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사람이 욕심을 버리고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생존은 결국 섭취와 배설의 문제인 탓이다. 목숨은 소비를 통해 유지되며 필요한 것을 구하지 못하면 중단된다.

인간은 이 절대명제를 벗어날 수 없다. 경쟁이 정당성을 확보하는 근거다. 빠르거나 정확하거나 강해야만 이길 수 있다. '이긴다는 것'은 어떻게든지 '살아내는 것'이라는 오류는 그 틈에서 자란다.

속이거나 이용하는 것이 이기는 수단이 되는 세상의 시작이다. 약자를 짓밟거나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는 폭력의 근원이다.

비리와 부조리는 '생존'이라는 미명아래 공유되고, 경쟁에 쫓기는 사람들은 주변의 파열음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욕심은 그렇게 가혹하다.

어쩌면 이 세상은 보다 쉬운 생존을 위해 암약하는 사람들로 득시글거리고, 비리와 부조리의 공유 틀에 편입하려는 사람들이 서로 물고 뜯는 혼란의 도가니다.

생존이란 야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야 편하고 쉽다. 경쟁에서 낙오한 누군가는 야만의 방식으로 다른 누군가의 기회를 훔치기 위해 호시탐탐 때를 노리고 있으니까.

삶은 공정한 경쟁도 반칙도 인정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골목과 밀실을 지배하는 이유다.
인간의 실체적 질서란 이렇게 욕심을 지표로 삼고 있다. 과잉을 발아시키는 토양이다. 욕심을 충족시킬 재원을 더 많이 쌓아두면 목숨이 안전하니까. 최대한 다른 사람들의 기회를 가로채서 창고에 가둬야 한다. 죽어서 가져갈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얼마 정도 뺏길 것을 감안하면 살아서 안전을 지키는 확실한 수단이다.

루쉰의 아큐는 그런 엄연한 과잉 경쟁 대열에서 필연적으로 배제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날품팔이 꾼 아큐는 무기력하고 비겁하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이긴다. 이른바 그의 '정신 승리법'이라는 출구 덕분이다.

희롱을 당하고 매를 맞으면서도 정신적으로 승리하면 된다는 자기 위안법으로 아큐는 단 한번도 패배를 경험하지 못한다. 싸울 용기가 없는 그는 모욕을 당해도 자존심을 드러내지 못하지만 분노와 치욕만은 어쩔수 없다. 이럴 때 그는 자기 뺨을 몇대 갈긴다. 아프지만 이내 마음이 평안해진다. 그가 때린 '나'와 맞은 '나'를 분리했기 때문이다.

'때린 나'를 기억하고 '맞았던 나'를 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은 폭력을 행사하고 휘두를 수 있는 존재라는 환상으로 고양된 나머지 분노와 굴욕감을 소멸시켰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으로 주체적인 인간이 되는 아큐는 자신이 놓인 상황에 자기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만족한다.

이는 우리의 '액땜 법'과도 닮았다. 어떤 화를 당했을 때 더 큰 일을 대체해 당했다고 생각하는 현실도피 말이다. 그것은 간난을 해쳐나갈 수 있는 힘이자 굴욕을 수용하는 힘이다.

하지만 패배를 아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는 자기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신 승리법'과 같다. 자신에게 주어진 억압과 부자유의 어두운 세상을 순순이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밝은 빛 속에 있는 자기'라는 환상으로 치환하는.

이런 자기 기만은 다른 사람에게도 강요된다. 약자에겐 잔인하고, 강자에게는 아첨하며, 스스로의 책임을 남에게 미루는 태도가 현실 속에 만연하는 이유다. 

루쉰은 그런 중국인들의 노예근성을 향해 외쳤다. "희망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누군가 먼저 걸어가고 그 뒤를 쫓는 이들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 누군가 희망이라는 길을 가면 모두가 그 길을 따라 가게 된다."

하지만 지난 100년 동안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이자 민족혼으로 추앙됐던 또는 '위대한 무산 계급의 사상가'였던 루쉰의 작품들이 민중의 세상을 꿈꾼 신해혁명과 함께 최근 초·중·고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있다.

중국 당국은, 더는 이데올로기가 교과서 수록을 결정하는 잣대가 되선 안된다는 말로 그 배경과 입장을 표명했다.

루쉰의 길은 생존에 필요한 욕심을 누구나 충족할 수 있는 세상이었고, 환상이 아닌 실체를 쫓으며 운명 앞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직하고 주체적인 삶이었다. 그러나 루쉰의 이념은 퇴색했다. 중국은 더이상 민중이 평등한 기회를 요구할 필요가 없는 유토피아를 영위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중국에서 루쉰의 꿈은 백일몽이었다는 것일까. 중국은 더이상 욕심이 가치로 조율되지 않는 야만의 시대로 진입한 것일까. 그래서 그의 길은 민중에게 고통과 절망감만 안겨 줄 따름일까.

이 공허한 질문은 애초에 루신의 것이다. 루신이 허무와 자조상태에 빠져있던 어느날 그에게 한 친구가 찾아와서 잡지에 수록할 원고를 청탁하자 루신은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한다.  
"가령 창문이 하나도 없고 무너트리기 어려운 무쇠로 지은 방이 있다고 하세. 만일 그 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이 들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막혀 죽을 게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죽는다면 죽음의 슬픔을 느끼지는 않을 걸세. 지금 자네가 큰소리를 쳐서 잠이 깊이 들지 않은 몇몇 사람을 깨워, 그 불행한 사람들에게 임종의 괴로움을 맛보게 한다면 오히려 더 미안하지 않은가?"

환상을 쫓으면 썩는다

그러자 친구가 반문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일어난 이상, 이 무쇠 방을 무너트릴 희망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잖은가."

루신이 그런 친구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루쉰이라는 필명을 처음 사용해 생애 첫 번째 단편소설 한 편을 기고하게 된 계기다.  

중국은 변했다. 보편적 가치의 추구를 낡은 사고로 규정하고 잠든 도태를 수반하는 거친 경쟁의 물결에 나라를 맡기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등 부끄러운 역사를 자랑스럽게 왜곡한 교과서를 국민이 나서서 폐기처분했다. 그러나 여권과 보수세력은 좌파의 외압이 만든 결과 쯤으로 폄하하며 역사날조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 욕심의 끝은 어디인가.

요즘 국민들이 시대의 어른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에게 열광하는 이유를 그들은 알까.

채현국 옹은 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강원도 삼척시 도계에서 '흥국 탄광'을 경영하며 한 때 개인 소득세 납부액이 10위 안에 들 정도였으나, 유신시절 쫓기고 핍박받던 민주화 인사들을 돕거나 광부들에게 재산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부를 사회에 환원했다.

여러 곡절을 겪은 그는 지금 빈털털이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을 도왔다는 표현을 부정한다. 자기일을 한 것이고, 재산은 세상의 것인데 자신이 잠시 맡아서 잘한 것 뿐이며 더 잘쓰는 사람에게 그냥 주면 된다고 말한다.       

채현국 옹은 지나친 욕심을 이렇게 정리한다. "모든 건 이기면 썩는다. 예외는 없다. 돈이나 권력은 마술 같아서, 아무리 작은 거라도 자기가 휘두르기 시작하면 썩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