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겨울에는 음식을 보관하기 좋다. 모름지기 음식물에는 온갖 생명들이 기생하지만, 추위에 대부분 사멸하거나 활동하지 못한다.

딱히 염장을 하지 않고 말린 고기며 푸성귀 같은 우리 음식이 발달한 배경이다. 겨울 덕에 바람과 햇살 속에서 제살을 지킨 음식들이 계절을 넘나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 마음 속 동장군은 잡것을 물리쳐 신성한 것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맑고 투명하며 단단한, 그리하여 신령한 동장군의 도구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낱낱이 찾아 섬멸하기에, 동장군이 우리의 정신에 깃들면 우리의 사유(思惟)는 경건해진다.

어쩌면 겨울은 우리가 지닌 짐승적 격을 인간의 격으로 상승시켜서 신을 볼 수 있도록 눈을 닦아주는 신의 입김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겨울이 우리를 미생물로부터 보호한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동토의 표면위에서는 미생물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생명활동이 중지된다. 거기에는 굶주림과 외로움이 있다.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감수해야 할 냉혹한 시련이 상존한다.
위험은 어디에나 있다. '안전'은 위험을 감수 할 자세가 되어있을 때 훨씬 더 견고해진다. 안전과 위험은 가변성이 크다. 안전이 언제나 위험을 압도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겨울을 대면하며 긴장할 수 밖에 없지만, 오랫동안 잘 대비해 왔기에 감당할 수 있다. 감당할 수 없는 혹한이 우리를 덮친다면 그것은 신의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 마저도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다. 늑대 브레닌에게 배운 철학자 롤랜즈 처럼 우리는 위험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비로소 안전과 행복을 획득할 수 있다.

롤랜즈가 11년 동안 늑대와 함께 살며 기록한 '철학자와 늑대'에서 늑대가 되 비춘 인간의 가면은, 야성을 배제하고 안전을 추구하는 퇴화된 의지다. 그것은 감정에 호소하며 이성을 외면한다.
반면, 실체를 쫓는 늑대는 강하되 정직하다.

늑대는 강한 적에겐 죽음도 불사하는 투지를 보이지만, 약한 동족에겐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이렇게 늑대는 우리가 싫어하는 인간의 자화상을 뚜렷하게 투영한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강자에게 비겁한 인간은 약자에겐 가혹하고 잔인하다.       

이런 야성과 지성의 공존에 필요한 것은 의지였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그에 기반한 서로에게 길들여지기가 실행되어야 했다. 늑대에게 길들여진 철학자는 상황에 따라 너무나 다양하게 분출하는 감정을 극복하고 강해질 수 있었다. 그런 눈에 늑대는 그 어떤 인간보다 의연하고, 우아했으며,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표상이었다.

늑대는 먹이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장시간 숨죽인 채 지켜본다. 온 몸을 경직시켜 다음 순간을 위해 참고 견딘다는 것은 유쾌하거나 즐거운 감정과는 거리가 멀지만, 늑대는 먹이를 잡건 못잡건 사냥시간이 끝나면 눈을 반짝이며 환희에 젖었다.

야성의 철학은 그렇게 즐거움과 불편함이 하나 될 때 비로소 행복이 완성된다는 진리를 웅변했다.    

때로는 삶에서 가장 불편한 순간이 가장 가치 있기도 하다. 가장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도 가장 가치 있는 순간이 될 수도 있다. 늑대는, 감각에 의존해 만족스러운 감정 상태를 행복으로 착각하는 인간에게, 한사코 불안을 제거하고 멀리하는 인간에게 모든 것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태도만이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역설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종의 대립과 갈등은 더 많은 소유를 지향하는 쟁투에서 비롯한다. 하지만 늑대에게 중요한 것은 소유의 사실이나 그 정도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늑대가 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을 숭배하는 동물은 끊임없이 구분하고 나누며, 그로인해 너무나 복잡해진 관계 때문에 온갖 정신질환에 시달린다. '이념 대립'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공존해야 할 것이 나뉜 결과이며, 그 시작은 특정 세력간 지분 다툼이었다.

분단된 남·북 양진영은 모두 불안을 조장해 체제를 유지한다. 양 진영은, 브레닌과 롤랜드 이전의 늑대와 영장류 사이처럼 막연한 적이 되어 오해와 불신을 키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 처럼 되었다.  

남북은 체제 유지를 위해 지옥으로 가는 길을 좋은 의도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감정을 좇다 못해, 좇기고 있는 대중은 그 그물을 벗어날 수 없다. 망국적인 프레임에도 불구하고 '종북' 공세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삶은 죽음과 공존하는 것

우리가 빛을 집어 삼키는 이 짙은 안개를 벗어나는 방법은 우리 내부에 있는 불안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건강한 식단을 바란다면 벌레먹은 과채류를 먹어야 하는 것처럼, 삶은 죽음과 공존하는 것이다.

안전에 대한 과잉을 걷어낼 수 있다면 북한과 남한에 대한 시각이 재평가될 수 있다. 서로 길들이기에 들어갈 수 있다. 소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분단이 더이상 특정 세력의 무기가 될 수 없다.

오랜 진화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늑대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 온 끝에 약한 것을 다루는 심술궂고 우아하지 못한 생명체가 되었다. 그것은 다른 존재를 조작하고 또 그 부작용으로 스스로도 고통받는 나약한 존재다. 삶의 발판인 도덕적 악을 허용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제는 돌아가야 한다.

요즘 '안녕들 하십니까'를 묻는 대자보 열풍은 그 귀로의 출구를 연다. 이대로 내쳐 달려가서 깊고 내밀한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을 야성을 되찾을 것인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함께 행동하며 어떤 포식자에게도 굴하지 않았고 정직이 정의였던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안부 묻기 신드롬'은 불투명한 미래의 위험에 대비해 스펙쌓기 말고는 여념이 없던 대학생들이 주도하고 있다. 현실 속에서 안전을 향한 집단적 광기를 보았고, 그 사회적 안전장치가 새로 진입하려는 예비 구성원들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부조리를 보았기 때문이다.

반칙을 일삼고 거짓으로 일관하는 권력주체가 선량한 주권자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며, 한편으로는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면서 끊임없이 국민들을 방어태세로 위축시키는 폭압에 숨이 막혔기 때문이다.   

또한 억지로 막으면서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극약처방을 남발한 것이 우리 내부의 위험한 삶을 향한 갈망을 자극한 것이다. 위험을 피하는 삶에는 진정한 행복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