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지난 16일 태풍 ‘위파’가 일본을 강타했다. 2011년 3월 11일 대지진으로 폭발을 일으켜 초고농도 방사능이 유출, 폐쇄된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발전소의 오염수 저장탱크 주변부와 바다를 연결하는 배수구 하류 바닷물에서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고치의 ‘베타선 방출 방사능 물질’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그 농도는 리터당 1,400베크렐로 전날 조사 결과의 70배에 달한다. 배수구 상류의 3개지점에서도 역대 최고치인 리터당 2,000~2,300베크렐의 방상능 물질이 검출됐다.

전 날까지 ‘완전 차단’을 주장해 온 아베 신조 총리는 거짓말 논란을 의식해 “전체적으로 상황은 통제되고 있다”고 말을 바꿨으나, 사흘 뒤 후쿠시마 어촌을 방문해 수산물을 시식하는 등 천연덕스러운 '진실 은폐'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일본 정치권의 이런 안전불감증과 보신주의 혹은 자국이기주의는 지난해 3월 방영됐던 독일국영방송(ZDF)은 다큐멘터리 '후쿠시마의 거짓말'을 상기시킨다.

'후쿠시마의 거짓말'은 핵발전소 사고 당시 도쿄전력이 사태 감추기에 급급해하는 모습과 그 네트워크인 '원전 마피아'의 막강한 횡포를 고발했다.

도쿄전력과 정계, 학자로 구성된 원전 마피아들은 경제성을 우선으로 삼고, 안전 결함에 대한 엔지니어의 수차례에 걸친 경고는 철저히 무시했다.

원전 마피아는 대지진이 일어난 날 밤에 후쿠시마 원자로 3개에 멜트다운(임계)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당시 '간 나오토' 일본 총리에게 조차 알리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대항하는 간 전 총리에 대한 거짓말을 언론에 뿌려 사퇴로 내몰았다.

18년간 후쿠시마현의 지사였던 자민당 소속 에이사쿠 사토는, 후쿠시마 원전 문제를 보고 받고 그와 관련한 글을 신문에 기고하는 등 이 문제를 은폐하려던 원전 마피아와 충돌하다가 언론에 유출된 거짓 기사에 의해 매도당하고 결국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예방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원전 마피아들

사용 후 연료수조 방사능 누출되면
최소한 히로시마 원폭의 5천개 분

3.11 대지진에 폭발한 후쿠시마 원전
다시 지진 발생하면 버티지 못할 것
4년 이내에 지진 일어날 확률은 75%

도쿄전력은 정치권과 끈끈하게 결합된 권력형 기업이다. 도쿄전력에서 일하던 사람이 정치인이 되거나, 은퇴한 정치인이 도쿄전력의 간부가 되기도 하며, 도쿄전력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는 의원들이 100명 이상이나 된다. 게다가 언론까지 좌지우지하는 도쿄전력의 파워는 일본 안팎에 잘 알려져있다. 

간 나오토 전 총리는 "사고예방을 위해 꼭 해야 할 일을 원전 마피아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고발한다. 

다큐가 방영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일본 정치권과 도쿄전력의 '시치미떼기' 행보는 여전한 것이다. 그들은 상황을 더이상 감출 수 없을 때만 제한적으로 사실을 인정하는 수준의 공개로 일관하고 있다.

다큐 '후쿠시마의 거짓말'이 지구촌의 태양을 가린 가운데, 도쿄전력은 지난 7월 하순에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가 지난 2년 이상 바다에 유출됐다고 고백했다.

약 4년 후면 우리나라 서해까지 포함해 태평양 전역이 방사능에 오염될 것으로 예측이 나온다.
유출된 기점부터 세슘-137이 태평양에 확산되는 것을 시뮬레이션 했더니 최근에 태평양 대부분이 오염됐고 동해바다도 오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태평양과 동해의 오염을 배제하더라도 일본 주변 바다에서 나는 어떤 것이라도 먹는 사람은 내부 피폭을 당할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더구나 일본이 지진 전문가는 4년 이내에 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75%라고 예측한다. 일본의 지진은 갈수록 잦은 빈도를 보이고 강해지는 추세다. 최근에 발생한 지진 강도는 4,000gal 인데, 후쿠시마 핵발전소 건물의 내진 설계는 최대 600gal 강도까지만 버티도록 되어 있다.

3.11 대지진에 강타당한 후쿠시마 원전 건물은 심각한 내상을 입은 상태이고 다가올 지진에 완파될 게 불보듯 뻔하다.

이같은 '후쿠시마의 거짓말'이 세상에 나오고 7개월이 지난 2012년 10월 25일 삿뽀로 심포지움에서 '마쓰무라 아끼오' 전 UN직원은 자신이 들은 전세계 과학자들의 경고를 전했다.

우선, 핵발전소 연구의 세계 최고봉인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전소장 '한스 페타 듈'은 그에게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과학적인 회복이 불가능하다. 인류가 경험한 적이 없는 사고다. 나를 포함해서, 해결할 만한 아이디어가 하나도 없다"고 단언했다.

