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사라졌다. 여야가 치열한 책임공방으로 국회를 마비시킬 조짐이다. 당리당략과 권력우월주의가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셈법에 함몰된 결과다.

여러 갈래에서 촉발된 소모적인 논쟁은 자가발전하며 과잉상태로 치닫고, 여야와 청와대는 그 짙은 안개에 휩싸여 출구를 찾지 못하면서도 주변 숲에 닥치는대로 불을 지르면서 백병전을 벌이고 있는 꼴이다.  

가뜩이나, 시대적 의제인 경제민주화법을 완성해야 할 7월 임시국회다. 경제민주화라는게 공동선(共同善)으로 자유주의 시장을 규제하는 일인데, 국회의원들이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상황이다.

'규제를 풀어 투자를 유도해도 될까 말까한 판에 규제가 왠말이냐'는 게 대기업집단의 논리다. 이를 정면돌파 할 지혜와 행동력이 필요한 국회다. 대다수 국민들은 국회가 자본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인식한다. 더구나 경제 문제의 해법으로, '이상'이 '현실'을 깨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재계가 경제민주화 관련 법률 시행령을 제정 할 국회를 향해 규제당국의 재량권 제한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 바로 그 현실이다.  

일감몰아주기 같은 부당내부거래 규제를 강화하는 '공정거래법', 기업 임원의 연봉을 공개토록 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법'. 유해물질 배출시 매출액의 5%를 과징금으로 물리도록 한 '화학물질 관리법' 같은 법안들은 규제기준을 둘러싼 쟁점을 수두룩하게 안고 있다.

이 가운데 '공정거래법' 시행령은 규제 대상인 계열사에 대한 특수관계인의 최소보유 지분을 얼마로 정하느냐가 쟁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현행 내부거래 공시제도를 준용, '총수일가 지분율 20%'를 검토하고 있지만, 재계는 지분율 50%이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하자며 맞선다.

지난 6월말 현재 자산 5조 원 이상인 상호출자제한 대기업집단 62곳의 전체 계열사 1,782곳 가운데 총수일가가 지분을 소유한 곳은 417곳(23.6%)이다. 여기서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50%이상인 경우 100여 개 기업이, 30%이상으로 정해지면 170∼200여 개 기업이 규제 대상이 된다.

처벌 수위를 둘러싸고 여야 간 접점찾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대기업집단은, 내부거래에서 금지 및 예외 인정 거래행위의 유형과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해 당국의 단속을 제한 할 것을 요구한다.

대다수 여당 의원들은 기득권세력의 첨병이다. 그들은 자유시장질서의 논거로 무장한 무적들이다. 무엇보다 자유시장은 현실이며, 그 질서를 문란케하는 것은 안정을 해치는 것이 된다. 고립된 야당의원들의 입지를 한 눈에 보여주는 지형이다.

야당 의원들이 새시대의 첨병이 돼 결사항전을 감행하지 않고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없는 까닭이다. 경제민주화는 보편적 가치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새 시대의 키워드다. 야당 의원들이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 새시대의 요구를 어느 정도 관철시키느냐는, 전적으로 얼마 만큼 고민했느냐에 달려있다.

부당내부거래 규제같은 경우는 궁극적으로 대기업집단 전체가 대상이다. 몇 개의 기업을 규제하느냐로 정치적 협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의 부당내부거래를 근절하자는게 법 개정의 출발점이다. 야당의 입장에서 최대의 수치를 규제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국회에서 팽배한 긴장감이 감돌아야 하는 상황이다. 야당의원들의 경제 개혁을 지향하는 대오가 견고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한 호흡도 흐트러져서는 안되는 매 순간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다.

도대체 새 시대의 문을 열어야 할 7월 국회가 전 대통령의 엔엘엘포기 발언 여부를 왜 가려야만 하는가. 남북 엔엘엘이 그 남북정상회담 이후 달라진 것도 없지 않은가. 특히, 국민대다수가 새누리당이 날조한 사실을 믿지 않거니와 관심 조차 없는데 무엇을 위해 국회 밖으로 나가 국가기록원을 뒤졌는가.

색깔론의 피해의식에 들뜬 문재인이 민주당의원들을 경주마로 내몰았고, 어설픈 김한길이 박차를 가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어디로 내달리고 있는지를 묻지 않는다. 주체의식을 지닌 의원이 소수일 뿐더러 7월 국회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진 의원은 눈에 띄지 않는다.

경제민주화 관련법 시행령들은 졸속으로 제정되거나 회기내에 처리되지 못하고 표류할 공산이 높아졌다. 새누리당은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으며, 여유를 되찾은 재계가 엄혹한 현실을 내세워 청와대를 움직이고 여론의 흐름을 바꿀 시간이 충분해졌다.

표면적으로 민주당이 명예를 다퉜다면, 새누리당은 철저하게 실리를 쫓았다. 이겨도 얻을 게 없는 민주당과는 달리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참여정부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하고, 댓글 공작으로 여당 후보를 도운 국가정보원 파동을 진화하고 민주당을 고립시켰다.

길 잃은 경제민주화 법안

이제 '대화록' 정국은 참여정부가 대화록을 국가기록원에 이관하지 않았는지와,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가 대화록을 없앴는지를 밝혀야 하는 전혀 예기치 못한 국면으로 옮겨갔다. 이 출구없는 대치는 양쪽 모두를 파국으로 몰아갈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 결과에 대해 져야할 책임이 무겁다. 사초를 부실하게 관리하고 훼손한 행위는 국기문란에 따른 사법적 양정기준 앞에 서야 한다. 도깨비를 쫓던 야당이나 사냥감을 몰던 여당이나 깊은 함정에 빠진 꼴이 되었다.

그런데도 만신창이가 된 민주당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반면, 새누리당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100여개의 '민생'살리기, '을'살리기 등 경제개혁 법안들이 꽤 오랫동안 탁상을 벗어나지 못하게 됐지 않은가. 새누리당은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경제민주화 입법 방해·회피가 노출되는 국회라는 사정권에서 벗어나 있다.

규제완화를 통한 기업들의 투자 유도, 낙수효과 같은 성장주의 경제 해법이 또다시 득세할 것이다. 기득권층의 안정이 곧 사회안녕이라는 지배 이념이 고개를 들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생존권 보장과 노동기본권 확대와 관련한 법안들은 비현실의 늪에 빠졌다. 중소상공인·자영업자 생존권 보장 관련 법안들도 마찬가지다. 재벌대기업 특혜 세제 개혁을 통한 조세정의 실현 같은 재벌개혁 법안들도 수면 깊이 가라앉았다. 

사회적 불평등 해소, 공정한 룰 확보, 노동의 가치와 사람에 대한 존중을 입법 가치로 내세웠던 민주당의 경거망동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