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호랑이를 그리되 가죽은 그릴 수 있으나 뼈는 그리기 어렵고, 사람을 알되 얼굴은 알지만 마음은 알 수 없다" 명심보감 성심(省心)편에 수록된 말이다.

이 금언은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강조해 말한 것이다. 호랑이의 내부에 있는 골격은 그것을 덮고 있는 근육과 껍질을 잘 더듬어 살피면 어렵더라도 결국 그려낼 수 있지만, 사람의 얼굴 안 쪽에 있는 마음은 알 길이 없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마음을 살피는 장'에 이같은 격언을 수록한 편자 추적(秋適)의 의도는 무엇일까. 알 수 없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니 '사람은 경계해야만 하는 존재'라는 명제가 그 채록의 동기였을 것이다.

성심(省心)이란 본래 닦는다는 주체적 의미를 함의하고 있으니, 이 알 수 없는 마음은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므로 관계에서 경계가 아니라 자성에서의 경계를 가리키고 있다.    

마음은 무엇인가. 불교적 관점에서는 삼라만상과 분리되지 않은 본성이다. 나는, 여기서 현현한 종교적 의미를 들어내면 남겨지는, 모든 것과 저절로 교감하며 울리는 상태의 '나'를 '마음'으로 상정한다.

그런 맥락에서 사람은 여러 방법으로 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얼굴에 드러난 표정 조차 마음에서 비롯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그것이 반드시 마음의 발현은 아닌 까닭이다.

내 안에 본래적으로 존재하는 마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사람의 감정 표현은 순수하지 못하다. 경험에 의해 가리거나 감추거나 속이거나 하는 것이다. 밖에서 들어온 지식이 안에 있는 실체를 부정하는 상태로 길들여진 탓이다.

상황이나 감정상태에 따라 마음은 다르게 드러난다. 그렇다고 인간이 만든 인위적 규범과 풍속들이 '나'의 마음을 억압한다며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상태를 마음의 전부라고 일컬을 순 없다. 앞서 전제한 바 처럼 마음은 오히려 순응하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의 눈으로 눈을 볼 수 없는 것 처럼 마음이 마음을 볼 수는 없다. 마음을 보려면 거울이 필요하다. 타인의 눈이 그 거울이다.

타인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 보면 우선 '나' 안에서 걷어낼 외부적인 것들을 볼 수 있고, 거기에 가려져 있던 나의 마음을 발견 할 수 있다는 해법이 이 금언에서 강조하는 '불가능'에 내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그 얼굴을 기억하거나 호랑이의 골격을 그리는 노력 보다 더한 정성이 필요하다는 역설 말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분초를 다투며 쏟아내지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배제되는 세상이다. 더구나 소비경쟁에서의 승리를 행복으로 삼는 세태 속에서 시간과 인내가 수반되는 마음 살피기는 무의미하다.

지식, 기술, 정보가 순식간에 낡아버리는 시대다. 괴롭거나 피곤할 겨를이 없다. 내일은 일등을 쟁취하기 위해 생산하고 소비하며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시간이 부족하다. '나'는 그런 내가 한량없이 자랑스럽다. 낙오한 사람은 조금 더 힘을 다하지 않은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어느 순간 비었던지도 몰랐던 자리에 슬픔이 들어차지만 그 슬픔이 어떤 이유로 생겨난지도 알아차릴 겨를이 없다. 어느 날 문득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자각하지만 그 찾을 길은 고사하고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지점으로 치달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펼연적으로 '나'를 둘러싼 시계를 자각하게 될 것이다.

제각각 다른 표정을 지닌 수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우리가 결코 알 수도 볼 수도 없는 어떤 것들이 우리의 삶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 이 세상은 나약하고 덧없는 마모의 터전 위에서 존재 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 모든 것을 긍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죽음이라는 사건의 강렬함과 엄정함, 그 비할 데 없는 냉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상실을 수습하지 않고는 한 발자욱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 때부터는 결코 알아낼 수 없는 영원한 상실로 기억될 무언가를 뒤에 내버려둔 채 무거운 걸음을 옮겨야 한다. 결국 도달하게 될 세계의 끝이란 그렇게 무력하기 짝이 없다.

낡아 갈수록 깊어지는 마음

사물들이 제 안에 가진 정교한 리듬과 맥박을 따라가지 않으면 우리는 그 사물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초고속으로 매진하는 우리가 불가항력의 단절감에 맞닥뜨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또한 관계를 돌보지 않은 까닭에 무수하게 생겨난 균열들은 어찌할까. 온전한 기억의 편린들 조차 없을 때 무엇을 어루만지며 위안을 삼을 것인가.

젊음은 영원하지 않고 더이상 싸울 힘이 없는 날은 반드시 온다. 누구든지 밖에서 유입된 것들의 쇠락을 피해 갈 수는 없다. 절망감은 그것이 상실이라고 느낄 때 엄습한다. 마음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일 수록 더 큰 자기상실감에 짓눌리는 까닭이다.

마음을 모른다는 것은 적어도 죽음과 같은, 이해와 희망을 빠져나가는 불가해한 것들이 우리의 삶에 엄존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과 같다. 그것은 불안을 양산해 낸다.

오래된 가죽 처럼 함께 마모되며 낡아가는 관계, 매 순간 사랑했던 순간들이 저장된 대상이 주는 결 깊은 여유가 필요한 까닭이다.

간간히 멈추거나 속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마음을 매만질 수 없다. 그렇다. 마음을 안다는 것은 소통의 길을 안다는 것이다.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얼굴에 진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시간들이 깊어지면 낡아 갈 수록 그 관계는 빛이난다.