더는 감출 수 없을 때만 제한적으로
사실을 인정하는 일본 정부의 행보

아끼오로부터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사용 후 연료수조 내 세슘137 총량 계산을 부탁받은 이 분야 세계최고권위자인 '로버트 알바레스'는 "최소 히로시마 원폭의 5,000개 분"이라는 산출 결과를 냈다.

이 최소의 세슘이 누출되더라도 후쿠시마에는 사람이 살 수 없고, 이 때의 총량을 계산하면 체르노빌 폭발사고의 85배가 되며, 히로시마 원폭의 5만발~10만발 정도가 돼 적어도 3천km는 피난해야 된다는 것이다.   

가깝더라도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에 다소 멀게 느껴지는 일본의 미래 말고 현실은 어떤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헬렌 칼디콧' 박사는 아끼오에게, 일본의 아이들은 이미 엄청난 방사능에 피폭됐고 그 수는 5년 내지 15년사이에 최소 100만명이 넘어 설 것이라고 추산했다.

일본은 향후 60년 동안 핵이 인간에 미친 온갖 증상과 꼬리를 무는 사자의 무리를 목도하는 걸 피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더이상 문제를 덮어서 가리려고 해서는, 늦었으나마 아이들을 구할 기회를 잃게 된다는 경고다. 언론이 덮으려 해도 5년 내지 10년 후에는 방법이 없다.

스탠포드대 니시 교수의 말이 계속 울리는 막힌 통로에 우리는 서 있다.  "자기가 위험하다고 생각지 않는 사람에게, 당신은 위험하다고 말해봤자 귀담아듣지 않는다."

일본은 피해자냐, 가해자냐의 논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소 200년 동안 방사능에 오염된 줄 알면서도 먹고 살며, 세계로부터 비난 받으며 배상청구를 당할 자손들이 눈 앞에 있다. 지금 침묵으로 저지르는 죄값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게 일본의 자손이다.

아끼오는 자민당 총재를 비롯한 전환경청장관, 민주당 간부, 칸 수상, 노다 수상 등에게 후쿠시마 핵발전소 4호기가 폭발하면 몇 백년 동안 일본 부흥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역설했으나, 그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중대한 반칙을 저지르면서
심판들을 퇴장시키는 권부

이런 일본에서 눈길을 거두어 대한민국을 보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너무나도 낯익은 장면들을 목도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거짓말' 혹은 '대통령의 침묵'으로 국민들의 감정에 멜트다운이 진행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이식된 일본 정치문화의 잔재가 민족의 얼을 집어삼킨지 오래다.

국민들은 매일같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하며, 불리한 문제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대통령 앞에서 절망한다. 상궤를 벗어난 행태는 질서가 교란된 자연과 같고, 그 자리에서는 슬픔과 두려움, 수치심을 잃어버린 괴물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란다.

이 나라의 정의란 오직 '정권 유지'이고, 지난 대통령 선거가 불공정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일체의 행위는 '부정의'다. 권부는 언론을 앞세워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기소를 지휘한 채동욱 검찰청장을 찍어내더니, 새로 포착한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혐의에 따라 국정원 직원들을 구속하고 추가기소를 시도한 윤석열 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장의 직무를 박탈했다.

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10년 전 자신의 손으로 폐기 처분했던 검사동일체 윈칙을 내세워 '항명' '하극상'을 들먹이며 대한민국 검사 윤석열을 몰아붙이고 있다.

검찰청법 7조 1항의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검사동일체 원칙의 삭제를 발의해 이를 개정했던 새누리당이, 외압과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굴하지 않고 수사의 공정성을 확보하려 했던 윤 전 팀장을 '절차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공격하는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처벌은
지속가능한 국가의 ‘시금석’

국가기관이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저버리고 대선에 개입해 영향을 준 국기문란 사건이다. 더구나 피의 주체인 국정원은 법상 사전에 검찰의 수사를 방해 할 수 있는 초법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윤 전 팀장은 최선을 선택했고 나름 절차를 준수 했으나, 영장 청구시 검사장의 승인을 받도록 되어있는 사무규칙을 위반했다.

이로 인해 그는 이 사건 수사에서 손을 떼야 했다. 반면, 중대선거 범죄를 즉각 수사 못하게 한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의 위법 행위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국정원과 국방부가 공조해 대선에 개입, 절차적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헌법적 가치를 훼손한 가운데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대한민국 권부는 거듭 중대한 반칙을 저지르면서 심판들을 퇴장시키고 있다. 국가가 공신력을 잃고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는 위기론을 대한민국의 아끼오들이 끊임없이 전달하지만, 대통령과 여권은 침묵한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처벌은 단순히 당사자들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지속가능한 국가인가를 판가름할 사안이다.

대통령이 공명정대한 수사를 명하고, 정의를 바로세워야 할 때다. 대선과정에서 박근혜 후보가 직접 국가기관이 선거 개입을 요청하지 않았거나 몰랐던 일이라면, 더욱더 서둘러 수습해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도 나라 꼴을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를 통감하고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