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요즘 정당공천제 폐지 문제가 정가와 학계의 주요 담론으로 떠올랐다. 지난 대선에서 여야 후보 모두 같은 공약을 들고 나왔던 게 발화점이다.

공천제 논의가 정해진 길을 갈 경우 폐지와 그에 따른 부작용 보완장치, 새 제도의 안착을 위한 정당의 체질개선 같은 진전된 지도가 그려질 것이다.

그러나 그 실행 주체인 대다수 현역 국회의원들은 이런 조류를 달가워하지 않는 양태다. 대통령 선거기간 중에는 함께 행진하던 그들이 어느새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 대열에서 이탈해 버린 것이다.

쉬운 정치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다. 패배주의나 소외의식 같은 폐쇄적인 정서에 기생하며,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들을 상시 선거조직으로 삼겠다는 심산이다.

그들의 정치란 패거리를 이끌고 길거리를 누비며, 주민들의 패배주의만 부추기면 됐다. 주민들의 박탈감이 심화될 수록 지역정당의 입지는 공고해졌다.

누구든지 받아들이기 싫겠지만, 지역할거주의는 지역발전을 가로막았다. 현역 국회의원들이 잘 알고 있다.

그것을 모른다면 그 이유만으로도 사퇴 대상이다.

부정적인 요인으로 결속된 주민들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투표권을 행사했다. 이 '묻지마' 투표는 지역정당 밖에 있는 정치신인들을 차단하는 기제였다.

그들의 정치적 서열, 그들의 내부 거래, 그들의 우두머리에 대한 충성도가 사실상 지방선거의 전부였다. 공천만 받으면 모든 것을 보상받을 수 있었다.

특정 정당의 독점 지배 체제 아래서 정치인들은 주민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체제는 정상배와 모리배들을 양산하고, 정치인들은 그들을 통해 사익을 꾀하며 공생했다.

비리가 만연하고, 그래서 비리를 대하는 유연성이 점차 커져갔다. 관용과 평화의 외피를 쓴 검은거래들은 지역 주민들의 의식수준을 시나브로 퇴행시켜왔다.

유권자를 경시하는 정치는 패륜 정치다. 정당 공천제의 시작은 '정당에 공동책임 지우기'였으나, 구조적 역학에 의해 '정당에 전횡권 부여하기'로 변질된 것이다.

정당공천제 폐지가 중요한 정치개혁의 출발점인 이유다. 현재로선 정당이라는 미명은 사익집단을 가르킬 뿐이니, 지금 대두되는 정당공천제 폐지 논의는 '정치' 재건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건강한 군소정당들의 진입 장벽을 낮춰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신인들의 개체수를 늘려 나갈 기회의 포착이다.

비민주적 정당 운영과 공천 비리, 불공정한 선거 경쟁, 지방정치 예속화의 토양을 갈아엎고, 기회가 균등한 정치를 파종 할 계기 마련이다.

그동안 이런 정치개혁과 인물 본위 선거의 필요성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집단지성을 깨우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요즘 다른 징후가 속속 확인되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존 정당정치의 지각변동이 가속화 될 듯 하다.

근래, 도내 활자매체들이 연이어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도민들의 민주당 지지율이 크게 하락하고 현역 기초단체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의견이 두드러지는 등 지역 지배정당의 독점구조에 대한 반발기류가 분출하고 있다.

가장 최근 발표된 전북일보의 설문조사 결과에선,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공천제 폐지에 대한 찬반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64%가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대로 공천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17.9%에 불과했다. 오차범위를 감안하더라도, 단 한번도 호남 독식을 의심하지 않았던 민주당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결과다.

이런 지배정당에 대한 민심이반의 진원지는 '정당 무용론'이다. 안철수는 그 바람을 탔다. 여론조사에서는 45.4%가 안철수 신당을 지지했다. 그 바람에 민주당 지지율은 34.4%로 급전직하했다. 기존 민주당 지지자 34%의 마음이 돌아선 것이다.

'안철수'는 정치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마음이 아로새겨진 이름이다. 그 돌풍은 이미 규모를 가늠 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정당공천제 폐지가 범 국민적 지표로 떠 오를 날이 머지 않았다. 현역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따라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다.

나아가 정당공천제 폐지가 정치개혁의 동력으로 작동하도록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제도의 취지가 빛날 때 정치인도 그 위에서 함께 빛난다.   

지방정치는 생활정치의 틀

과거 기초의회선거에서 공천제 폐지를 해봤지만 사실상 정당 색깔·경력을 쓰는 것까지 막지 못했다. 말로는 공천제 폐지인데 사실상 정당과 색깔을 내세우면서 선거를 치러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제도로 전락했었다.

한 발 앞으로 나아갔으나 정치인들이 제도를 악용하면서 더 많은 부작용이 일어나는 바람에 정당공천제를 부활시켰고, 이 전보다 오히려 두 발짝 더 퇴보한 경험을 우리는 안고 있다. 폐지 못지 않게 새로운 제도의 안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여야 양당은 지난 대선을 관통하면서 가까스로 시대적 조류를 읽어냈으나, 내부의 팽배한 찬반 논란에 방향성을 잃어버린 양태다. 제자리에 멈춘 틈을 노리고 여성계가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가 하면, 현역 여성의원들이 강력 반발하며 정당공천제 폐지 국면을 흔들고 있다.

여성의원들이 이런 준동은 공천제가 이행해 온 여성 할당제다. 그러나 이는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들이 수행해야 할 생활정치를 가로막을 하등의 이유가 못된다.

지방자치가 시행된지 올해로 22년이 됐지만, 지역주민의 일상생활과 직결되는 문제들을 중앙정부의 통제없이 주민의 자율에 의해 결정하기에는 아직 결핍이 많다.

재원의 예속에 의한 폐단은 차치하고라도, 정당공천제를 폐지하지 않는 한 지자체의 정치 조직이 중앙정치의 하부조직에서 벗어나기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