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알베르 까뮈가 1943년에 쓴 희곡 '오해'는 체코 지방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오해'에서 다룬 사건은 암울한 시대의 정서를 반영한다. 

보헤미아 내륙의 외딴 곳에서 어머니와 그의 딸 마르타는 여인숙을 운영하며 살고 있었다. 마르타는 어떻게 해서든지 벽지를 떠나 출렁대는 바닷물과 작열하는 태양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어 한다.

마르타는 이 같은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투숙객에게 마취제를 먹여 목졸라 살해한 뒤에 강물에 던지고 소지품을 터는 범행을 계획한다.

마르타를 말리던 어머니는 다른 세상에 대한 동경에 눈이 먼 딸을 더이상 어쩌지 못하고 범행에 가담 하게 된다.

돈 많은 투숙객이 들면 그의 돈을 빼앗고 죽이는 것을 서슴지 않던 모녀는 어느날, 귀족의 풍모를 지닌 한 젊은 남자를 살해한 뒤 시체를 강에다 버렸다. 

집에 돌아온 모녀는 남자의 가방을 열었다. 잠시 뒤 기대에 떨리던 모녀의 가슴이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가방 속에 있는 여권과 빛바랜 사진속에는 어머니의 아들이자 마르타의 오빠가 아주 어렸을 적의 모습으로 담겨있었다.

가난한 집안 형편을 비관하고 집을 나간 그는 가족들에게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했었는데, 20년이 지나 크게 성공해서 어머니와 여동생을 찾아온 길이었다.

이런 허허벌판에서 꿋꿋하게 살아온 어머니와 여동생이 너무나 고마워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 하루저녁을 투숙객으로 가장해서 지내고 다음날 아침 멋진 해후를 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런 아들과 오빠를 죽이고 말았던 것이다. 절망한 어머니는 아들을 던져 버렸던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하고, 딸도 결국 어머니 뒤를 따르게 된다는 줄거리다.

카뮈는 희곡 '오해'의 소재를 신문기사에서 발견했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니체의 생몰 이후 100년간 이어진 신에 대한 새로운 탐구들이 그에게 영향을 미쳤을까.

희곡 '오해'의 서사를 지배하는 작가의 심연은 절망이다. 카뮈는 낙원에서 추방된 인간의 동경과 인간을 버린 신을 작품 전체의 실루엣으로 드러내고 있다.

오늘, 카뮈의 눈을 통해 오해가 부른 참사를 반추해 보게 된 것은, 문득 우리가 서 있는 현재의 집단적 오해에 따른 사회적 병리를 마주하고서다.    

'집단적 오해'는 49년 전 뉴욕의 강도 살해 사건에서 비롯된 심리학적 용어다. 20대 여성이 38명의 이웃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32분 동안이나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강도에게 변을 당한 사건인데, 누구도 이를 제지하거나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미국사회가 발칵 뒤집혔고 한동안 '시민의식 실종'이라는 담론이 공론의 장을 마비시켰다.   

하지만 이 사건을 분석한 심리학자들은 '집단적 오해에 의한 책임 분산 효과'라고 결론지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평정을 깨트리고 싶어하지 않으며 타인이 많을 때는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덜 느끼게 된다는 심리현상이다.

카뮈의 희곡은 개인간의 오해에서 비롯한 비극적 종말을 다뤘지만, 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집단적 오해의 위험성을 선명하게 진술한다.

오해의 근원은 '식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아들을, 동생이 오빠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세월의 간극이 너무 벌어졌기 때문이지만, 욕망에 눈이 멀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명제를 무색케 한 탓도 크다.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희생된 남자 '얀'이 시선을 끄는 이유다. 가족들에게 자신이 낯선 존재라는 사실에 당혹스러웠던 '얀'의 입장은 오늘, 노무현이거나 채동욱이거나 윤석열 또는 문재인이다. 단체로는 지난 5일 정부로부터 헌정사상 처음으로 해산심판 청구를 당한 통합진보당이다.

그 뿐인가, 이 나라에는 '얀'들이 널려있다.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며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촛불 대열을 비롯해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를 지키려다 철창에 갇히는 제주 도민들, 공사를 강행하는 한전을 막아서다 사선을 넘나드는 밀양 주민들, 하루 아침에 법외노조가 된 전교조 등은 모두 '얀'이다.

신을 죽이는 욕망

그들은 모두 과도한 욕망에 희생되지만, 집단적 오해는 그들로부터 힘을 빼앗는다.  

카뮈는 얀의 죽음을 놓고 세 사람이 드러내는 상반된 입장을 통해 죄와 윤리의식을 투영한다.

딸을 사랑하기에 끊임없이 만류하면서도 딸의 악마적 행각을 돕다가 자신의 손으로 아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깨닫자 즉각 자살을 결심하는 어머니는 집단의식 혹은 진영의 이데올로기를 표상한다. 그녀는 죽음을 결심하며 자신도 내밀한 곳에 '사랑'에 대한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평생 자신을 옭아 맸던 불확실의 사슬에서 풀려난다. "산다는 것을 더이상 견디지 못하게 된 순간에야 비로소 나는 다시 살기 시작하는구나."      

에고이즘의 화신 마르타에게는 인간의 윤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얀'이 자신의 오빠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도 머나먼 이국의 해안에 있을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을 좌절시킨 오빠를 원망할 뿐이다. 그녀 역시 자살을 선택하지만 그 이유는 자신의 꿈을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얀'의 아내 마리아는 수습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존의 가치관으로 신앙에 의지한다. 하지만 일말의 윤리의식도 없는 마르타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며 헛된 얀의 죽음에 분노한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 신을 애타게 찾지만 신은 결코 어떤 응답도 하지 않는다.

까뮈는 이 희곡을 빌어 말한다. "인간의 육체와 영혼은 죽은 후에만 썩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남아있는 동안에도 절망과 욕심 때문에 썩어간다.”

가해자는 맹렬하게 타오르는 욕망이다. 그것은 저지할 수도, 거기에 인륜적 가치관을 심을 수도 없다. 희곡보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더 그런 사실을 명증한다.

오직 집단적 오해의 해제만이 국민들이 가해자를 알아챌 수 있는 눈을 획득할 방법이고, 가해자가 설 자리를 제거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