당에게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현실적인 균형감각이다. 시장경제 아래에서 진보진영의 관점에 부합하는 공정시장 구현은 불가능하다. 다만, 모두가 공감하는 공정시장을 이룩 할 수 있을 따름이다.  

복지체계의 판을 완전히 갈아 엎는다거나 시장을 전면적으로 통제하겠다는 발상이 현실 속에 두 발을 딛고 있는 정치 주체에서 나와서는 안되는 이유다. 그것은 단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한낱 속임수에 불과하다. 

임기응변에 동원되는 지극히 파편적인 지식으로 관성에 빌붙는 진보는 ‘고담준론’을 지닌 보수를 대적 할 수 없다.

진보가 어려운 것은 보수가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알맹이 없는 허세로 보수를 공격해서 현실적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한 진보의 미래는 없다.

민주통합당이 빛 좋은 개살구 같은 거대 담론에 사로잡혀 있는 한 99%는 영원히 1%의 제물이 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주의자가 되는 역설이 계속 될 것이다.

치열한 성찰 다음에는 보수를 알아야 한다. 그들의 노하우를 배워야 한다. 효과적인 대응 전략은 지피지기로 얻어지는 것이다.

보수는 현실이다

새누리당을 보라, 대선 주자가 정해지기 훨씬 이전부터 민심이반을 잡기 위해 기득권세력의 반발을 살 정도로 좌클릭을 거듭했다.

그들은 ‘보편적 복지’ 실현 같은 민주당의 정책노선이 균형감각을 상실한 비현실적 사고의 산물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새누리당의 저의는 박근혜 정부의 행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벌써부터 복지공약이나 경제민주화 혹은 검찰개혁 등속과는 동떨어진 행보에 국민들이 놀라고 있다.

경상남도는 지난 4일 진주의료원 휴업을 선언했지만 정부는 아무런 구제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경제구조개혁 논의가 대선과정에서 있기는 했던가 싶을 정도로 캄캄하다.
새누리당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민주통합당도 어차피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을 우린들 어쩔 수 있겠나. 국민들이 다 이해 한다”

민주통합당이 중요한 시기에 공황상태에 떨어진 직접적인 원인이다. 99%의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새누리당이 그나마 민주통합당의 미심쩍은 영역에 들어와 물타기한 결과다.

게다가 대선 직후 민주통합당 안과 밖에서 들끓었던 반성론도 관성적 낙관에 묻혀 흐지부지됐다.

지역할거주의 같은 퇴행적 정치 틀에 갖혀서 자기성찰도 없는 집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