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당송팔대가 중에는 한유라는 사람이 있었다. 자유분방한 문체로 명성을 얻었고, 기존의 경직된 문학적 형식을 타파하는데 인생의 황금기를 던진 절세문인이었다.

하지만, 대개 일가를 이룬 사람이 영역표시에 나서고 집단표상에 열을 올리듯이, 한유 역시 자신이 도달한 유가(儒家)의 정점에서 '독선'의 샘물을 마셨다.

중년에 고위 관직에 올라 승승장구하던 그가 불교를 '종묘사직을 무너뜨릴 망상의 종교'로 규정하며, 불교를 숭상해 불골(佛骨, 부처의 손가락 뼈)을 궁중에 들이려는 황제의 뜻을 거스른 댓가로 산간 벽지인 조주(潮州) 자사로 좌천 된 까닭이다.

그는 헌종에게 올린 불골표에서, '불교는 어리석은 백성을 미혹해 모든 것을 바치게 하고 결국은 생업을 포기하게 만들 것'이라고 예단했다. 황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불교를 신봉하면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몸을 해치고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논리의 비약이었다.

이렇듯 당대 최고봉이었던 논객이 보편성을 상실한 불교 배척론을 쓰게 된 직접적인 배경은 유가의 법통을 재확인하고 그 체계를 보다 굳건히 세우고자 하는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된 탓이었다.        

그는 불골을 한 낱 '더러운 한 끝'이라고 일컬으면서, '까닭도 없이 부정한 것을 취하는' 황제를 대놓고 부끄러워 했다.
통치이념의 근간을 뒤흔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불교의 진입 봉쇄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극단적인 보수 주의자의 모습이었다.

그는 일하지 않는 승려들이 백성들의 고혈을 빨고 종국에는 온 나라를 무위도식의 나락에 빠뜨려 왕조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혔고, 그런 불행한 사태를 화급히 막아야 한다는 신념의 불길에 뛰어든 나머지 사리분별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헌종은 불골표의 행간에서 퍼덕이는 한유의 신념을 발견할 겨를이 없었다. 다만, 자신을 불효, 불충한 왕으로 또는 혹세무민하는 왕으로 모욕한 것을 참지 못하고 자신이 가장 총애하고 신뢰했던 그를 죽이라고 명했다가 주변의 만류에 못이겨 조주 자사로 좌천시키는 것에 멈췄다.

한유는 유폐나 다름없는 임지에서 술과 글쓰기로 울분의 나날을 보내다가 조주에 훌륭한 '태전선사'라는 스님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한유의 얼굴에 모처럼 생기가 돌았다. 그 스님을 타락시키면 불교는 세간에 하찮은 종교로 회자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공작을 즉각 실행했다. 조주에서 가장 젊고 예쁜 홍련(紅蓮)이라는 기생에게 "백일의 기한을 줄 것이니, 태전이라는 중을 파계 시켜라, 그렇지 않으면 너의 목을 칠 것이다" 라고 지령을 내렸다.

하지만 온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던 홍련으로서는 자사의 엄명에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고립된 곳에 혼자 사는 남자 정도를 차지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홍련은 발길도 가볍게 태전이 있는 축륭봉에 올라가 백일기도를 드린다며 온갖 방법으로 유혹했으나 백일 동안 태전의 손끝에 조차 살을 대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선사의 수행에 감화되었다.

산을 내려가려던 홍련은 눈 앞이 캄캄했다. 그녀는 선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자신은 오늘 내려가면 죽을 목숨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태전은 홍련의 속치마에 다음과 같은 게송을 썼다. 십년을 축륭봉에서 내려가지 않고/ 사물을 보되 집착에서 벗어나니 여색도 공이더라/ 어찌하여 조계의 한 방울 물을/ 함부로 붉은 연꽃 한 잎에 떨어뜨리랴 

태전의 게송을 접한 한유는 자신도 모르게 경탄성을 내질렀다. 득달같이 달려간 한유에게 태전이 어떠한 불교경전을 읽어보았느냐고 물었다. 한유가 특별히 읽어 본 경전이 없다고 답하자, 태전은 "학문으로 이름 높은 자사께서 어찌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불교를 비난하셨습니까"라고 일침을 가한다. 

한유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날로 불교경전을 섭렵하던 끝에 불교에 귀의하는 사상적 전향을 결행했다. 한유가 이 때를 기점으로 남긴 수많은 불교에 관한 문장은 '이전의 문장이 지닌 사유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평자들의 평가가 여럿 전해진다.    

이 매력적인 양대 산맥의 거두들이 남긴 화두는 다른 영역에도 시사해주는 함의가 적지 않다.

특히 대치하는 진영들이 지니는 독선과 상대에 대한 빈약한 인식, 그런 결핍 위에서의 무차별적인 공격, 필경 스스로 수습할 길이 없는 무리수들의 남발, 그로인해 발생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혼란의 장기화, 혼란이 혼란을 낳는 가운데 일상화 된 혼란속에서 떠돌며 퇴보하는 우리들에게 길을 제시한다. 

침묵의 독을 삼킨 청와대

"집단이기주의에 중독 된 정신을 치유하라."

황제에 맞서 물러서지 않다가 화를 당한 한유의 일화에서는, 채근담의 격언도 퍼 올릴 수 있겠다. 한 걸음 나아가고자 하는 곳에서 물러설 때를 생각하면 가시울타리에 뿔이 걸려 벗어나지 못하는 숫양과 같은 화를 면할 수 없을 것이며, 일을 시작하는 때에 그 일을 그만둘 때를 생각해야 호랑이 등에 올라타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상대를 정확하게 인지하라. 상대를 모르고 공격하는 것은 캄캄한 밤에 길 없는 산 속을 달리는 것과 같다.

청와대에 꼭 필요한 격언이다.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서울 등 5곳의 대도시에서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모아놓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화하고 민주 진보세력을 종북·좌파로 매도하는 안보교육을 실시했다. 대통령 선거 직전까지 국가기관이 정치개입을 한 정황이다. 이에 앞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2011년 12월의 강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화하면서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는 것을 암시해 정치개입 논란을 초래한 바 있다.    

국정원은 지난해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정치댓글을 인터넷에 게시해 사법적 판단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국방부 사이버사령부가 대선과정에서 트위터와 블로그에 정치 댓글을 게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지난 17일에는 대선기간 중에 정치관련 글을 트위터에 올리고 퍼나른 3명의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검찰에 긴급체포됐다.

더 큰 문제는 지난해 대선을 전후해 극우세력들이 발호한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사회가 우편향 교과서 파동에 휩싸인 가운데,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은 지난해 2월 9일 서울의 한 교회에서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 불가피론'을 편 것이 드러났다.

국가기관들의 불법 선거개입 의혹이 속출하는 데도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칠흑같은 밤에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