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지역이 중앙보다 세계적이다’

이 보편적이지 않은 명제는 최근 호남에서 발견됐다. 중앙은 무역 개방을 주도하고 지방은 ‘폐쇄 관철’을 생존으로 여기는, 평행선 위에서 나타난 신기루 같은 장면이다.
민주당 5.4전당대회는 61.7%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비주류’ 김한길을 당 대표로 선출했다. 계파갈등을 해소하고 당을 혁신 할 적임자로 그가 지목된 것이다.     

당원들은 특정한 계파없이 정치활동을 해 온 김한길에게 그가 원하는 명찰을 달 기회를 줬다. 그는 대표 경선에 나서면서 “친노·비노, 주류·비주류라고 쓰인 명찰을 쓰레기 통에 던지고 민주당 명찰을 달겠다”고 했었다. 당원들이 그의 약속에 책임을 지우고 권한을 부여했다.

향후 2년 동안 김한길 체제의 도가니에서는 통합에 반하는 모든 것들이 녹아서 끓을 것이다. 그에게 부여된 조정력과 통합의 산모역은 자못 엄중하다.

민주당 당원들은 전당대회 이전부터 비효율적이고 무기력한 당의 해체 후 재구성을 꿈꿨다. 좌충우돌 대립과 갈등 조장으로 내부 동력을 소진시켜 온 불화세력은 수면 위에서 걷어 내야 할 녹조였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가치관을 경시하고 배척하며 민주호를 진두지휘해 암초 해역으로 내몰았다. 파선되어 침몰이 임박했는데도 배를 구할 방책을 내지 못했고 책임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방향타 앞에서 버텼다. 구성원들은 사분오열됐고 우왕좌왕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들의 퇴장을 바라는 민심은 지진해일이 되어 확실하고도 위협적으로 민주호를 범람했다.

지각변동은 청맹과니들도 알았다. 그 중 친노그룹의 소위 중추들, 유시민·명계남·문성근 등은 이번 전당대회 전에 당을 떠났다.

거부 할 수 없는 ‘통합’의 조류를 인정하지 않고 당을 버린 것이다. 누구보다도 백의종군해야 할 그들이었다. 지난 2002년 호남사람들은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새 정치를 세우기 위해 읍참마속을 결행했다. 영남 사람 노무현에게 몰표를 줬고, 참여정부를 창출했다.     

‘친노’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대정신의 산물이었다. 민주당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 국토에서 고른 지지기반을 구축하라”는 호남사람들의 지상명령을 수행해야 할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호남을 홀대했고 역차별했으며, 주류 그룹이 되어 되레 우월주의와 배타성에 갖힌 패거리 집단이 됐다. 당을 장악했지만, 불통의 소수이기주의로는 당의 힘을 끌어내지 못했고, 대중의 외면을 초래했을 뿐이다.

더구나 그들은 이제, 지배세력으로 군림하지 못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는 뒷모습을 남기고 정치무대에서 내려갔다. 부채가 고스란히 남았으나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 태도다.

비주류 김한길을 지지하는 민주당 당원들의 민심은 김한길 대표 체제가 출범하기 전에 먼저 친노 그룹을 당의 상층부에서 축출해 김한길의 앞 길을 열었으나, 사랑하는 이에게 헌신하지 않는 친노의 오만과 독선을 목도하며 새삼 실어증에 걸린다.

그러나 호남은 여전히 꿈을 꾼다. 지역할거주의를 벗어나야 정치는 희망이 있다. 호남사람들은 그 길 위를 걸어가고 있다. 10년 전 대의를 위해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포기했고, 지난 4일 그것이 실착이 아닌 장고끝에 내린 결단이었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줬다.

당 대표 뿐만 아니라 최고위원 4명 모두 비호남 출신이다. 당의 중역들이 파벌간 밥그릇 싸움의 소용들이에 빠져있는 사이에도 호남사람들은 자기혁신을 거듭했다.

호남사람들의 거듭되는 ‘민주당 탈지역화’ 시도는 지역갈등을 해소하고 화합과 상생의 정치를 구현하려는 뜻에 머무르지 않는다.

국가간 경제와 문화의 장벽이 사라진 탈경계 시대, 상호 연동하는 사회, 개별적이면서 동시에 총체적인 질서, 그 안에서 정치는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이고, 대중은 모두를 연결한 그물망에서 그 정치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안으로 호남사람들은 총총히 걸어들어갔다.

돌아보니,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예산편성의 원칙을 깨거나 불균형 논란을 무릅쓰며 노골적으로 호남을 편애한 흔적이 딱히 없다

다만 ‘균형 배분’이라는 틀 안에서 당위가 있고 타당성을 확보한 사업들이 추진됐을 뿐이다. 국민의 정부에서 시작된 호남지역의 사업간접자본 투자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각예산 지원으로 지지부진한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을 잘 고르는 정당이 지속가능하다

오히려 MB정부에서 사업의 시급성을 인정해 박차를 가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국토 개발 뿐만 아니라 인재 등용도 구색을 갖출 수 밖에 없는 법이다. 어떤 정당이든 범 국민적 지지를 받아야 지속가능하기 때문이다.

투명한 시대, 정당이 표방하는 정강은 실천할 좋은 인물이 있을 때 유의미하다. 신념과 능력, 비전과 덕을 갖춘 사람이 곧 정당이며, 사람을 잘 고르는 것이 정당 정치다,

정당정치가 근본을 등지고 혼탁한 먼지 속에서 한계를 보일 때 호남의 유권자들은 10년 전과 지금 기본을 가리켰다.

지역을 위해 일할 사람이 아니라 원칙을 바로세우는, 행동하는 사람,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 지역과 국가 그리고 세계를 경영하는 사람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지방자치나 지방분권은 권력의 분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수도권 편중 현상의 반작용에서 비롯했다. 지방정치에는 ‘수도권규제 완화’같은 지방자치 본질을 훼손하는 중앙정부의 탈선에 저항할 책임이 강조된다.

호남사람들은 민주당을 더 넓은 세상으로 내보냈다. 더 많은 인재 풀에서 더 나은 사람을 골라 국토가 불균형하게 발전되는 것을 막아달라고 주문했다.

호남은 다가오는 미래다. 땅따먹기, 밥그릇 싸움에 매몰된 근본없는 정치의 종언을 선언하고,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새정치의 시작을 알렸다.

호남사람들을 보라, 세계가 보이지 않는가. 기득권에 기댄 눈으로 어떻게 그것을 볼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