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민주당이 목하 때 늦은 각성중이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실종과 국가정보원 국정조사 파행에 따른 지도부 책임론이 그 시점이다.

대화록 정본 열람·공개를 요구한 문재인과 부화뇌동한 김한길을 겨눈 격발이다.

대화록 국면에서는 새누리당의 농간에 휘둘려 수렁에 빠졌고,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는 지루했던 개점 합의와 동시에 휴업에 들어간지 일주일만인 오늘 재개된다.

또, 국정원 국정조사 기간 45일 중 특위는 고작 5일 동안만 운영되는데, 희대의 사기·날조·인멸·은폐 전문기관을 상대로 무엇을 규명할 수 있을까. 그 물리적 한계에 봉착한 민주당 의원들은 극심한 열패감에 발을 동동 구르지만 출구는 보이지 않는 지점이다.

특히, 국가기록원에 있어야 할 대화록 정본이 실종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정국의 첫번째 이슈여야 마땅한 '국정원 국기문란'행위가 한바탕의 소란을 틈타 우리 시야에서 유유히 사라져가는 사이, 박근혜 정부는 재벌에 투자와 고용을 의존하면서 경제민주화를 크게 후퇴시켰다.

경제정책의 기조를 '경제민주화'에서 '경제살리기'로 아예 급선회했다.

지난 4월 전체 기업의 16%(930개)였던 대기업 세무조사 비율을 20%(1천170개)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던 정부는 3개월 만에 다시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세무조사에 대한 부담을 호소하는 기업이 급증하는 가운데, 세무조사가 경기 회복에 걸림돌이 돼 세수 확보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국세청은 또, 세무조사 기간을 두배로 늘리고 세무조사 인원 투입도 대폭 늘리며, 전체 세무대상 기업 수를 지난해 1만8천여개 보다 1천개 늘리는 세무조사 계획을 세웠으나, 이 역시 작년 수준 이하까지 하향조정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 쪽은 "세무조사 대상 수를 조금 줄이는 것은 경기 활력 회복에 큰 도움이 안 된다"고 틈을 파고 든다.

국세 행정의 원칙과 신뢰를 저버리는 행태다. 또한 법인사업자 세무조사 비율이 우리나라가 1%인 반면, 미국이 1.3%, 일본이 4.2%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재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당초 계획을 중간에 수정한다는 국세청의 주장에는 설득력이 없다.

굳이 경제민주화라는 지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세무조사 비율을 높이는 것은 결코 무리한 일이 아니다. 또한 틈만 나면 지하경제 양성화를 노래하는 국세청이, 지하경제 양성화의 첩경인 세무조사를 축소하는 것은 자기부정 행위다.

최근 검찰은 수천억원대의 탈세·횡령 혐의로 기소된 CJ그룹 김재현 회장에 대해 6년 형을 구형했다. 대기업 회장들의 이런 사례는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세무조사는 조세정의를 바로세우는 유일한 방법인데, 정부가 대기업의 조직적인 반발에 굴복한 것이다.

정부는 이런 와중에 일감몰아주기를 하는 대기업 계열사간에 지분관계가 있을 경우, 지분율에 따라 과세금액을 줄여주는 '과세완화'까지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의 물류 관련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급성장한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정몽구 회장 부자의 지분 43.4% 외에 현대차 4.9%도 주식을 갖고 있는데, 정회장 부자가 내야 할 증여세를 현대차의 지분율만큼 줄여준다는 것이다.

재벌들의 편법적인 부의 축적과 대물림을 막아, 중소기업을 비롯한 소상공인과 소비자들도 성장의 결실을 골고루 나눠갖도록 하자는 경제민주화의 핵심장치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과세가, 전경련의 주장대로 '투자의욕을 꺾는 규제'로 평가될 만한 수준도 아니다.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 부자와 에스케이그룹 최태원 회장의 경우 편법적으로 늘린 재산이 2조~3조원을 넘고 수익률도 100~200배에 달하는데도 세금은 불과 100억원 내외로 벌어들이는 돈의 0.2%~에 0.5%도 안된다.

과세 완화는 또, 박근혜 정부의 대선공약인 대기업의 계열사간 '신규 순환출자 금지'나 '출자총액제한제'를 담는 재벌규제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 공약은, 재벌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만 갖고도 그룹을 장악하는 기형적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다.

순환출자는 자본금 100억원을 가진 A사가 B사에 50억 원을, B사가 다시 C사에 30억 원, C사가 또다시 A사에 10억 원을 각각 출자하는 방식이다. A사는 자본금 100억 원으로 B와 C사를 지배하는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A사는 장부상 자본금을 110억원으로 늘리는 효과를 창출한다.

재벌총수 일가는 이같은 반복적인 순환출자로 거품을 늘려 이익을 편취하면서 모기업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키고. 취약한 계열사들을 양산해왔다. 특히, 대기업들은 이런 수법으로 손쉽게 회사를 설립하고 타사를 인수하는 등 기업을 문어발식으로 확장해 왔다.

이는 또한 재벌들이 상속과정에서 편법 증여 수단이 되어 왔다. 순환출자 규제가 경제민주화의 근간이 되는 이유다.

리더십 부재에 변죽만 울린 경제민주화

그동안 학계에서는 그 대안으로 지주회사 제도를 제안해왔다. 지주회사는 B와 C의 지분을 보유할 수 있지만, B와 C는 서로의 지분을 보유하지 못하게 해서 순환출자에 따를 폐해를 완화하자는 것이다. 재벌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막고, 상속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며. 건강한 기업구조를 촉진할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당초의 계열사간 일감몰아주기 과세 기준에서 전격 후퇴하면서, 근원적인 문제를 들어낼 지렛대를 내팽개치려 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변죽만 울린 채 사장 될 위기에 처했다. 무능한 민주당 지도부와 조변석개하는 박대통령의 리더십 부재가 낳은 합작품이다.

패잔병이 된 민주당은, 증인도 채택하지 않고 휴가를 떠난 국정원 국조특위 간사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을 목놓아 부르며 아무것도 얻지 못한 현실을 절감한다.

성공한 박대통령은 추종자들에게 복종만을 요구하며 사람의 장막에 둘러싸여 지적·도덕적 균형을 상실하고 가능과 불가능에 대한 판단까지 잃어가는 휴브리스가 됐다.

폭염의 계절이다. 이순신의 리더십이 목마른 때다. 민주당 지도부에는 모함에 몰려 죽을 위기를 넘기면서도 흔들림 없이 백의종군했던 정신이, 박 대통령에게는 옳다고 판단되면 어떤 압력이나 회유도 뿌리치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겨 난국을 타개한 정신이 필요하다.

 평생 정의를 추구했기에 외로웠으나 불의와 타협한 적이 없으며, 죽음도 불사한 이순신의 선공후사 정신이 목마르고 또 목마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