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남(미국)북간 러시안 룰렛이 지속되고 있다. 회전식 연발 권총의 탄창 어디에선가 웅크리고 있을 총알은 이제 튕겨 나올때도 됐다.

서로 번갈아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동안 남북 분단 50년 민족의 염원이 깃든 개성공단은 완전히 폐쇄되기에 이르렀다.

공이가 뇌관을 때리는 순간 차갑던 총알은 불덩이가 되어 음속으로 관통할 것이다. 7천만 민족을 담보로 분별없이 날뛰던 광기는 산산히 흩어질 것이다.

국민들은 방아쇠를 당길 때 마다 극한 긴장에 사로잡힌다. 어느 한 쪽이 죽어야 끝나는 게임의 중압감을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다.

하지만 방아쇠를 당기는 그들은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살자고 하는 짓이 죽음의 게임이다. 벼랑 끝 생존전략과 기고만장한 만용의 교착에서는 추호의 떼어 낼 틈을 발견하지 못한다.

지나치게 과장된 북한 내부는 사실 피폐한 몰골이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남한과 미국의 원조가 점차 줄어 체제유지가 힘든 지경에 이르자 쏘아 올린 미사일이었다.

속으로는 울부짖으며 겉으로는 으름장을 놓는 북한이 항용해 온 협상 시도였다. 미국과 남한이 북한과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아 대화를 시작하면 되는 일이었다. 당초의 해법은 지극히 단순했다.

미국이 협상을 거부하더라도, 남한이 현실적인 지원을 약속하면 됐다. 그것은 부담스러운 수준을 의미하지 않는다. 6년 전의 인도적 지원을 복원하면 됐다.       

인도적 지원은 동독과 서독의 통일방식에서 배운 것이다. 통일 전 서독은 통일을 이루기까지 14년 동안 9조2,400억원을 동독에 지원했다. 동·서독간 물자·노동력을 포함한 무역 규모도 101조9,690억원에 달했다.

서독의 변함없는 지원과 협력은 동독인들의 신뢰를 이끌어냈고 동독 의회는 스스로 서독으로의 연방 가입을 결정했다.

남한의 북한에 대한 이른바 평화로 가는 투자는 김영삼 정부 때 2,118억원으로 시작해 김대중 정부 6,153억원, 노무현 정부 1조4,226억원으로 크게 늘었다가 이명박 정부 986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모두 2조1,479억원이 북한에 지원됐다. 이것은 2012년 한 해 동안 한국이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다른 나라에 지원한 1조9천억원의 9분의 1에 불과하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햇볕정책으로 11년 동안 금강산과 개성에 204만6695명의 남한 사람들이 방문했다. 개성공단에서는 8년 동안 80만명이 일했고, 차량 50만대가 2조1,736억원어치의 생산물을 실어날랐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북한 무역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8.0%에 이르렀다. 대북 무역액 1위인 중국(41.6%)에 근접했고, 2008년에는 중국을 제치고 제1의 대북 무역국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대북 지원은 14분의 1로 줄었다. 2008~2011년 경제협력 중단으로 한국의 경제적 손실은 9조973억원에 달했다.

그런데, 집권 두 달째에 접어든 박근혜 정부는 얼토당토 않는 오답을 썼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10년 동안 공들인 개성공단마저 버렸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는, 유엔의 대북 제재와 최신예 전략무기를 동원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주도한 미국의 등 뒤에서 북한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 북한을 의도적으로 자극하는 미국의 행동은 보지 않았다. 미국이 이라크 침략 전의 구실만들기와 흡사했는데 거기에 장단을 맞췄다.
미군이 최첨단 무기들을 쏟아 부은 이라크전으로 최소 12만명에서 최대 100만명이 사망했다. 이 중 무고한 민간인이 90%에 이르렀다.

미국이 실질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목적이 이라크의 자유가 아닌 ‘무기 시험’, ‘재고 무기 소비’, 이라크 원유 확보, 중동지역에서 친미 블록 구축, 미국의 경기 회복을 위한 돌파구 마련 등에 있다고 보는 각국의 비난이 잇따랐었다.

전쟁이후 이라크에는 살 곳을 잃고 떠도는 난민이 168만명에 이르고, 5백만명의 고아가 발생했으며, 6백만명이 빈민층으로 전락했다. 이라크의 2013년 현재 실업율은 50%에 육박하고, 이라크 재건에 필요한 최소 비용은 186조에 달한다.

한반도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들며 납뛰는 거인의 옷자락에 대롱대롱 매달려 정신줄을 놓은 소인의 꼴이 우리 정부였다. 국지전이라도 일어나길 바라듯 북한과 주고 받은 말폭탄들은 그런 정제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러는 사이 미국은 슬그머니 치고 빠졌다. 박근혜 정부는 북쪽을 향해 두차례 대화를 제의했다가 북이 거부 입장을 내자 느닷없이 개성공단 잔류인원 전원 귀환을 선언했다.

만용을 버리고 신뢰의 징표를 보여야

전략적 구상의 부재와 조급성, 소통 부재 등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드러난 대목이다. 개성공단의 의미는 단순히 경협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걸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내지른 초강수다.

북한은 이미 개성공단과 전반적인 한반도 위기 상황이 연동돼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당장 개성공단 폐쇄로 정부와 기업의 현지 시설 투자비용, 원자재·완제품 손실, 협력업체 연쇄 피해 등을 감안하면 최소 6조원의 직접피해가 추산된다.  

박근혜 정부의 이런 미숙과 만용은 북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비관적 강경론자들 속에서 싹텄다. 이런 정부의 해법이란, 제재를 통해 북이 스스로 붕괴하길 기다리거나 전쟁을 치르는 수 밖에 없다.

북이 핵무장을 공고히 하거나 전쟁이 났을 대 최대 피해자는 남한이다.

어떤 이유로든지 남북관계 개선의 당위를 부정하지 못한다. 특히 한반도의 선순환 구조 구축의 전진기지는 여전히 개성공단이다.

개성공단은 통일 여정에 큰 디딤돌을 놓는 화해, 협력 사업이다. 분쟁의 가장 좋은 해법은 여유있고 힘있는 자가 먼저 신뢰의 징표를 보여주는 것이다.  

다행히 북도 개성공단의 폐쇄를 우려하는 입장이 나오고 있다. 차제에 햇볕정책의 온전한 복원이 관건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