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최근 잇따라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설국열차’와 ‘더 테러 라이브’는 불평등이 배태한 폭력을 다룬 영화다.

설국열차는 하층계급의 반란과 체제 전복을 그렸고, 더 테러라이브는 소외계층의 한 인간이 폭력 기술을 동원해 지배권력에 사죄를 요구하는 서사구조를 지닌다.

이들의 폭력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더는 감내 할 수 없는 착취와 억압, 혹은 유린에서 기인한다. 빙하기에 인류가 멸망한 이후 설국열차의 꼬리칸에 탑승한 생존자들은 오직 열차 제작자에게 운명이 맡겨진 가축과 다를 바 없고, 마포대교 다리 공사를 하던 인부들은 강물에 떨어져 사망하지만 정상적인 사후 조치 대상에서 배제된 죽어서조차 버림받은 소모품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폭력은 관객들의 카타르시스와는 무관하게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설국열차에선 혁명 리더 커티스가 열차의 방어 체계를 뚫고 결국 첫번째 칸에서 지배자와 맞닥뜨리지만 혁명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희생된 뒤였다. 또, 열차의 체계화된 생존 시스템 안에선 자신이 지배자라 하더라도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벽에 부딪힌다. 커티스는 혁명적 사고를 버리지 않고, 꼬리칸에서 잡혀와 열차 엔진의 부속품이 된 소년을 구하며 자신의 팔을 잃지만, 팔이 절단되는 고통 보다 모든 것을 바쳤으나 이룬 것이 없는 현실이 더 통절하다.

더 테러라이브에선 익명의 테러범이 마포대교를 폭파해 3등분 하는데 성공한 뒤 공중파를 장악하고 협상의 주도권을 잡지만 방송국의 시청률 높이기에 이용될 뿐이다. 권력의 구조적인 관성은 “범죄자와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원칙만 거듭 천명하면서 테러범과의 두뇌 게임에 몰입한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되는 전제 조건들이었다. 윤영하 앵커의 옆 자리에서 국민과 마주한, 힘만 믿고 날뛰는, 존재의 고뇌라곤 느껴지지 않는 미숙한 경찰청장이 테러범이 설치한 폭탄에 절명하고, 절해의 고도가 된 다리 상판이 무너지면서 윤영하 앵커의 전 부인과 조난자들이 참사를 당하기까지, 과거 다리 공사장에서 숨진 막노동자들의 원령을 향해 대통령은 기어코 사과 하지 않는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대통령은 현존한다. 그들만의 ‘체제’라는 미명하에 소수의 희생은 파리 목숨 쯤으로 여기는 권력 또한 엄존한다. 하지만 한 눈에 들어오는 화면에 그런 현실이 재연 될 때 숨이 막힐 수 밖에 없다. 테러범은 범죄자일 뿐이고, 그를 잡기 위해 시간이 필요할 뿐이며, 테러 대상이 된 국민은 가차없이 희생시키는 것이 대테러 대책이다. 혹자는 이쯤에서 용산구 남일당의 참사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옥상에 설치된 망루에서 경찰의 무리한 진압으로 화재를 당해 불귀의 객이 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 그리고 당시 망루에서 추락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으나 불구가 된 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죄로 기소된 철거민 2명의 비극 말이다. 너무나 뻔한 수순을 너무나 당연히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 한없는 환멸을 느끼게 된다.

어떤 주체가 절대 다수에게 불신을 받지만 신뢰를 회복할 생각이 없고, 진실을 규명하자는 목소리는 평화로운 사회를 어지럽히는 소수의견으로 내몰리며, 그런 사이클의 무한 반복으로 불신이 만연하지만 절대다수가 그것을 필요악 정도로 여기며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아무도 믿지 말라”는 역설이 더 테러라이브 전반에서 뿜어져 나온다.

더 테러라이브의 앵글은 시종일관 테러범과 통화하는 앵커와 긴박한 사고 현장을 담아내고, 방송사 상층부의 상업주의와 청와대의 무관심을 조명하지만, 그 방송을 바라보는 국민의 얼굴이나 반응은 일절 비추지 않고 있다. 감독이 의도한 것이든 놓친 것이든 영화 안에서 절대다수의 국민은 중요하지 않다. 국민은 불평등에 대한 저항 현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더 테러라이브 감독은 수많은 국민들의 촛불이 위정자들의 일방통행을 바꾸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려했을까. 무기력한 국민은 이 영화에 아무런 힘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까.

누란의 성, 배제와 폭력의 체제

감독이 상황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국민의 참여는 불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더 문제다. ‘국민을 등장시켜서 더 큰 스케일과 긴장감을 확보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지 않느냐’는 따위의 반문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감독이 생산과 교환의 효용가치에 경도되어 있다는 점, 효과만능주의 숭배자로서 배재의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약육강식의 신자유주의 냄새가 진동한다.

설국열차와 더 테러라이브는 생존, 혹은 지배 체계의 독선과 그로 인해 배제된 자들의 이야기다.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진 곳에는 인간사회의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두 세계는 그렇게 약육강식의 계급질서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바퀴벌레 단백질블록에 연명하거나 노동력을 착취 당하면서도 생존을 위해 목숨을 담보해야 하는 그들은 소모품일 뿐이다.

어쩌면 두 영화는 그런 폭력의 체제란 폭력에 의해 부서질 누란의 구조라는 것을 암시한다. 세상을 바꾸려고 해도 폭력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는 세상은 결국 ‘무한경쟁’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는 지배세력이 설계했다. 그로 인해 지배와 피지배는 언제든지 전도 될 수 있는 변곡점에 놓여졌다. 실용의 기표 아래 철저하게 상상력을 배제한 세상에서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설국열차 감독은 막다른 길 위에서 그 체제 밖을 상상했고, 모두를 희생시킨 뒤 두 남녀를 체제 밖의 세상으로 내보냈다. 더 테러라이브 감독은 테러범과 윤영화의 유일한 출구를 ‘죽음’으로 상정했다. 관객들은 영화 밖에서 두 사람의 출구를 찾아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 것이다. 두 영화가 다른 점이다.

그 ‘다름’은 다른 민주주의에서 발원한다. 건강한 인문학에 작동되는 민주주의와 인문학이 제거된 민주주의의 차이다. 우리는 생산과 소비의 기계가 상상력을 점령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보다 더 섬뜩한 공포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