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명의는 말한다. 암을 고치기 어려운 환자는 나약하다. 스스로 암과 싸워 이겨 보겠다는 열정이나 실천력이 없다. 하지만 살고자 하는 의욕은 과도하게 높다. 그러나 의사나 보호자에게 의지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이런 환자의 마음은 극도의 공포에 짓눌려 입맛이 거의 소진되며 무력감과 초조 또는 불안 같은 공황상태에 빠진다. 의사의 말은 잘 따르지만 마음 한켠에는 불안감이 가득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독성이 강한 화학물에 의한 치료법이 오히려 강한 스트레스와 만나 면역력을 최악으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암의 전이와 재발을 급격하게 확산시키거나 더욱 악화시키게 되는 이유다. 의사를 철저하게 신봉하며 의타적이고 의존적인 마음은 강한 불안심리를 반증한다.

반면, 진취적이고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암을 이겨낸다. 이 경우 뛰어난 학습능력을 보인다.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며 자신의 질병이나 병원치료법에 대해 상세하게 알기를 원한다. 질병의 상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차분하게 행동하면서 스스로 병을 치료할 방법을 모색한다.

질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는 도전정신에는 불안감이 깃들 겨를이 없으며 스트레스로 인한 압박감도 미미하다. 이것은 약물의 조력을 받기 이전에 면역력을 증강시키는 방법이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말하기 어려우나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체질도 강하다.

정신이 건강하다는 건 장애가 없다는 것이고, 자유로운 시선으로 좌절 속에서도 희망을 포착하는 능동태라는 것이다.

성찰이란 바로 그런 건강한 정신에서 작동하는 균형감각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알며 그 거울로 상대방을 보고, 벗어난 자신의 생각을 되돌리며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다.

몸 안의 질병을 이겨내는 힘은 역기능적인 감정이나 행동을 통제하고 제대로 순기능을 할 수 있게 하는 성찰에서 비롯한다. 질병이라는 것이 결국 나와 외부의 관계가 교란을 일으켜 발생하는 까닭이다.

질병 뿐인가. 우리는 언제나 한계에 직면할 때마다 그것을 넘어설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성찰이 없이는 그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한다. 사회공동체 안에서 자신과 타인의 행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습관의 축적이 강조되는 이유다. 그것은 또한 성찰의 기초다.

직간접적인 관계의 활성화가 절실한 시기다. “안녕하세요”로 촉발된 사회적 담론들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소통되고 공유되며 다양한 자기학습들과 만나 구체적인 행동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권력의 독선과 전횡의 질곡을 벗어나기 위한 당위다.
성찰은 그래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정치인이 편향된 사고를 하거나 특정한 논리만을 맹목적으로 따른다면 사회는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정치인에겐 자신은 물론 이해를 함께하는 집단까지 냉정하게 비판하고 반성할 줄 아는 태도를 일관되게 견지하라는 지상명령이 있다. 그 성찰의 토대는 각 층위가 촘촘하게 공유하는 토론문화다.

우리 심연의 역동성과 삶의 변수들을 예측 가능한 지점에서 살피기 위해서다. 토론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나’의 성찰을 ‘우리’의 성찰로 확장시키는 건강한 진보적 가치다.

자기 성찰을 중단하지 않으면서 우리 안에 해답이 있다고 믿으며, 거기에서 도출된 가치와 지표에 부응하는 행동을 지속해 나간다면 우리들 삶의 완성도는 높아질 것이다.      
정치인이 이렇게 집단 지성을 깨워 성찰을 이끌면, 사회는 어떤 현상이든 근원을 진단하고 처방전을 내놓을 수 있는 힘을 구축한다. 낡은 이념과 지배논리에 경도된 일방통행을 막을 수 있는 해법이다.

정치인이 그런 책무를 해태한다면, 안부를 걱정하는 우리의 선택지는 ‘행동’일 수 밖에 없다. ‘안부 묻기’라는 새로운 형식의 성찰을 통해 우리 내부에서 해답을 발견하고 있다.

막힘없는 소통을 꿈꾸며

새해 벽두에 “나와 우리는 건강한가”를 물을 때 “우리는 중병에 걸렸으나 회복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의 운명을 책임지는, 그러한 권한을 위임받은 대한민국호 선장은 건강하지 않다.
지나고 보니 서민을 홀리는 허위 공약으로 표를 훔쳤다는 비판은 너무 과한 욕심이다. 최소한 어머니처럼 나라 살림을 하고 어머니처럼 포용하는 정치를 해줄 것이라는 기대로, 위기의 나라를 여성에게 맡겼던 수준높은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들은 단 1년 만에 예기치 못했던 내상을 입었다.

열정도 실천력도 없었다. 유신시대의 낡은 인물들을 중용하고 거기에 의탁한 채 억눌림을 거부하는 국민들을 상대로 초강수를 거듭 던지고 있다. 그런 히스테리의 근원은 불안이다. 국민들의 피로도는 갈수록 높아가고, 분열과 독식 같은 나라의 환부는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침묵하던 국민들이 바쁜 갈길을 멈추고 토론을 제안한다. 우리의 병명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이 병을 이겨낼 것인가. 투병의 의지를 보인다. 무기력한 위기의 대통령에게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국민과 함께 성찰하면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역설이 목하 광장에서 울려퍼지고 있는 것이다. 할 수 있다. 어깃장을 놓으며 으름장으로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소통한다면 이 나라는 난국을 극복할 수 있다. 

올해는 갑오농민혁명 120주기를 맞이한다. 착취와 유린, 폭력 등 불평등과 불통에 저항한 정신을 기리는 해다. 모두가 건강한 새해를 기원한다. 성찰하는 힘으로 막힘없이 소통하는 내일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