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에게 국정원은 참담한 자화상이다. 금지된 사랑. 일방의 짝사랑이 아니라 서로가 통섭한 사랑이었다면 공멸의 수순이 예정된 운명. 똑바로 바라 보거나 무어라 말하기 힘든 실체다.

지난 18대 대선 과정에서 여론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선거에 개입한 국정원은 우여곡절 끝에 법의 심판대 앞에 설 예정이지만, 최근 박 대통령의 입은 얼어붙었다.

국정원 심리정보국은 지난 18대 대선기간 중에 정치관련 홈페이지를 통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면서 문재인 후보를 조직적이고도 무차별적으로 비방하는 댓글을 게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가기관인 공직선거를 조장한 이 사건은 예측 불가의 폭발력을 지녔다. 법원이 유죄를 확정할 경우, 현직 대통령의 정통성 논란 부터 촉발시킬 것이다.

경찰과 국정원이 초동단계에서부터 진실을 덮는데 급급했던 양태는 그 파괴력을 예측한 배후의 작용에 기대야만 이해된다.

경찰과 국정원의 사건 축소와 은폐 기도는 마치 소금을 뒤집어 쓴 미꾸라지들의 몸부림에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런 행동대원들의 희생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있던 박 후보에게 탈출구를 만들어줬고, 불리해진 정국의 판세를 뒤집을 기회를 안겨줬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지 3일 째 되는 날 밤 11시에 서둘러 '혐의사실 부재'를 발표하자, 박 후보는 즉각 TV 토론회에서 민간한 용어들을 끌어들여 역공을 펼쳤다.

"국정원 여직원이 댓글을 달았는지 증거 없는 걸로 나왔다. 성폭행범이나 쓰는 수법으로 (김씨의 댓글 작업실에) 2박 3일 감금하고.. 인권침해 하닌가.. 그런데 사과도 안했다"

경찰의 수사발표는 국민이 믿어야 할 진실이었고, 그에 토대한 박 후보의 짐짓 민주주의적 어법은 국민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박 후보의 말이 '수사 개입'이라는 문 후보의 변호사 다운 대응은 지나치게 건조했다.

경찰은 김씨의 하드디스크에서 40개의 아이디와 닉네임을 발견해 놓고도 '구글링' 검색 정도면 간단히 해결되는 아이디 추적작업을 해태 한 채 노골적으로 수사 속도를 늦추면서 대선 기간인 두달을 허송해버렸다.

지난 12월 말에는 김씨와 공모한 민간인 이씨가 김씨로부터 제공받은 아이디가 포함된 다수의 아이디로 야당을 비방하고 여권을 옹호하는 160건의 글과 2,000건의 찬반 표시를 해 온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고시원에 기거하던 이씨는 닷새 뒤에 잠적한다.

국정원은 사건이 실체가 점차 드러나자 "인터넷 상의 대북심리전에 대응하기 위한 고유 업무"라고 사안을 호도하고, 경찰은 갖가지 핑개를 대며 잠적한 용의자 이씨를 찾지 않았으며, 참고인이 제출한 단서들을 묵살해버렸다.

하지만 국정원의 주장은, 한겨례가 김씨 ID 가운데 11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를 보도하면서 기반을 잃게 된다. 김씨가 대선을 앞두고 야당 후보를 비판하는 글을 포함해 정치편향적인 글을 올렸다는 분석결과였다. 

경찰은 그제서야 참고인이 제출한 단서를 밝혀 김씨가 인터넷 사이트에 정치와 관련된 글을 다수 올린 사실이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경찰 수뇌부는 주저없이 이런 진전되는 수사 상황에 제동을 건다.

서울경찰청장은 사건을 담당해 온 권은희 수사과장을 송파서로 전보발령했는데, 그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소신과 원칙을 내세우며 수사발표 시기와 발표내용을 놓고 경찰 윗선과 잦은 마찰을 빚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경찰은 뒤늦게 김씨에 대한 출국금지조치를 발표하고, 사건의 핵심인물인 잠적한 이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바꾸고 검거에 나서면서도 여전히 이씨에 대한 출국금지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김용판 경찰청장은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사실을 축소ㆍ왜곡하고 증거 인멸을 지시하거나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고발당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의지대로 그는 제대로 처벌을 받을 것인가.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의혹사건 수사 과정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특히, 서울경찰청이 김씨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분석 결과를 축소해 허위 보고서를 작성한 정황을 검찰이 포착하면서 그들의 진실 은폐행태는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나아가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흔들면서까지 국정원에 대한 수사 강도를 낮은 수위로 조절하면서, 국민들은 국정원 수사를 한사코 장악하려는 배후가 법무부장관의 윗선에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국정원의 정치개입 은폐

채동욱 검찰총장은 사건의 불법지휘자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었으나,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제동을 걸었고, 중립성과 공정성의 원칙을 내세우던 검찰총장은 일주일만에 슬그머니 물러서서 원세훈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번 사건은 과잉의 산물이다. 국정원이 대북심리전을 위해 팀을 확대 개편하면서 70명씩이나 배치한 것 부터 그랬다. 전시도 아닌 평화를 유지해야 할 시기에 할 일 없는 직원들이 넘쳐났던 탓이다.

실정 투성이에 인권유린으로 점철된 이명박 정부의 과도한 불안감, 국정원 불법선거 개입에 수혜를 입은 박 대통령이 정통성 시비에 휘말리면 나라가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게 될 것이라는 그들의 극우적 위기감이 합작한 결과다.

이 사건은지금까지 우리가 세운 존재 가치들을 완전히 초토화했다. 우리의 체제는 물론이고, 공정한 사회와 실질적인 의미의 국가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무정부 상태를 전신으로 체감하는 국민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줄 특단의 조처들이 필요하다.

당장 박 대통령이 행동해야 한다. 국정원 직원 K씨의 불법행위 현장을 보존하려는 행위가 '성폭행'이거나 '인권침해' 또는 '국기문란'이라면, 국정원과 경찰의 행위는 무엇인지 부터 말해야 한다. 

박 대통령 스스로 재평가를 받는다는 자세로, 국가기관의 지표와 무너진 국체, 사법질서를 재건할 특단의 조처들을 결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