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선거는 희망과 절망을 모두 담고 있다.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는 유권자의 몫이다. 선거 결과가 유권자의 수준을 나타내주는 바로미터인 이유다.

올바른 주권행사란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선거를 혁신하고 정치를 바꾸며 우리의 미래도 바꾼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수단이다. 국민이 곧 국가라는 사실을 주기적으로 상기시키는 장치이며,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방법이다.

이런 지극히 교과서적인 말을 왜 다시 꺼내야만 하는가. 정치가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앞선 대선에서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은 이 나라 모든 분야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국민의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

목하 위임받은 권력의 폭주는 유권자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나라의 안보를 전담하고 있는 국가기관이 사익단체를 방불하는 선거운동을 했다면, 정부는 사법적 단죄와는 별개로 나라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린 국가기관의 탈선행위를 엄단하는 것이 상식이다.

더구나 국정원은 민주인사들을 탄압하는 수단이었던 국가보안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온 주체이고. 국가 안보상 비밀 행동을 보장받는 특수한 지위의 권력기관이다. 그 일탈의 중요도와 위험도는 거기에 정비례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오히려 사법부를 억압하는 일에 매달렸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기소를 지휘했던 채동욱 검찰총장을 찍어냈다는 의혹이 비등한 와중에서도, 채동욱 관련 개인정보유출 사건의 몸통에 접근하던 수사 라인을 전격 교체했다.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을 수사해 더 밝혀진 혐의를 추가 기소한 윤석열 특별수사팀장과 그 수사라인은 모조리 좌천됐다.

이 정부의 특징은 독선과 전횡 논란이 일고 있는 사안에 공멸의 극약처방 대응으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막장드라마에는 안전장치가 없다. 물 만난 국정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 의혹을 제기하며 남북 정상간 대화 녹취록을 공개해 종북몰이에 시동을 걸더니, 8월에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을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했다. 법무부는 덩달아 진보당이 종북정당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정당 해산 심판을 청구했다.

이미 밝혀졌듯이 노 대통령은 NLL 포기발언을 한 적이 없다. 이석기 내란음모 혐의엔 현존하는 국가안보 위협이 없으며 법정에 제출된 증거들이 대부분 조작된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통합진보당에 씌워진 '종북의 숙주' 혐의는 여권과 국정원이 기획한 올가미에 불과하게 된 꼴이다.

하지만 국가기관의 불법선거 개입에서 촉발된 18대 정부의 정통성 논란을 잠재우려는 국정원의 종북몰이는 시도하는 족족 성공했다. 제1 야당인 민주당은 납작 업드려 숨을 죽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적자인 문재인을 비롯한 이석기 또는 통합진보당과 거리두기에 급급했고, 국회에서는 주도권을 상실했다.

국정원 특검은 묵살됐고, 국정원 개혁법안은 진통만 요란했을 뿐 사산되다시피 했다.

정치의 수준이란 시간이 축적된 결과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는 성숙할 겨를이 없었다. 끊임없는 이합집산으로 정체성부터 모호했다. 권력 쟁투에 함몰된 나머지 과정을 중시하지 않았던 탓이다. 이 나라의 정치는 패배한 쪽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승자독식의 악순환 구조에서 벗어날 의지도 역량도 없다.

이런 승자에게 남북 냉전 상황은 강렬한 유혹이다. 안보의 칼을 빼들어 초법적 권력을 획득하면 어떤 무개념 통치술도 통했기 때문이다. 특히, 정권연장에 이보다 더 효과적인 무기는 없다. 15, 16대 정권을 제외한 모든 정권이 그것을 웅변한다.

이렇듯 우리는 한 번도 제도적으로 기본적 인권을 보장받은 적이 없다. 분단에 뿌리를 내린 냉전시스템의 작동에서 비롯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헌법 위에 존재하는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에 보내야 할 유물'로 규정했으나 결국 폐지하지 못한 까닭이다.  

국가보안법은 인간의 존엄성과 창의성을 억압하고, 정치의 민주화를 억압했으며, 남북관계 개선을 방해했다. 또한 우리 사회의 지성과 진보인사 등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정신적 상처를 남기고 무의식적인 공포를 조장해왔다. 직간접 피해자들은 법에 걸려들지 않을까 자기검열에 전전긍긍한다.         

백년의 억압 벗어날 소명의식 필요한 지방선거

국가보안법 폐지가 논의됐던 참여정부에서 반대의 선봉에 선 사람이 바로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였다. 당시 박 대표는 국가보안법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마지막 안전장치”라 부르며 “모든 것을 걸고 막아내겠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의 종북몰이가 날조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국정원은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상태다. 이는 다가오는 동시지방선거와 향후 선거판에 큰 교훈을 던져준다.

흑색선전과 비방은 유권자들의 오판을 부른다. 선거기간은 앞으로 5개월 남짓 남았다. 따라서 후보자간 비방과 근거없는 의혹제기가 남발되는 것은 설령 고발당해도 진실이 규명되기 전에 선거가 끝나기 때문에 소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후보들의 흉계가 숨어있다.

익산에서도 일찌감치 네거티브전을 선거수단으로 삼는 익산시장 후보들이 출현했다. 정치 신인이거나 기성 정치인이거나 현 시장의 아성에 도전하는 후보들의 작태다.

벌써부터 정책대결은 실종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런 진흙탕싸움은 정치의 신뢰를 떨어뜨려 선거결과에 관계없이 모두를 패자로 만들어 공동체를 파괴하는 악폐다.

이렇게 목적 달성을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반민주적인 구태 정치의 답습이 계속 재현되는 이유는 유권자가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정치, 꼭 필요한 정치인을 발굴하기 위해 유권자들이 소명의식으로 무장하고 마음의 끈들을 고쳐매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는 다가올 20대 총선과 19대 대선의 지표가 될 것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