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정치는 오늘을 더 나은 내일로 이끄는 것이다. 이해 관계는 서로 충돌할 때 대개 갈등과 폭력을 낳는데, 권력은 그것을 조정하고 보편적 방향성을 제시하는 힘이다. 정치가 권력을 필요로 하는 까닭이다.

이같은 정치의 명제는 현실의 나침반이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배 위에서는 무용하다. 선장이 고립된 배를 탈출시키지 못하고 풍랑에 휩쓸려도 손을 쓰지 못한다면 그에게 주어진 권한이 무슨 소용인가.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자가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 공감을 얻지 못하는 자신과 몇몇의 이상주의는 관점이 다른 사람들을 배 밖으로 밀어내는 결과를 초래한다.

가뜩이나, 이명박 정부를 겪은 사람들은 생존 문제로 피로도가 높았지만 또다시 그 바통을 넘겨받은 박근혜를 선택했다. 민주당은 당장 밥이 필요한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지 못한 것이다.

민주당이 대안 정당이 될 수 없었던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미숙'이고, 또 하나는 '타협'이었다. 거대한 경제사조에 맞서기에는 지나치게 왜소했던 민주당의 이상주의는 국민들에게 치명적인 독소였다.

서민과 중산층들은 민주당이 표방한 진보적 가치에 명운을 걸고 그 경제정책에 순응했으나 한꺼번에 사지로 떨어져 절망했다

그에 앞서 민주당은 불운한 정당이다. 건국이래 최초로 정권을 창출, 1998년 2월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3개월 전인 1997년 11월 21일 김영삼 정부에서 IMF구제금융을 요청한 바람에 5년내내 사실상 경제주권을 상실한 식물 정부였다.

건국이래 산업화시대 이후 제 2의 격변기 IMF시대는 한국 사회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 바람에 김대중 정부는 진보적 가치를 경제정책에 반영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김대중의 경제 개혁 구상은 현실에 다가서지 못한 채 사장되고 말았다.

세계 11위 경제대국이 하루 아침에 국제 거지로 전락한 직접적인 원인은, OECD에 가입 이후의 갑작스러운 '경제개방' 정책 드라이브에 있었다.

거의 30년 넘게 관치금융으로 자라 온 대기업들은 별안간 개방된 약육강식의 금융시장에 던져졌고, 당시 보편적으로 500%~1000%가 넘는 부채비율을 안고 있던 기업들은 뿌리째 뽑혀 나가떨어졌다.     

1997년 1월 재계 14위 한보그룹 부도는 그 신호탄이었다. 그해 3월부터 IMF에 경제주권을 이양하는 11월까지 삼미그룹, 해태제과 같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아려오는 재계 20위권 내 굴지의 기업들이 잇따라 도산했다.

김대중 정부는 초기부터 한국 경제정책과 통화정책 사령부를 점령한 IMF 주둔군 치하에 떨어졌다. 성장률과 물가, 금리, 재정 목표치를 잡는 것에서부터 집행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감독을 받았다.

IMF는 또 기업들의 빅딜과 고강도 구조개혁에 박차를 가했고, IMF자금지원 중단을 무기로 부실기업 처리에 정부가 개입하거나 은행들의 특혜성 금리 지원을 못하도록 압박을 가했다.  

그 서슬에 IMF가 개입한지 한달 만에 한라그룹 등 대기업들이 연쇄부도를 냈고, 다음 해 1월에는 하루 평균 100개의 중소기업들이 도산했으며, 5개월 동안 10여개의 재벌 기업들이 사라졌다.

김대중 정부 임기 말인 2001년 8월 23일 IMF에서 빌린 돈 전액을 상환하기까지, 만신창이었던 이 나라 경제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 몬 대신 시장에서 괄목할만한 경쟁력을 확보했다.

미국식 무한경쟁시장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은 신자유주의시장체제에 적합하게 진화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이렇게 정치적으로 정지된 5년과 광속으로 탈바꿈한 자유시장을 동시에 대면해야 했다.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주류경제학이나 시장경제질서의 불안정성 또는 그 모순을 주장하는 비주류경제학 모두 무력감에 빠진 채 정체된 5년을 보냈고, 자유시장의 역동성은 국가의 통제권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특히, 외환위기의 원인제공자인 재벌들은 구제금융의 도움을 받으며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고 다른 차원으로 도약한 뒤, 고용없는 성장과 실질임금 인하를 주도해 왔다.

비주류 관점에선 이 땅의 민주화는 요원

이런 현실은 서민과 중산층이 잘 사는 나라를 위한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의 착륙을 허용하지 않았다. 강행하는 댓가로 지불해야 할 혼란을 감당 할 수 없을 때, '분배 정의'는 이상주의적 발상일 뿐이었다.

균등한 기회와 노동을 척박한 땅에 유폐한 재벌경제구조를 해체하는 대신 '친 삼성'화 된 노무현 정부란, 급진 시장을 따라잡지 못하는 '미숙'과 IMF식 성장정책에 기댄 '타협'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계에서 안주하는 유목 집단이었다.

경제민주화는 처음부터 현실을 정면돌파 하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는 가치였다. 노무현 정부가 탈권위주의 시대를 열고 인권을 눈부시게 신장시켰지만, 이를 경제개혁에 접목시키지 못한 근원이다.

지금 우리사회에 흘러넘치는 민주주의란 주류경제학의 민주주의일 뿐, 비주류경제학의 입장에선 이 땅의 민주화는 요원하다. 그러나 안철수의 싱크탱크 최장집은 주류경제학의 입장에서 김대중과 노무현이 집권한 민주정부 10년을 비판해왔다.

자신이 비주류경제학 쪽에 서있는 진보 학자라면, '이 땅에는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데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혹은 '민주주의의 민주화' 같은 어긋난 이상주의적 논쟁지점을 제시해 소모적인 논쟁을 야기했다. 

노동, 복지, 분배정의의 실현은 진정성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시장 체제의 지정학적 한계를 지울 역능의 유무 문제다. 파괴와 창조만이 당장 재벌기업들의 반노동자적 자세를 친노동자적 자세로 전환시킬 수 있다.

나아가 자유시장을 해체 하면서 마주하게 될 극단적인 저항과 혼란을 정면으로 돌파 할 용기가 필요할 따름이다. 오늘을 더 나은 내일로 이끌 유일한 길이다. 안철수가 권력을 잡아야 할 척도는 '현실 인식과 통찰력, 혁명을 수행할 의지와 실천 능력'이다.

그 밖에 안철수 신당이 민주당을 대신해 설 자리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