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하늘을 보라. 까마귀가 날면 그 아래에는 적군이 있다” 난중일기에 담겨있는 이순신의 ‘눈’이다.

적군의 교란작전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가 보여주는 것을 보며 동시에 그 반대 쪽을 보라는 지침이다.

이는, 성동격서(聲東擊西, 소리는 동쪽에서 내고 공격은 서쪽으로 하라. 손자병법 36계 중 여섯번째 계책)를 당하는 쪽에서 보기 인데, 오늘 그 성동격서가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최근 국내 정치·사회에 개입한 국정원의 이른바 공작문건이 잇따라 폭로되는 와중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종편이 5.18을 왜곡하는 뉴스를 보도했다.

국정원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기획 문건이 논란의 중심에 선 시점이었다.

그리고 5.18 33주기, 채널에이와 티브이조선은 “광주 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투입됐다”는 익명의 탈북 난민 인터뷰를 방영했다.

가뜩이나, 보훈처가 ‘임을 향한 행진곡’ 제창을 불허하는 바람에 5.18 기념식이 반쪽짜리로 전락한 마당이었다.

죽은자와 죽은이를 가슴에 묻은 산자에 대한 진혼곡 제창을 막는 정부의 역사인식 부재에 가슴이 미어지는 5월단체들은 이날 행사에 불참했다.

그래서 광주시민들에게 ‘5월 영령들이 남긴 뜻 받들어 보다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이 그 희생과 아픔에 보답하는 길’이라는 박대통령의 이날 기념사는, 망월동 묘역에 만든 꽃을 그저 의례적으로 헌화하는 것에 불과했다.

불통에 터지는 분통을 견디며 질식하고 있는 그런 5월 광주를 구태 언론이 기습한 것이다. 신군부의 5.18 광주시민 학살을 북한군 게릴라 진압작wjs으로 암시하는 이 터무니없는 방송들은 무엇을 의도하는가.

우리는 저의를 알기 위해 동시에 어디를 봐야 하는가.

광주는 구태언론의 왜곡 보도와 극우 사이트의 5.18관련 망언들에 대해 법적대응을 천명하는 등 술렁이고 있다. 국내 양심세력들이 들불 처럼 ‘준엄한 응징의 대오’를 갖추고 있다. 대다수 언론의 눈이 그 쪽으로 쏠릴 수 밖에 없다.

그 바람에 국정원 문건 파동은 급격히 사그라드는 양상이다. 정부기관을 비롯한 새누리당, 민간단체, 학계, 언론 등을 총동원해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국정원 지휘의 정치공작은, 지금 한 낯 선 잠에 들었던 꿈만 같다.

만약 두 구태 언론이 의도한 기만적 프로파간다였다면, 적중하고 있는 형국이다. 시적으로나 심정적으로 지극히 예민한 광주를 정확히 노렸다.

33년 전 5.18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광주의 교수들이 말했듯이, 5월 광주 시민들과 지성인들은 신 군부가 투입한 공수특전단의 세계 유례없는 만행에 미쳤었다.

생명·자유·행복추구의 권리체계가 골격인 민주주의를 인간이 자각하고 스스로 실현하여 사람다움을 상실하지 않으려 한 인륜적 결단이었다.   

진정한 가치를 위한 온전한 헌신, 그 힘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해 준 새로운 문명이다.

수구세력은 5월의 절망 속에서 발아한 새 시대정신을 짓뭉게며 자신이 어떤 결과를 부르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순결한 의지를 능욕하고 폄훼하는 패륜에 분노하지 않는 것은 자포자기다.

광주가 소란스러워지면 수구세력은 더 큰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강경일변도로 악화된 남북 위기나, 박근혜 대통령의 통상임금 적용 재검토 발언도 광주문제의 확대 재생산에 희석될 것이다.

광주는 고립 될 것인가. 생각할수록 국정원과 보수언론, 딴전 피우는 정부가 서로 꼬리를 물고 눈에 걸린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이런 중차대한 문제에 대한 침묵은 불길하다. 당장에는 추측일 뿐인 ‘성동격서’가 사실이라는 역설로 다가오는 것 같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박원순을 '범좌파벨트 허브'로 지목하고, 서울시의 모든 정책을 종북·좌파 정책으로 매도했다. 박원순의 정치적 영향력를 제압하는데에 정부와 여당, 보수단체, 학계, 언론 등의 총 동원을 지시했다.

정부 관련 부처와 서울시, 서울시와 극우단체 사에에 발생한 몇 가지 사안이 국정원 기획의 현실화를 드러내고 있다. 국정원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했으니, 스스로에게 사형선고를 언도한 꼴이다. 또 여기에 가담한 정부는 공동정범이며 민간인들은 그 종범이다.

1천만 시민의 대표를 국가안보의 적으로 규정한 발상의 근원이 어디인지 줄기를 들어 올려 역추적해 가야 할 필요가 대두됐다.

국정원의 국헌 문란 침묵은 ‘망조’

국헌 문란죄는 중범죄로 다스려야 한다.

국정원이 언제부터 단체장의 시정운영을 독선적인지 합리적인지를 사찰했던가. 또 자치단체의 수장이 야세 확산의 기반을 제공하는지를 판단하고 여기에 대응할 책무를 누가 국정원에 부여했던가.

스스로 직무를 남용하여 월권한 사실을 전제로, 헌법기관인 감사원과 서울시 의원들로 하여금 서울시 관련예산 집행실태를 철저히 점검해 야세 확산을 위축시키도록 지휘할 권한을 누구로부터 받았는가.

도대체 국정원이 사정기관의 서울시에 대한 사정활동 강화와 정부의 예산지원 방해를 요구하고, 각종 단체, 재계, 언론과 논객, 범보수진영으로 하여금 박원순 시장에 대한 비난 여론 조성하도록 기획할 권한을 누가 주었는가.

또, 최근에는 국정원의 ‘반값 등록금 심리전’ 기획 문건이 폭로됐다. 이제는 '좌파의 등록금 주장 허구성 전파로 파상공세 차단'이라는 따위의 업무가 마치 국정원의 것이었던 것으로 착각 될 지경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여당 대표시절인 지난 2005년 7월 국정원의 비밀 도청 사건이 터지자 ‘진상규명을 위해 특검을 열어야 한다’고 정부측에 요구했었다.

박 대통령이 침묵하는 사이, 지난 대선에서 조직적으로 댓글 알바를 통해 박 후보를 선거에서 유리하게 한 국정원은 사직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고, 반값 등록금 심리전 문건의 작성자들은 현재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국정원 감찰실에서 각각 근무하고 있다.

이것은 망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