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민주통합당 김한길, 최원식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이 철회됐다. 기독교계의 조직적이며 집요한 압박에 견지지 못한 정치적 결정이다.

이항대립의 패악에, 새 시대가 배태한 다양성과 융합의 질서가 사산된 것이다.

이 법안에는 성별·나이를 비롯한 정치적 입장, 성적 지향, 학력 등에 따른 차별의 피해를 구제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런데 기독교계는, ‘정치적 입장’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은 “주체사상 찬양법이다”, 성적 지향을 사회적으로 수용하고 제도적인 불이익을 배제하자는 의원은 “동성애를 찬양하는 사탄이다”면서 격렬한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종북·게이 의원으로 몰아세우는 문자와 전화 융단폭격에 법안을 발의한 두 의원은 무릎을 꿇었다.

허탈하다. 제1야당의 무책임과 무소신, 무원칙은 저 먼 광야의 끝에 있다. 평등과 인권의 가치를 정치적 협상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질타의 목소리가 저 정치집단에 닿을까.

덤불속에 고개를 박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꿩의 꼴이다. 그저 처분을 바라며 전전긍긍하는 그들에게서 기대 할 것은 없어 보인다.

우리의 정치가 개인으로부터 이렇게 멀리 격리된 지형은, 너무 오래 되어서 익숙한 남성중심의 사유체계다.

보수 기독교단체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고 확산시킬 수 있는 원동력은 현상을 인식자 중심 혹은 대립적으로 파악하는 이분법이다.

이분법 사유체계에서는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타자를 허용하지 않는다. 타자성은 단지 동일성의 틀 안에서 만들어지고, 우월한 것만이 자율적으로 기능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 나라는 보수 기독교의 나라다. 그들이 우월하고, 나머지는 열등하기 때문이다. 동일성을 요구하는 그들 앞에 다양성을 주장하는 자는 격퇴돼야 할 적일 뿐이다.

이분법은 약육강식의 질서다. 민주통합당은 먹히는 쪽이고 보수 기독교계는 먹는 쪽이니, 물러서는 법안 발의자들이 별다르게 부끄러워하지 않는 까닭이다.

국가, 공동체, 종교 등 정치적 행위자들의 갈등은 승자 아니면 패자가 되는 이분법 사고에서 비롯한다.

우리가 끌어안고 있는 낡고 찌든 과제들인 빈부 격차, 환경 파괴, 폭력, 인종 증오, 성차별, 근본주의 등에 따른 고통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다.

차별금지법안은 단순히 소수자의 불이익을 막자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인 소통과 공감을 통해 특정되지 않은 대다수의 소수 무리들에게 적극적으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제도화 하자는 것이다.

누구나 피해자이고, 피해자가 될 수 있는 폐쇄적인 사회 구조를 보다 보편적으로 바꾸자는 운동의 소산이다.

태어날 때 부터, 혹은 살다가 정신적 외상을 입은, 또는 지속적으로 상처를 입으면서 감당해야 하는 주체들은 너무나 많다.

여성이거나 장애인이거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누구이거나, 신념에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람이거나, 그들을 보려면 눈을 감아야 한다. 그들이 소수가 아니라 다수이며 자신도 거기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약자와 패자는 감수해야 할 뿐인 체계 속에서는 피해자의 말을 듣는 귀가 지극히 제한된다. 상처받은 일을 깊이 들어주고 공감해 줄 사람이 극소수 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항대립의 구조는 상처입은 여자이거나 남자로 하여금 고통을 겪은 자신과 고통를 말하려는 자기 사이에서 분열을 일으키게 한다.

상대방 또는 이분법적 기준에 맞추기 위해 경험을 수정하거나 일부를 지우면서 위안보다 더 많은 상처를 받게되는 구조다.

개인적 고통을 말하는 것이 이렇게 어렵고 무거우며, 자신과 누군가의 상처와 관련하여 개입하고 헌신하는 것이라고 가리키는, 피투성이가 될 각오를 요구하는 세상을 바꾸자는 게 차별금지법안 제정 운동이다.  

약자와 패자의 언어가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약자와 패자라는 이유만으로도 비난받으며, 약자와 패자에 관한 지식이 기존 사회체계의 구동에 이롭지 않다고 짓누르는 선민사상에 대한 저항이 차별금지법안이다.

우리는 모두가 약자이거나 패자이기에 알아야만 한다. 껄끄럽고 따가운 공동체에 대한 분노와 불통의 절망과 함께 뒹굴어야 한다. 일어서서 똑바로 길을 따라 걸어가기 위해,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차별금지법안은 우리들 부끄러운 삶의 성찰이다.      

석학 도너 헤러웨이는 “과학 지식은 목적에 관한 것”이라며, “특정한 것을 안다는 사실은, 설명 가능성의 의미를 변화시킨다”고 했다. 목적은 언제나 해석적인, 우발적인, 예약된, 속기 쉬운 참여이고, 증언하는 것이고, 서서 공공연하게 자신이 본 것과 기술한 것을 해명하는 것이며, 자신이 본 것과 기술한 것에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안은 삶의 근원에 던진 질문에서 길어 올린 해답이다. 기존의 낡은 지배 규범, 상식에 도전하는 모든 타자성의 언어가 응축된 키워드다.

약자와 패자는 강자와 승자를 설명해주는 역설을 지닌다. 강자의 경험과 기존의 언어가 일치 하듯이 약자의 삶과 기존의 언어가 일치 할 때 강자는 비로서 자신을 알 수 있게 된다.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는 힘 ‘다양성’

다양성은 혼란 속에 질서를 찾아 조화를 이루지만, 동일성은 조화를 이루고 있지만 모호하다.

인권이 바로 선 세상은 시끄럽고 불안해 보이지만 타자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힘을 지녀서 오히려 안전하며, 새로운 상상력과 창조적 지성을 분출한다.

동일성의 틀은 평온하고 안정된 듯 보이지만 반목과 갈등, 배신이 난무하며 극심한 배타성 때문에 지극히 불안정한 세상을 연출한다.     

그런 의미에서 2007년 10월 차별금지법을 입법 예고한 참여정부는 전체를 ‘부분의 집합’으로 명확하게 인식한 정부였다.

눈으로만 보는 세계는 인간 세상의 일부이며, 감촉으로 아는 사람과 읽지 않고도 경험으로 아는 사람 또는 소리나 냄새로 아는 사람들이 모두 그것들을 설명할 수 있어야 완전한 세상이 된다는 것을 아는 정부였다.

황혼과 여명의 아름다움을 알고, 그런 경계에 산다는 것이 혼란이 아니라 기존의 대립된 시각에서 만날 수 없는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상상력과 가능성을 획득하는 길이라는 걸 알았던 정부였다.

아니, 사회적 약자의 문제는 소수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 그것을 모르는 건 입법을 번번이 좌절시켜 온 오직 보수 기독교단체들 뿐이다.

그들은 규격화 된 사랑, 혹은 배타적인 사랑을, 지속가능하며 인류를 구원하는 원동력이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